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부인'까지…반복되는 K-드라마 역사 왜곡 논란, 왜 [N초점]

배우 변우석과 아이유(오른쪽) ⓒ 뉴스1
배우 변우석과 아이유(오른쪽) ⓒ 뉴스1

(서울=뉴스1) 김민지 기자 = '21세기 대군부인' 관련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K-드라마의 반복되는 '역사 왜곡'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극본 유지원/연출 박준화, 배희영)은 방송 이후 역사 고증 오류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뇌관을 건드린 건 성조(변우석 분)의 즉위 장면이었다. 즉위식에서 신하들은 왕에게 '만세' 대신 '천세'라고 외쳤는데 이 부분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천세'는 전통적으로 황제보다 낮은 지위의 제후국 군주에게 사용되던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시청자들은 이를 두고 한국의 자주적 역사 인식을 훼손한 설정이라고 비판했다. 왕이 착용한 구류면관 역시 황제의 십이면류관보다 한 단계 낮은 격식이라는 점에서 함께 문제점으로 지적받았다.

방송 이후 '21세기 대군부인'의 역사 왜곡 논란이 점화했고, 과거 방송분 중 문제의 소지가 있는 설정 및 장면들이 '파묘' 됐다. 우리나라의 실제 역사를 삭제한 것, 일본 왕실과 정계를 연상시키는 세계관 등 근본적인 문제부터 대군의 섭정 설정, 왕실 호칭 및 용어, 예법의 오류 등도 논란이 됐다. 특히 K-콘텐츠가 글로벌 OTT 플랫폼을 통해 해외 시청자들에게도 소비되는 만큼, 고증 오류가 역사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이후 제작진은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가상의 세계관과 현실 역사 사이의 접점을 보다 면밀히 검토하지 못했다"라며 부족함을 인정했다. 배우 아이유와 변우석 역시 관련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다만 일부 시청자들은 이후에도 드라마와 관련 콘텐츠 사업이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들며 사과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단순 해명에 그칠 일이 아니라 문제 장면에 대한 수정이나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

특히 K-드라마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지면서 해외 '드덕'(드라마 팬)들도 눈에 띄게 늘어난 만큼, 대중은 역사 관련 논란이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있는 상황 자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과거에도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드라마들은 적지 않았다. 가장 큰 철퇴를 맞았던 작품은 2021년 공개됐던 SBS 월화드라마 '조선구마사'(극본 박계옥/연출 신경수)다. '조선구마사'는 첫 회 방송 후 태종(감우성 분)이 죽은 아버지 이성계의 환영을 본 후 광기에 빠져 백성들을 학살하는 내용, 명나라와 국경이 맞닿은 의주 지역에서 대접하는 음식이 중국식으로 차려진 점 등이 시청자들에게 지적받았다. 이후 시청자 게시판에 항의가 쏟아졌고, 결국 '조선구마사'는 방송 2회 만에 폐지됐다. 제작사와 방송사, 배우들 역시 연이어 사과문을 발표했다.

지난 2020년 방송된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극본 박계옥, 최아일/연출 윤성식) 역시 방송 초반 논란에 불이 붙었다. '철인왕후'는 중국 소설이자 드라마인 '태자비승직기'를 리메이크 한 작품인데, '태자비승직기'의 작가가 과거 작품에서 고려인을 비하하는 표현을 써 '혐한'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라는 점이 시청자들의 반감을 샀다. 또한 '철인왕후' 2회에선 '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극 전개 과정에서도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비판받았다. 이후 제작진은 문제가 된 부분에 사과했다.

K-드라마가 역사 관련 논란에 자주 휩싸이는 것과 관련, 한 방송 관계자는 "사극이나 시대를 오가는 작품이라면, 사실 고증 오류는 일어나기 쉬운 상황"이라며 "아무리 자문을 구한다고 해도 결국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라, 명확한 기준을 잡거나 팩트를 담은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곳이 부족한 게 원론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21세기 대군부인'은 역사 전문가만 알 수 있는 미세한 오류가 아니라 잘못된 부분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라 제작진의 부주의가 아쉬운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특히나 '21세기 대군부인' 제작진이 문제가 될 만한 장면을 사전에 거르지 못한 것이 더 의아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다른 관계자는 "'조선구마사'가 2회 만에 폐지된 뒤 모든 역사 관련 드라마는 역사 고증을 철저히 하고 있다, 제작진이 보지 못해도 시사 과정을 통해 마케팅할 때 문제가 될 만한 부분들은 다 거른다, 역사 관련한 작품은 더 예민하게 체크한다"라면서도 "그런데도 문제가 될 부분을 알아채지 못하고 방송에 그대로 냈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 충분히 사전에 논란을 차단할 수 있었는데 제작진이 그 부분에 소홀했던 것 같다, 그렇게 준비 기간이 부족했나 싶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21세기 대군부인' 논란 이후 한국사 강사 최태성은 역사물 전문 고증 연구 시스템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드라마와 영화는 전 세계인들이 보고 있다, 격에 맞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라며 역사물 고증 연구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대체역사물이나 판타지 장르가 가미된 경우, 어디까지를 '허용 가능한 허구'로 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기준 역시 여전히 모호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breeze5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