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초점]① '故 신성일 영면'…81년 삶도 그토록 사랑했던 '영화' 같았다

故 신성일 / 사진=뉴스1DB
故 신성일 / 사진=뉴스1DB

(서울아산병원=뉴스1) 정유진 기자 = 영원한 청춘이자 은막의 왕, 배우 신성일(본명 강신성일)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지난해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에도 부산국제영화제에 2년 연속 참석하는 등 삶에 대한 뜨거운 의지를 보였던 그는 끝내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 4일 오전 2시 25분께 운명했다.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신성일은 무려 60년 가까운 세월을 '영화 배우'로서 살아왔다. 잠깐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외도'를 하기도 했으나 2010년대 들어와서는 정식으로 상업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에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하는 등 원조 '영화 배우'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유명인의 삶이 으레 그렇듯, 신성일의 삶 역시 늘 아름답게만 비쳐진 것은 아니었다. 2005년에는 대구에서 의정활동 중 뇌물수수를 한 혐의로 구속수감돼 옥고를 치렀다. 그뿐 아니라 '잉꼬 부부'로만 여겨졌던 아내 엄앵란과 별거 생활이 공개되고, 스스로 수십년간의 화려한 여성 편력에 대해 밝히면서 세간의 구설수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맨발의 청춘' 스틸 컷 ⓒ News1

◇ 원조 미남 스타이자 '영화 배우'…출연작 총 524편

신성일은 우리나라 영화계의 원조 '미남 스타'다. 1960년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로 데뷔할 당시, 신 감독의 제안으로 '신성일'이라는 예명을 갖게 됐다. 이후 잘생긴 청년 강신일은 약 60여년간 자신의 운명을 다할 때까지 '신성일'로 살았다.

한국 영화사를 대표할만한 당대 최고의 감독들이 신성일과 함께했다. 데뷔작 연출자 신상옥 감독을 비롯해 김기덕 감독, 이장호 감독, 김수용 감독, 이만희 감독, 임권택 감독 등의 영화에 출연해 한국 영화의 태동기와 부흥기를 이끌었다.

동시대 배우였던 이순재는 지난 3월 뉴스1 인터뷰에서 "아마 신성일이 지금 조건 같으면 10조는 벌었을 것"이라며 과거의 열악한 영화 현장에서도 독보적 활동을 했던 신성일의 업적을 평가했다.

신성일의 대표작으로 오래 기억되는 작품은 로맨스 혹은 청춘 영화다. '맨말의 청춘'(김기덕 감독, 1964)과 '별들의 고향'(이장호 감독, 1974) '청춘극장'(강대진 감독, 1967) '겨울여자'(김호선 감독, 1977) 등이 유명하다.

그밖에 '길소뜸'(임권택 감독) '만추'(이만희 감독) '내시'(신상옥 감독) '안개'(김수용 감독), '장군의 수염'(이성구 감독), '초우'(정진우 감독), '휴일'(이만희 감독) 등이 영화사적 가치를 인정받는 수작으로 꼽힌다.

故 신성일 / 사진=뉴스1DB

◇ 정치인 변신, 하지만...

신성일은 70년대, 80년대부터 정치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정치인 변신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신성일은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제16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총 3번의 선거에 도전했고,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대구에서 당선됐다.

정치에 나서게 되면서 그는 자신의 본래 성과(강)과 예명(신성일)을 합한 강신성일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하지만 의정 활동 중 뇌물수수를 한 사실이 드러나 2005년 구속수감됐다. 이후 2007년 사면복권될 때까지 약2년간 옥살이를 했다.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옥외광고물 업자 2명에게서 광고물 수의계약 등의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1억 8700만원을 받은 혐의다.

일각에서는 신성일의 이 뇌물수수 전력이 고인이 된 그가 정부 훈장을 받는 데 걸림이 될 것이라는 관측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성일은 당시 특별사면 및 복권 대상자로 분류됐기 때문에 훈장 추서에 문제가 없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배우 엄앵란이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신성일 씨의 빈소에서 조문객과 인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18.11.4/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 영원한 동지, 아내 엄앵란과 특별한 가정사

신성일이라는 이름 옆에는 수십년간 엄앵란이라는 이름이 따라다녔다. 신성일의 데뷔작이기도 한 '로맨스 빠빠'에서 각각 둘째 아들 바른이, 막내딸 이쁜이 역으로 만난 두 사람은 이후 수십편의 영화를 찍으며 사랑을 키웠고, 1964년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청춘 스타의 결혼식은 당시에도 어마어마한 사건이었고, 구경객만 4000명이 몰렸다는 후문이 전설처럼 내려온다.

수십년간 '잉꼬 부부'로 알려진 신성일 엄앵란 부부였지만, 신성일이 2011년 낸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에 수십년에 걸쳐 여러 명의 여성과 불륜 관계를 맺어온 사실을 공개하면서 충격을 줬다. 이후 두 사람의 삶은 종종 미디어의 조명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70년대부터 사실상 별거를 한 상태로 40년간 살아온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엄앵란과 신성일은 오랫동안 따로 떨어져 살았다. 하지만 말년에는 서로의 투병 생활을 돕는 '의리'를 과시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엄앵란은 지난해 신성일이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그의 치료비 전부를 냈고, 신성일은 MBC '휴먼다큐 사랑'에 출연 당시 유방암 수술을 한 엄앵란의 곁에 있겠다며 합가를 거론하며 아내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두 사람의 막내 딸 수화 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아버지를 '내가 책임져야 할 큰아들'이라고 한다. 신성일은 내가 먹여 살려야 하고 죽을 때까지 VVIP 특실에서 대우받고 돌아가셔야 한다. 작은방에서 병원비도 없어 초라하게 죽는 거 못 본다. 왜? 내 남편이니까. 우리는 동지다. 끝까지 멋있게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eujen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