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 정우성, 이만하면 신의 한 수 아닌가

(서울=뉴스1스포츠) 장아름 인턴기자 = '신의 한 수'(감독 조범구)는 범죄로 변해버린 내기 바둑판에 사활을 건 꾼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정우성, 이범수, 안성기, 김인권, 안길강, 최진혁, 이시영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한다. 웹툰 '미생'으로 대중에게 친근한 바둑 소재에 19금 액션 장르, 배우들의 위트 넘치는 연기가 더해지며 흥미로운 서사를 완성했다. 정적인 바둑과 동적인 액션을 결합한 시도가 주목할 만 했다.

정우성이 '신의 한 수'에서 태석 역으로 돋보이는 활약을 보여줬다. © 쇼 박스

단연 돋보이는 것은 정우성의 활약이다. 정우성은 극 중 복수에 목숨 건 전직 프로바둑기사 태석 역으로 등장한다. 형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서 복역을 하게 되면서 살수 패거리를 향한 복수를 치밀하게 계획해가는 인물이다. 명석한 두뇌로 빼어난 바둑 실력을 가진 것은 물론, 여심을 흔드는 마초적 매력까지 지녔다. 정우성의 손 끝에서 바둑돌이 놓이는 장면은 가히 새롭게 다가온다. 정우성과 바둑, 어딘가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조화가 되는 점이 이색적이다.

물론 정우성의 모습이 처음부터 여심을 흔드는 것은 아니다. 극 초반 정우성은 승부사 기질이 없는 소심하고 찌질한 청년으로 등장한다. 무자비하게 폭행당하는 형의 모습을 보며 살수(이범수 분)에게 "한 수만 물러 주십사"라고 애걸하기까지 한다. 정우성도 애걸 연기란 것이 가능했던 배우였다. 이는 흡사 영화 '아메리칸 허슬' 주연 크리스천 베일이 배 나온 알머리 사기꾼으로 등장했을 때 느꼈던 신선함과 비슷하다. 정우성의 극 초반 모습이 있었기에 후반부 그의 모습이 긁지 않은 복권처럼 더욱 극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주변 캐릭터들은 단순 조연에 그쳤다. 캐릭터에 대한 내러티브가 친절하지 못한 탓이다. 일찍이 프로 세계에 입문했던 배꼽(이시영 분)이 돌연 은퇴를 선언했던 이유를 단순 대사로 처리한 점이 그렇다. 그나마 주님(안성기 분)의 과거사가 몇몇 장면으로 등장하며 캐릭터의 몰입을 돕고 있지만 그 외 주요 캐릭터 살수(이범수 분), 허목수(안길강 분), 량량(안서현 분), 태석 형(김명수 분)에는 몰입의 여지가 없다. 김인권의 익살스런 캐릭터, 안성기의 오랜 내공과 담백한 연기, 안길강과 최진혁의 진한 여운마저 없었다면 오로지 정우성을 위한, 정우성에 의한 영화로 전락했을 모양새다.

'신의 한 수'는 명장면으로 회자될 만 한 액션신이 많다. '절대 악' 존재인 이범수와의 대립이 돋보인다. 마치 '흰돌'을 상징하는 것 같은 정우성과 '검은 돌'을 상징하는 이범수의 액션 신은 감탄을 자아낸다. 그 과정에서 빠른 스피드의 칼부림은 두 배우의 농익은 액션에 흥미로움을 더한다. 감독의 서비스 컷이라고 밝혔던 냉동 창고 신도 강렬하다. 상의를 탈의 한 정우성, 최진혁이 바둑을 두는 모습은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추위에 파랗게 질린 두 남자의 모습은 흡사 영화 '배트맨 앤 로빈' 빅터 프라이스 박사(아놀드 슈왈제네거 분) 이미지를 본 딴 오마주 같다. 아다리(정해균 분)와의 딱밤 신도 마찬가지. 정우성이 딱밤 한 대로 상대를 농락하는 위트는 영화의 폭력성을 즐기고 있다는 죄책감 마저 잊게 한다.

정우성이 '신의 한 수'에서 농익은 액션 신을 선보였다. © 쇼 박스

스토리는 패착-착수-포석-행마-단수-회도리치기-곤마-사활-계가 등 총 9가지 챕터로 구성돼 있다. 챕터마다의 콘셉트와 주제의식이 잘 드러나 영화 전체의 기승전결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승전결에 충실한 만큼 스토리의 세련미는 없다. 가족을 잃고 인생 밑바닥으로 떨어진 남자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초인간적인 캐릭터로 거듭나 복수에 성공한다는 설정은 좋게 말 해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토리에 흥미진진함이 느껴진다면 이는 바둑과 액션의 결합이 생소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바둑이라는 소재가 단순 활용에 그쳐 깊이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 아쉬움이 남는다. 액션 장르와의 조화는 매력적이었지만 소재가 수박 겉 핥기 식 활용에만 그쳤다는 얘기다. 바둑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신의 한 수' 의미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할 법도 하다. 극 중 인물들이 바둑 규칙과 그 정황에 따라 바둑돌을 두는 의미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조범구 감독은 언론배급시사회 기자간담회에서 "바둑을 두는 정황을 대사로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최대한 공감을 형성하려 했으나 그런 부분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극 중 인물이 결정적인 순간에 놓는 신의 한 수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좀 더 친절해질 필요가 있었다.

주님은 허목수와의 대화에서 "망가진 삶을 역전시킬 수 있는 묘수라는 것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남겼다. 이에 허목수는 "그것보다 더 좋은 한 수가 있다"고 말한다. 허목수가 이어진 장면에서 말한 것이 '신의 한 수'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였을 터다. 피로 물든 복수는 순간적 쾌감과 위로가 될 수는 있지만, 허탈한 태석의 표정만큼이나 무의미했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요소는 많지만 곳곳에 밀도 높은 치밀함이 없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하지만 이 모든 약점을 덮을 수 있는 것은 정우성이라는 배우였다. 그는 가히 이번 영화의 신의 한 수였다. 7월3일 개봉.

aluem_cha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