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조원 붓는 미래대응기금…전문가들 "사업 중복·재량 확대 우려"

"기금은 양날의 검"…기존 일반회계 사업 이관·정책펀드 중복 우려
"국채금리 4%대 100조 시장투자 맞나"…지출 변경 30% 확대에도 신중론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2027년 예산안 및 미래대응기금 토론회' 2026.9.11 ⓒ 뉴스1 한민아 기자

(서울·세종=뉴스1) 이강 기자 한민아 수습기자 = 내년 신설되는 162조 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두고 학계와 연구기관에서 기금의 역할과 재원 운용, 국회 통제 등 제도 설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기존 일반회계 사업을 대거 기금으로 옮기거나 국민성장펀드 등 기존 정책수단과 투자 영역이 겹칠 경우 기금 신설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100조원이 넘는 여유자금을 기금에 쌓아두면서 한편으로는 국채를 발행하는 재원 운용 방식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가 국회 의결 없이 기금운용계획을 최대 30%까지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재정 운용의 재량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는 만큼 국회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기금은 양날의 검"…기존 일반회계 사업 이관·정책펀드 중복 우려

11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서울 양재 엘타워에서 '2027년 예산안 및 미래대응기금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서는 내년도 예산안과 미래대응기금의 추진·운영 방향, 분야별 투자 방안 등이 논의됐다.

정부는 내년 추가세수 162조 3000억 원을 미래대응기금에 적립해 45조 4000억 원을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분야에 투자하고, 12조 5000억 원은 국채 신규 발행 물량을 줄이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나머지 약 104조 4000억 원은 여유자금으로 쌓는다.

전문가들은 기금 신설 필요성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사업 구성부터 재원 산정, 자산 운용까지 세부 설계를 다듬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태석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은 "재정학적으로 봤을 때 기금은 양날의 검"이라며 "재정이 분절돼 사용될 수 있고 유휴자금이 비효율적으로 운용될 수 있으며 변경의 재량을 남용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예산사업을 기금으로 옮겨 담는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기존 일반회계 등에서 추진하던 사업 상당수가 미래대응기금으로 편입되는 데 우려를 나타내며, 기금의 역할을 세수 변동을 흡수하는 재정안정화와 전략적 투자에 보다 명확히 맞출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장기간 계속되는 사업은 일반회계에서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이상민 연구위원은 "10년, 20년, 30년 지속되는 이런 사업은 굳이 미래대응기금에서 직접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며 "일반회계에서 이미 법과 원칙, 관행과 거버넌스가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금은 단기간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 등에 활용하고 장기·계속사업은 일반회계에서 집행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나눌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국민성장펀드와 국부펀드 등 다른 정책수단과 투자 대상이 겹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학수 KDI 선임연구위원은 미래대응기금 사업이 비슷한 전략적 투자 목적을 가진 기존 정책수단과 중복될 수 있다며 각각의 역할을 명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금에 쌓이는 100조 원대 여유자금을 어떻게 운용할지를 두고도 논쟁이 이어졌다.

이 연구위원은 현재 국채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기금 여유자금을 외부 자산에 투자하는 동시에 국채를 계속 발행하는 방식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채 금리가 이렇게 높은 상황에서 굳이 100조 원이나 되는 돈을 시장에 많이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라며 공공자금관리기금에 예탁하면 "당장 국채 발행량을 줄이면서 동시에 저축을 할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2027년 예산안 및 미래대응기금 토론회'에서 조용범 기획예산처 차관 등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기획예산처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6.9.11 ⓒ 뉴스1
지출 변경 30% 확대에 '신중론'…"기금 초과세수로까지 채워야 하나"

정부의 기금운용계획 변경 권한을 확대하는 방안에도 신중론이 나왔다. 정부는 미래대응기금의 일부 주요 항목에 대해 국회 의결 없이 변경할 수 있는 범위를 30%까지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석진 교수는 기금의 재량적 운용이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침해한다는 우려가 생길 수 있다며 국회 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민 연구위원 역시 현행 기금도 프로그램 단위로 20%까지 변경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20%가 왜 부족해서 30%까지 올려야 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특정 사업 기준으로는 현행 제도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조정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태석 부장도 발표에서 기금의 중대한 목적 변경이나 계정 간 자금 이전에는 국회 승인을 받도록 하고, 부채와 금융자산, 운용 비용, 다년도 성과 등을 통합 공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기금을 채우는 재원의 기준도 쟁점이다.

이태석 부장은 추가세수와 달리 초과세수는 당초 세입예산과 실제 세수 간 예측 오차의 성격이 강하다며 이를 기계적으로 기금에 적립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초과세수와 세수 부족은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것을 바탕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부분은 여러 가지 논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 변동이나 일회성 요인을 제거한 구조적인 세입 증가분을 기준으로 기금 재원을 산정하면 객관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제안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미래대응기금이 성장투자와 재정안정화라는 두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기 위해서는 운용 원칙을 보다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흠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재정제도분석팀장은 "지금은 세수 호황이 있기 때문에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을 수 있지만 현재의 대규모 재정 여력은 언젠가 없어질 수밖에 없다"며 "두 기능을 모두 완벽하게 중장기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thisriv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