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조 미래대응기금 '재정 저수지'로…'추경 우회·쌈짓돈' 우려도
호황기 세수 적립해 불황 때 재정 보강…AI 등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
기금 재량 운용에 투명성 논란…추가세수 의존해 지속가능성도 과제
- 전민 기자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정부가 100조 원에 달하는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한 배경은 그간 세수가 늘면 재정을 더 풀고, 줄면 다시 조이는 경기순응적 재정운용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다.
반도체 호황으로 확보되는 추가세수를 단기 소비성 지출로 소진하거나 재정건전성 관리에만 치중할 경우 인공지능(AI) 대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깔렸다. 호황기에 세수를 적립하고 불황기에 재정을 보강하는 한편,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하겠다는 구상이다.
향후 2~3년이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한 국가 시스템 재설계의 결정적 시기라고 보고, 세수를 생산적 지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기금은 일정 범위에서 국회 의결 없이 집행할 수 있어 '쌈짓돈'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데다, 기금의 지속가능성과 재정 운용의 투명성을 어떻게 확보할지도 과제다.
기획예산처는 21일 제1차 재정운용전략협의회를 열고 미래대응기금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경기 확장기엔 세수 증가가 확장적 재정운용으로 이어지며 경기 과열과 물가 자극을 부채질하고, 반대로 경기 둔화기엔 세수 감소가 긴축적 재정운용으로 이어져 침체를 심화시키는 구조가 반복돼 왔다.
재정이 경기변동을 자동으로 완충해야 하는데, 오히려 경기 흐름을 따라가며 변동성을 키우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내국세와 연동된 지방교부세와 교육교부금도 이 같은 재정 변동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실제 2021~2022년 반도체 호황기에도 수십조원의 초과세수가 발생했지만 상당 부분이 단기 지출로 소진되거나 교육교부금 등으로 자동 배정돼 방만 집행 논란이 일었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기금 안에 총괄계정과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등 4개 사업계정을 두고, 자본축적·과감한 투자·탄력적 집행·시급성을 뜻하는 'NEXT 원칙'에 부합하는 사업에 재원을 집중 투입하기로 했다.
기획처 관계자는 "반도체 등 특정 핵심산업 의존도가 높아 업황 주기(3~5년)에 따라 세수 변동성이 크게 발생한다"며 "호황기에는 재원을 적립하고, 세수가 추세치에 미달할 때는 재정안정화 저수지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수가 장기 추세치를 밑돌거나 결손이 발생하면 기금에서 재정을 보강하고, 지방교부세 감소로 지방재정에 충격이 생길 때도 기금을 통해 지원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기금이 회계연도 중 예측하기 어려운 정책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한다는 대목을 두고는 국회 예산 심의를 거치지 않고 정부가 임의로 지출을 늘릴 수 있는 '쌈짓돈'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실상 상시 추경(추가경정예산)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획처 관계자는 "세출이 아니라 세입 측면에서 봐달라"고 반박했다. 당해연도에 발생하는 새로운 재원이 세입으로 잡히는 것일 뿐, 정책 수요가 생길 때마다 국회에서 추경을 거치지 않고도 기금 허용 범위(사업성 기금은 총지출의 20%, 그 외 기금은 30%까지 국회 승인 없이 집행 가능) 내에서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매년 국회 예산 심의를 받는 일반회계와 달리, 기금은 한 번 신설되면 관리주체인 기획처 재량으로 계정 간 자금을 넘나들며 비교적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에도 특별회계·기금이 지나치게 늘어나 재정 투명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는데, 이번 기금 역시 이런 '기금 남설(濫設)'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기획처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갑자기 세수가 더 생겼을 때 기존 급여통장에 넣을 수도 있지만, 그동안은 이런 재원을 별도로 관리할 통장이 없었다"며 "미진했던 부분을 별도 계좌로 운용해 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여유자금은 외부 전담 자산운용사를 통해 채권·주식 등에 투자해 국고채 3년물 수익률(3.85%) 이상을 목표로 운용하겠다고도 밝혔다.
실효성에도 물음표가 남는다. 기금의 핵심 재원인 추가세수 자체가 반도체 등 특정 산업 호황에 좌우되는 만큼 기금 재원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이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기획처 관계자는 "우리나라 세수구조가 반도체 업황 업다운이 3~5년 주기로 왔다 갔다 한다"며 "호황에는 적립하고 미달할 때는 재정안정화 저수지 기능을 활용해, 이번 호황뿐 아니라 3~5년 뒤 산업구조가 변화하면 기금 구조상 추가세수가 다시 쌓이도록 설계했다. 결손이 발생하면 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세계잉여금의 법정 처리 순서(교부세 정산→공적자금상환기금 출연→국채상환) 앞에 새 기금을 끼워 넣으려면 국가재정법 개정이 불가피해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는 점도 변수다.
정부는 이날 재정운용전략협의회에서 안건을 상정한 뒤 미래대응기금 패키지 법안을 오는 24~28일 입법예고하고, 다음 달 1일 국무회의를 거쳐 3일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min78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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