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사극 범람' 속 계속되는 논란, 이유 있다 [K드라마와 역사왜곡]②

제작진 역사 인식 부족·과도한 해석 가미 등 문제점으로 꼽혀
고증 시스템의 부재도 원인

편집자주 ...K-드라마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한국 톱 배우들이 등장해 특유의 이야기로 즐거움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할 때면,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시청자들까지 열광한다. 하지만 K-드라마도 실망을 줄 때가 있다. 특히 드라마 속 '역사 왜곡' 문제는 주기적으로 반복되기에,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뉴스1은 기획 시리즈 [K드라마와 역사왜곡]를 통해 논란 사례와 이유는 물론, 예방책까지도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SBS '조선구마사', MBC '21세기 대군부인' 포스터

(서울=뉴스1) 안태현 기자 = 지난 2021년 한국 드라마계에서는 유례없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바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극본 박계옥/ 연출 신경수)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이면서 방송 2회 만에 편성이 취소되고 모든 회차가 폐기 처분됐다. 그 이후부터 드라마 업계에서는 역사 왜곡 논란과 관련된 논의가 지속되어 왔지만, 지난 5월 종영한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극본 유지원/ 연출 박준화, 배희영)도 유사한 구설에 오르면서 '드라마의 역사 왜곡 논란'에 다시 한번 불을 붙이게 됐다.

드라마의 역사 왜곡 논란은 비단 '조선구마사'와 '21세기 대군부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조선구마사'에 앞서 2020년 방송됐던 tvN 드라마 '철인왕후'(극본 박계옥, 최아일/ 연출 윤성식, 장양호) 역시 실존 인물을 희화화하거나 조선왕조실록을 '찌라시'로 표현한 대사 등으로 왜곡 논란이 일었고, 지난 2023년 11월 방송을 시작했던 KBS 2TV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극본 이정우/ 연출 전우성, 김한솔, 서용수) 역시 역사 오류들을 일부 범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됐다.

문제점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시청자들의 비판 또한 거세지는 상황인데도 드라마 속 역사 왜곡 논란은 왜 계속되는 걸까.

가장 큰 이유로는 드라마 제작진의 역사 인식 부족이 꼽히고 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제작진들 사이에서 우리나라 역사의 민감한 부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측면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충분한 학습 없이 표현을 했다가 나중에 역풍을 맞고 깜짝 놀라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라며 "이제 드라마 제작진들도 역사적 부분과 그 민감함에 대한 충분한 학습을 해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이에 더해 역사 해석을 둔 창작의 영역에서의 문제점을 짚었다. 공 평론가는 "역사적 팩트를 두고 해석을 하는 것에서 역사 왜곡 문제들이 흔히 제기된다"라며 "예를 들어 '연산군이 과연 폭군일까 아니면 피해자일까'라는 해석을 가미할 수는 있지만 특수한 역사관을 너무 다른 방향으로 뒤집어서 보는 것들이 결국에는 왜곡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한다"라고 분석했다

퓨전 사극 tvN '철인왕후' 스틸컷

퓨전 및 판타지 사극이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고증의 무게감은 옅어졌고, 이러한 환경이 역사 왜곡 논란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는 배경이 됐다는 지적 역시 나온다.

공 평론가는 "1990년대만 하더라도 역사극에서의 오류는 대부분 복장이나 예법에 관련된 것이었다"라면서도 "그런데 판타지 사극이 나오면서 그런 것들이 다 무의미해졌다, 한복을 입고도 머리를 짧게 자르는 걸 두고도 용인해달라는 인식이 강해지다 보니 이게 왜곡으로 이어지게 되는 기제가 됐다"라고 평가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이런 상황 사이에서 "'21세기 대군부인'의 경우 확실히 일본 왕실 체제를 떠올리게 한다던가, 판타지라고 해도 용납이 안 되는 요소들이 있었다"라며 "아무리 판타지라도 제작진 입장에서는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에 대한 표현에 대해서는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라고 말했다.

역사 전문가들은 고증 시스템의 부재를 지속되는 역사 왜곡 논란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최태성 한국사 강사는 '21세기 대군부인' 논란 당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드라마계는) 역사학계를 존중해 주기 바란다"라며 "배우들의 출연료는 몇억을 아낌없이 지불하면서 역사 고증 비용은 왜 몇십만원으로 퉁치려 하시는지, 왜 그리도 아까워하시는지"라고 목소리를 냈다.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역시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현실적으로 한국에는 대본과 연출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없다시피 하다"라며 "충분한 예산 배정과 연구자에 대한 대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느냐의 문제와도 이어진다, 20~30만 원 혹은 공짜로 자문을 요구하는 문화가 일반적이고 동시에 대본 중 문제없는 부분 정도를 집어주는 것이 어떻게 자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비판했다.

MBC '21세기 대군부인' 스틸컷

K-드라마의 세계적 인기 속,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 드라마와 퓨전 사극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역사에 대한 인식 부족과 고증 시스템의 부재, 그리고 민감한 역사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창작자들의 자세가 드라마의 역사 왜곡 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게 중론이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키우는 상황에서 역사·문화 콘텐츠에 대한 검증 기준 역시 높아졌다"라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충분한 검증 없이 제작되는 콘텐츠를 국민 스스로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런 논란 속에서도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 작품의 재미를 위해서 나온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을 너무 예민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과도한 비난을 한다는 것 역시 문제점의 한 축"이라며 "시청자 입장에서도 무조건 다 왜곡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판타지 오락물의 특징이라고 봐야 할 것을 관대하게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라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taehyu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