봉준호·박찬욱 흥행 저조 vs '케데헌' 글로벌 신드롬 [2025 총결산-영화]①
- 장아름 기자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2025년 한국 영화계는 극명한 대비의 연속이었다. 해외 영화제와 글로벌 시장에서는 국내 콘텐츠가 여전히 유효한 경쟁력을 증명했지만, 국내 극장가에서는 한국 영화 산업의 흥행 공식이 무너진 현상이 반복됐다.
특히 거장의 명성과 흥행 성과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세계적 명성을 쌓아온 감독의 신작조차 흥행을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며 위기론이 더욱 심화됐다.
기대작으로 꼽힌 작품들이 흥행에 고전하는 사이, 글로벌 플랫폼 기반 콘텐츠는 기반으로 한 국내 애니메이션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신드롬급의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깊어지는 산업 위기와 새로운 가능성이 동시에 포착된 한 해였다.
◇ 봉준호의 귀환…흥행은 기대 이하
올해 2월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신작 '미키17'은 2025년 영화계 최대 기대작 중 하나였다. 지난 2022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국제영화상, 각본상까지 4관왕의 역사를 쓴 ‘기생충’ 이후 6년 만의 연출작이자 로버트 패틴슨이 주연이라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높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미키17'은 국내 개봉 후 누적관객수 301만 3500명에 그치며 약 3억 달러(약 4200~4400억원) 수준으로 알려진 손익분기점에는 미치지 못했다. 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고, 봉준호 특유의 사회적 은유와 블랙코미디가 대중적 흡인력으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이름값만으로 관객을 담보하기 어려운 극장 환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 박찬욱, 흥행보다 시상식서 존재감
지난 9월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역시 국내 흥행 면에서는 두드러진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평단과 시상식에서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작품은 지난 8월 개최된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데 이어, 제50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제58회 시체스 영화제, 제28회 SCAD 사바나 영화제 등에서 수상 행렬을 이었고, 오는 3월 개최를 앞둔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예비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주목받았다.
박찬욱 감독이 그간 '대중 흥행형 감독'으로 분류돼 온 것은 아니지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진출이라는 성취가 관객 확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가 크게 형성된 것도 사실이었다. 당시 '어쩔수가없다'가 현지에서 높은 평점을 기록하는 등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으나,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았던 성취가 국내 관객들의 관심 확대로 직결되지는 않았다. 손익분기점은 130만 명으로 이를 넘어섰지만, 최종 관객수는 290만 5076명에 그쳤다.
이는 박찬욱의 국내 위상이 약화됐다기보다, 작품의 평가와 흥행이 같은 지점에서 만나기 더욱 어려워진 현실을 방증했다. 또한 예술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의 간극이 더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동시에 드러냈다.
◇ '케이팝 데몬 헌터스', 2025년 가장 글로벌한 영화 현상
2025년 영화계에서 가장 놀라운 성과는 극장이 아닌 글로벌 플랫폼에서 나왔다.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지난 6월 공개 직후 북미와 아시아, 유럽 전역에서 화제를 모으며 글로벌 열풍을 일으켰다.
한국을 배경으로 K팝 세계관에 한국적 오컬트와 판타지 액션, 생활 문화까지 결합한 이 작품은 단순한 흥행을 넘어 IP 확장 가능성까지 입증했다. 영화는 물론 OST인 헌트릭스의 '골든'(Golden)과 사자보이즈의 '소다 팝'(Soda Pop) 및 각 그룹 캐릭터 등이 뜨거운 인기를 끌었다.
게다가 챌린지와 커버 열풍 등 2차 창작까지 소비되며 한국적 소재가 글로벌 대중문화로 자연스럽게 소비되는 흐름까지 보여줬다. 2025년은 한류 콘텐츠가 특정 문화권의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아도 세계 관객이 직관적으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한 사례였다.
◇ 외화의 독주…'주토피아2'의 압도적 흥행
극장가에서는 외화 강세가 더욱 공고해졌다. 국내 영화 부진이 맞물리며 외화와 애니메이션에 더욱 심화된 관객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그 가운데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2'가 지난 11월 26일 개봉 이후 23일째인 18일 누적관객수 571만 2234명을 기록, 올해 국내 박스오피스 흥행 1위에 등극했다.
올해 최단기간 500만 관객을 돌파한 '주토피아2'는 검증된 IP를 동력으로 더 커진 세계관과 다채로워진 캐릭터들로 더욱 탄탄해진 속편의 힘을 발휘했다. 또한 추적 어드벤처라는 장르에 '차별'과 '공존'이라는 메시지로 폭넓은 가족 관객층을 아우르며 전편 '주토피아'(2015)가 세운 470만 여 명의 흥행 기록도 넘었다.
또 다른 외화 강세의 축은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지난 8월 개봉 이후 꾸준한 관객 유입을 이어가며 554만 9739명의 최종 관객수를 기록했고, 국내 영화 '좀비딸'을 제치고 올해 국내 박스오피스 흥행 2위에 올랐다. 또한 '스즈메의 문단속'(2023)까지 제치고 역대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 톱 1위에 올랐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원작의 완결 3부작 중 첫 번째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팬들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팬층을 확실히 겨냥한 개봉 전략, TV 애니메이션과 극장판을 병행해 온 장기 IP의 힘이 맞물린 결과였다. 특히 기존 팬덤은 물론 신규 관객까지 극장으로 끌어들이며, 애니메이션 장르 전반에 대한 관객 신뢰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 칸 경쟁작 0편·1000만 영화 부재…계속되는 위기
2025년 한국 영화계의 위기는 상징적인 성과 부재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한국 영화가 단 한 편도 오르지 못했고, 한해 영화 산업의 저력을 가늠해 온 1000만 관객 영화 역시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이는 팬데믹 이후 단순한 일시적 부진이 아니라 제작 환경, 투자 심리, 관객 취향 변화가 복합적으로 얽힌 구조적 위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대형 상업영화는 줄어들고, 흥행 가능성이 더욱 불확실해진 상황에서 영화 산업은 명확한 전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OTT와 극장의 역할 분담, 한국 영화의 새로운 동력과 흥행 공식에 대한 고민이 더 이상 미뤄질 수 없는 과제로 떠올랐다.
이 같은 위기 속에서 극장 산업 전반의 구조 변화도 가시화됐다. 올해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의 합병 추진 공식화로 인해 극장 산업 재편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거론됐다. 관객 감소와 투자 위축, 상영작 부족이 겹치면서 기존 멀티플렉스 체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비용 절감과 생존 전략이 현실적인 선택지로 부상했다. 이는 단순한 기업 간 결합 논의를 넘어, 한국 극장 산업 자체가 기존 구조를 유지하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움직임으로 해석됐다.
2025년은 국내 영화계가 더 이상 재정비와 구조적 변화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실감한 한해였다. 거장 감독의 이름과 영화제 성과만으로 극장 관객을 확보하기 어려워졌고, 반대로 글로벌 플랫폼에서는 장르와 포맷에 최적화된 콘텐츠가 놀라운 성과를 냈다. 멀티플렉스 합병 논의는 국내 영화 산업 재편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2026년을 앞둔 한국 영화 산업은 어떤 시장을 기준으로, 또 어떤 성과를 목표로 삼을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aluem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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