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리뷰] '판소리 복서', 구수한 가락에 독특한 펀치 한 방
- 고승아 기자

(서울=뉴스1) 고승아 기자 = '판소리 복서'는 그 제목부터 이질적인 조합임이 느껴지는 영화다. 판소리와 복싱이라니. 영화 시작 전부터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판소리 복서'는 외려 114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자연스레 극에 빠져들게 하는 독특하고 강력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9일 개봉한 영화 '판소리 복서'(감독 정혁기)는 과거의 실수로 체육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가던 전직 프로복서 '병구'(엄태구 분)가 자신을 믿어주는 든든한 지원군 '민지'(이혜리 분)를 만나 잊고 있었던 미완의 꿈 '판소리 복싱'을 완성하기 위해 생애 가장 무모한 도전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은 신박한 코믹 휴먼 드라마다. 단편영화 '뎀프시롤:참회록'을 장편화했다.
영화는 병구로 분한 엄태구만의 매력으로 판소리와 복싱이라는 신선한 소재에 대한 설득력을 높인다.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를 자주 맡아온 엄태구가 특유의 허스키한 보이스가 더해진 소심하고 순수한 병구의 모습으로 변신한 모습이 극에 웃음을 더한다. 그러나 과거의 실수로 인해 링을 떠난 병구이기에 이제는 잘 쓰지도 않는 브라운관 TV를 굳이 고치려 하고, "고장 나면 고치면 되잖아!"라고 울부짖듯 외치며 감정선을 살린다.
병구의 꿈이라는 판소리 복싱은 우리나라 고유 장단과 복싱 스텝을 결합한 독특한 기술이다. 휘모리장단에 맞춰 스텝을 밟고, 여느 복싱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팔놀림으로 펀치를 날린다. 다소 당황스러워 보이는 움직임이지만, 영화 속 진지한 병구의 모습에 웃음기보다는 절로 그를 응원하게 만든다. 특히 극 말미 진지한 표정으로 경기장에 들어와 장구 연주를 펼치는 민지와 이 장단에 맞춰 예사롭지 않은 펀치를 선사하는 병구의 모습이 사뭇 진지해서 눈길을 끈다.
어리숙한 캐릭터로 연기 변신을 꾀한 엄태구는 물론,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등을 통해 특유의 밝은 에너지를 가진 역을 자주 소화한 이혜리는 '판소리 복서'에서도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는다. 이혜리는 자신과 비슷한 느낌을 지닌 민지로 분해 환한 미소와 순수한 모습을 선사하며 병구의 조력자로서, 또한 간질간질한 로맨스 파트너로서 호흡한다. 다만 마냥 긍정적인 민지의 역할은 제한적이라 아쉽다.
독특한 소재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스크린에 옮겨놓은 가운데,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OST도 작품을 살리는데 한 몫을 톡톡히 한다. 바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판소리'다. 판소리 '수궁가'를 모티브로 정혁기 감독이 직접 개사, 젊은 소리꾼이 가창한 이 '판소리' OST는 병구와 민지의 훈련 몽타주 장면 등 판소리 복싱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번개 같은 주먹 병구주먹, 천둥 같은 장단 민지장단' 상황을 묘사하며 독특함을 더하고, 긴장감도 높였다.
'판소리 복서'는 독특한 조합의 소재로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마냥 엉뚱하고 코믹하지만은 않다. 복서로서 치명적이라는 '펀치드렁크'로 인해 기억을 잃어가고, 말주변이 어눌해지는 병구를 통해 인기에서 밀려난 복싱, 재개발을 앞둔 체육관, 필름 카메라 등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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