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투자 2호는 美 원전 8기 유력…APR1400 2기·웨스팅하우스 지분 '승부수'

'텍사스 LNG' 1호 이어 1200억달러 규모 원전 8기…美 AP1000에 韓 APR1400 2기 적용
웨스팅하우스와 지분·사업 협력 연계 가능성…韓 원전 'IP 족쇄' 풀릴까

지난 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소고기 가공 및 사육 농가와 관련된 행정명령에 서명하기 전 발언하고 있다. 2026.09.04 ⓒ AFP=뉴스1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한미 간 대미 투자 협상의 후속 사업으로 미국에 최대 8기의 대형 원전을 건설하는 초대형 프로젝트가 추진된다. 총사업 규모는 약 1200억 달러로,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AP1000과 한국형 원전인 한수원의 APR1400을 함께 적용하는 방안이 협상 테이블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미국 측은 8기 모두 AP1000을 요구했지만, 양국은 이 가운데 2기를 APR1400으로 건설하는 방안에 잠정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번 협상에는 원전 건설뿐 아니라 웨스팅하우스와의 지분·사업 협력 방안까지 연계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이 미국 원전 시장에 대규모 자금과 건설 역량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웨스팅하우스와의 기술·지식재산권(IP) 관계까지 재정립할 경우, 그동안 한국 원전 수출의 제약 요인으로 꼽혀온 'IP 족쇄'를 완화하고 글로벌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원전 8기 1200억달러…AP1000에 APR1400 2기 잠정 합의

9일 정치권과 관계 부처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1호 대미 투자 프로젝트로 선정한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의 후속 사업으로 최대 8기의 대형 신규 원전을 미국에 건설하는 내용을 조율 중이다. 전체 사업 규모는 약 1200억 달러 수준이 거론되고 있다.

애초 미국 측은 웨스팅하우스가 개발한 AP1000을 원전 8기에 적용하는 방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한국형 원전 APR1400을 일부 적용하는 방안이 논의됐고, 현재는 8기 가운데 2기를 우리 기술력의 'APR1400'으로 건설하는 방안에 잠정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한국 원전의 미국 시장 진출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APR1400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건설·운영 경험을 축적해 온 대형 원전으로, 미국에서 실제 건설이 추진될 경우 한국형 원전의 글로벌 수출 시장 확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 나머지 원전에 대해서는 AP1000 적용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미국의 원전 기술과 한국의 원전 건설 역량을 결합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현재 단계에서 원전 8기의 사업 규모와 투자액이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부지와 사업자, 착공 시점, 최종 노형 구성, 투자 방식과 실제 자금 투입 규모 등은 추가 협상을 거쳐야 한다.

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도 협상…원전 수출 'IP 족쇄' 풀리나

원전 8기 건설과 함께 주목되는 것은 웨스팅하우스와의 협력 구조다.

이미 이번 대미 투자 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이 한국에 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를 제안했다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산업통상부는 한미 양국이 공동 출자해 웨스팅하우스 지분을 인수한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지만, 원전 사업을 둘러싼 양국 간 협력이 웨스팅하우스와의 관계 재정립으로 이어질 가능성에는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웨스팅하우스 지분은 캐나다 사모펀드 운용사 브룩필드가 51%, 우라늄 기업 카메코가 49%를 보유하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AP1000의 원천기술과 초기 설계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미국 원전 산업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대형 원전의 설계·조달·시공과 프로젝트 관리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웨스팅하우스의 기술력과 한국의 자금 조달 및 건설 역량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자국 원전 산업의 재건 속도를 높일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서도 웨스팅하우스와의 협력은 단순한 미국 원전 사업 참여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동안 한국 원전의 수출 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의 원천기술 및 지식재산권 문제가 매번 발목을 잡아 왔기 때문이다.

이후 지난해 1월 체코 원전 수출을 계기로 한수원과 한국전력은 웨스팅하우스와 원전 수출 관련 장기 합의를 맺으며 갈등에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당시 계약과 관련한 세부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각에서 웨스팅하우스에만 유리한 계약 조건으로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며 '굴종 계약'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원전 사업이 대규모로 확대하고, 한국이 참여할 경우 기존의 기술 사용 및 지식재산권 문제를 어떻게 조정할지가 또다시 중요한 협상 의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웨스팅하우스 지분 투자나 사업 협력 등을 통해 한국이 원전 기술·사업권과 관련한 실질적인 권리를 확보할 경우, 향후 제3국 원전 수출에서도 한국 원전 업계의 사업 영역이 넓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결국 이번 원전 협상의 핵심은 한국이 미국에 자금과 시공 능력만 제공하는 투자자로 참여하느냐, 아니면 APR1400 공급과 웨스팅하우스 협력을 통해 미국 원전 산업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원전 산업 재건을 위해 대규모 프로젝트와 기술력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고, 한국은 미국 원전 시장 진출과 기술·사업권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원전 8기 건설이 실제 후속 사업으로 확정된다면 웨스팅하우스와의 지분이나 사업권, 지식재산권 문제까지 함께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은 오는 18일쯤 대미 투자 관련 합의문을 발표하는 방안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전 8기 건설과 APR1400 2기 적용, 웨스팅하우스와의 협력 내용 등이 최종 합의문에 어느 수준까지 담길지가 관전 포인트다.

미국이 참여를 요구해 온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도 후속 대미 투자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원전 8기 사업이 후속 대미 투자의 핵심 프로젝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