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성장률 3.0%, 美 2.0%·中 4.5%로 상향…"韓, AI 사이클 변곡점 중요"
미·중 상향에도 유럽 부진·일본 저성장…내년 세계경제 3.1% 전망
韓 반도체 수출 호조 속 AI 투자 둔화 땐 취약 부문 압박 동시 부각
- 이강 기자
(세종=뉴스1) 이강 기자 =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1월 당시 전망과 같은 3.0%로 유지했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은 인공지능(AI)·데이터센터 투자 호조와 전략산업 확대 등에 힘입어 성장률을 상향 조정했다. 반면 유럽은 제조업 경쟁 심화 등의 이유로 전망치를 내렸다.
KIEP는 한국 경제에 대한 성장률 전망치는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올해부터 AI 투자의 성장 기여도가 점차 둔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한국이 AI 수요 흐름의 변곡점을 잘 판단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KIEP는 11일 발표한 '2026년 세계 경제 전망(업데이트)'에서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3.0%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0.4%포인트(p) 낮은 수치로, 지난해 11월 KIEP 전망치와 같다.
KIEP가 지난해와 같은 세계 성장률 전망을 유지한 배경에는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의 성장률 상향 조정이 자리했다.
먼저 미국은 지정학적 불안에 따른 에너지 비용 부담과 관세 불확실성에도 AI·데이터센터 투자 호조 등에 힘입어 올해 2.0%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종전 전망치보다 0.4%p 오른 수치다.
다만 KIEP는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실질구매력 약화, 관세의 소비자물가 전이, 이민 감소에 따른 노동 공급 둔화 등은 성장세를 제한할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중국은 부동산 부진과 더딘 내수 회복에도 AI·로봇 등 전략산업 투자 확대와 적극적 재정·완화적 통화 기조에 힘입어 4.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종전 전망치보다 0.3%p 높은 수준이다.
반면 유럽의 경우 에너지 가격 상승과 중국과의 제조업 경쟁 심화 등으로 회복세가 제약됨에 따라 전망치를 1.1%에서 0.9%로 낮췄다. 주요국 중에는 독일(0.8→0.5%), 이탈리아(0.7→0.5%) 등을 하향 조정했다. 특히 영국은 금리 인하 지연으로 고금리 부담이 지속됨에 따라 전망치를 1.1%에서 0.8%로 내렸다.
일본은 교역조건 악화와 대외 수요 둔화로 성장세가 제약되며 0.7%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11월 전망치보다는 0.1%p 높지만, 저성장 흐름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이시욱 KIEP 원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간담회를 통해 "미국과 중국 두 나라만 합쳐도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1을 훌쩍 넘는다"며 "이 두 나라의 1분기 실적을 보수적으로 봤던 것보다 굉장히 높기 때문에 결국은 전체 세계 경제 성장률은 사실은 수치적으로 보면 작년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3.0%는 에너지 시장의 충격과 인플레이션, 내수 등의 영향에 따라 충분히 변할 수 있는 숫자"라고 덧붙였다.
내년 세계 경제는 유럽의 완만한 회복과 인도·아세안 성장세 개선에 힘입어 전년보다 소폭 높은 3.1%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선진국 중 미국은 AI 관련 투자와 생산성 개선 효과가 지속되겠지만 성장 기여도가 점차 약화하고 소비 증가세도 완만해지면서 올해보다 낮은 1.8%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중국은 정책 지원 효과에도 부동산 조정 장기화와 과잉설비 해소 지연, 통상갈등 부담이 지속되며 전년보다 낮은 4.3%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유로 지역은 에너지 비용 부담 완화와 방위비·인프라 투자 효과로 1.2% 성장하고, 영국도 금리 인하 효과와 실질임금 회복에 힘입어 1.3%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됐다.
일본은 에너지 가격 충격이 완화되고 자동화·디지털화 투자 수요가 이어지겠지만 통화정책 정상화에 따른 금리 부담과 대외 불확실성으로 전년과 비슷한 0.6%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이외에도 KIEP는 올해 신흥국 성장률 전망치로 △인도 6.4% △아세안 5개국 4.8% △러시아·브라질 1%대 등을 제시했다.
내년에는 인도가 6.8%, 아세안 5개국이 5.1%로 성장세가 개선되는 반면, 중국은 4.3%로 소폭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는 제재와 투자 부진, 전쟁 관련 재정 부담 등이 이어지며 1.2%, 브라질은 금리 인하 효과에도 재정 제약과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1.9%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KIEP는 올해 세계 경제 키워드로 '중첩된 충격, 좁아진 활로'를 꼽았다.
중동발 에너지 충격 장기화, 상호관세 위법 판결 이후에도 계속되는 통상 불확실성, 주요국 재정 부담 확대와 국채 시장 불안 등이 복합적으로 성장의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중동발 에너지 충격은 유가와 가스 가격 상승, 해상 운송비 상승을 통해 생산비와 물류비를 끌어올릴 것으로 봤다. 이는 다시 물가 재상승과 통화 완화 지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통상정책 불확실성도 주요 리스크로 꼽혔다. 관세의 법적 근거와 환급 문제, 정책의 예측 가능성 저하는 기업 투자를 지연시키고 공급망 재편 비용을 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재정 여력 약화와 국채 시장 불안도 하방 압력으로 제시됐다. 국채 발행 확대와 장기금리 상승은 금융 여건을 긴축시키고 신흥국 자본 유출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윤상하 KIEP 국제거시금융실장은 "이번 전망에서 강조하는 점은 이 세 가지 리스크가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라며 "에너지 가격은 물가를 끌어올리고, 물가는 금리 인하를 지연시키며, 금리 상승은 다시 재정 부담을 키운다. 동시에 통상정책 불확실성은 투자와 교역을 제약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세 가지가 모두 AI 투자 속도 조절, 위험 자산 회피, 달러 강세와 환율 변동성, 신흥국 취약성 확대라는 공통 증폭 요인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며 "이번 전망에서는 개별 리스크보다 리스크 간의 결합과 파급 경로를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동 정세 불안이 지속되면서 유가에는 큰 변동성이 내재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KIEP는 향후 유가 흐름이 미·이란 사태의 진정 여부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봤다. 올해 유가는 전쟁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복귀하기보다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금리 측면에서는 공급발 인플레이션과 재정 부담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고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환율과 관련해서는 유가 상승과 물가 상승, 안전자산 선호 등이 달러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향후 지정학적 긴장이 완화될 경우 달러 강세 폭은 다소 축소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KIEP는 이날 올해 한국의 성장률에 대해 별도의 전망을 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 경제와 관련해 AI 투자와 반도체 수출 호조의 성장 기여도가 내년부터 점차 둔화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특히 글로벌 AI 수요 사이클이 꺾이는 시점에 에너지 가격 충격과 통상 불확실성이 겹치는 상황을 우려했다.
비용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온 취약 부문뿐만 아니라 한국 거시경제를 견인해온 반도체 등 수혜 부문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KIEP는 "AI 관련 투자의 GDP 기여도는 2025년을 정점으로 2026년부터 점진적 둔화가 전망되고 있어, 한국이 의존하는 글로벌 AI 수요 사이클의 변곡점이 언제가 될지 판단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AI 투자 사이클의 둔화와 글로벌 에너지, 통상 충격이 동일 시점에 중첩될 경우, 현재 거시경제 총량을 견인하는 수혜 부문과 이미 압박을 받고 있는 부문이 동시에 영향을 받는 시나리오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반도체 등 일부 수출 품목의 호조가 한국 경제 전체의 총량 지표를 떠받치고 있지만, 해당 흐름이 둔화할 경우 그동안 가려졌던 산업별 비용 부담과 내수 부문의 취약성이 동시에 부각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윤 실장은 AI 기여도 둔화 판단과 관련해 "투자 사이클 붐이 꺾일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니다"라며 절대 투자액은 커지더라도 전년 대비 증가 폭이 줄면 성장 기여도는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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