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4만달러' 눈앞인데 지갑 그대로…"반도체 호황, 기술기업·고용 키워야"

명목GDP 26.4%↑ 46년 9개월만에 최대…반도체값 급등이 견인
전문가 "반도체 편중 착시 커…내수·중소기업으로 온기 넓혀야"

지난달 경기 평택항에 수출용 컨테이너와 차량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2026.8.11 ⓒ 뉴스1 구윤성 기자

(서울·세종=뉴스1) 전민 김혜지 기자 = 역대급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2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1년 전보다 26.4% 급증하며 46년 9개월 만에 최고 성장률을 기록했다. 수출을 중심으로 기업 소득과 국민소득은 크게 늘었지만 민간소비와 국내투자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수출 호황의 온기가 가계로까지 충분히 번지지 않는 모습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 4만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도 가계가 느끼는 경기와 소득 증가 사이에는 괴리가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에 편중된 성장의 고용·소비 파급효과가 제한적인 만큼, 성장 가능성이 있는 중소 기술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이를 고용으로 연결해 성장의 온기를 경제 전반으로 확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6년 2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2분기 명목 GDP는 834조 9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4% 늘었다. 이는 1979년 3분기(27.7%)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GDP 디플레이터는 전년 동기 대비 21.9% 올라 1980년 4분기(26.6%)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 중 수출 디플레이터가 56.6% 급등해 수입(21.0%)을 크게 웃돌았다.

한은은 높은 명목소득 증가세와 환율 안정이 이어질 경우 올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4만 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고 평가했다.

반도체 편중 착시…"체감 경기와 괴리 여전"

문제는 이 같은 호황이 반도체 업종에 편중돼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가 성장률을 견인하고 있지만, 그 온기가 경제 전반으로 퍼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2분기 민간소비는 전기 대비 0.4% 늘어나는 데 그쳐 총영업잉여 증가율(18.5%)에 크게 못 미쳤다. 국내총투자율도 24.2%로 1975년 3분기(22.0%)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설비투자 등 국내 투자 자체가 줄어서라기보다 소득이 워낙 가파르게 늘면서 투자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다. 늘어난 소득만큼 국내 소비나 투자로 옮겨가는 속도는 상대적으로 더디다는 의미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반도체는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크지 않아 체감 경기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며 "수출과 내수 산업의 연관성이 약한 탓에 내수는 여전히 침체된 상태에서 수출만 늘어 성장률이 높아진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수출로 벌어들인 자금이 시차를 두고 내수 회복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김화용 한은 경제통계2국 국민소득부장은 "법인세 중간예납, 삼성전자 현금배당 등을 통해 하반기부터 기업 소득의 가계·정부 분배가 점차 가시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2026년 2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2분기 명목 GDP는 834조 9000억 원으로 전 분기보다 9.2% 증가했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26.4%로 1979년 3분기(27.7%) 이후 46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가계·내수 온기 확산이 관건…"성장동력 다변화 위한 투자 필요"

1인당 GNI 4만 달러 달성 전망도 낙관만 하기는 이르다. 최근 달러·원 환율이 1340원대까지 떨어지며 2년 가까이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한 것이 4만 달러 가능성을 키운 주된 요인인데, 반도체 경기가 꺾이거나 환율이 다시 오르면 이 수치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질 1인당 소득 4만 달러를 원화로 환산해 4인 가구 기준으로 계산하면 2억 4000만 원 수준인데, 실제로 이만큼 버는 가구가 얼마나 되겠느냐"며 평균 지표 하나만으로는 실제 소득 분포를 보여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취약성은 반도체 한 업종에 성장이 쏠린 구조에서 비롯된다. 반도체 가격은 최근 1년 반 사이 크게 급등했는데, 사이클 산업 특성상 공급이 정상화하면 가격도 원래 수준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 호황이 만들어낸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로 인한 유동성 증가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가 GDP의 20%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유입된 자금이 시중 유동성과 물가, 자산가격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식 교수는 "한은이 전망한 올해 경상수지 흑자(4500억 달러)는 GDP 대비 22~23%에 달하는 큰 규모"라며 "이렇게 들어온 돈이 물가와 부동산 가격을 자극할 수 있는 만큼 통화량을 잘 관리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규제와 얽힌 정책 여건, 반도체의 낮은 고용 창출 효과, 석유화학·조선·철강 등 기존 주력 업종의 중국발 경쟁 심화로 내수 회복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확장재정만으로 온기를 이끌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반도체에 편중된 성장 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진다.

김상봉 교수는 "반도체 하나에만 의존하다가는 사이클이 꺾일 때 다시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며 "대기업 위주로 쏠린 정부 투자를 성장 가능성이 있는 중소 기술기업으로 돌리고, 고용과 연계한 지원 방식을 늘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