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묶고 '절약' 승부수…중동 위기 속 정부 정책 시험대

李대통령 "웬만하면 요금 유지"…민생 부담 고려 동결 기조
전쟁 장기화 시 연료비 상승·한전 부채에 인상 압박 불가피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청사 직원들이 원유 안보위기 ‘주의’ 경보 발령에 따른 공공 차량 5부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공공부문은 에너지절약을 실천하기 위해 이날부터 전기차와 수소차를 제외한 승용차 5부제를 의무적으로 시행한다. 2026.3.25 ⓒ 뉴스1 임세영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중동발 에너지 위기 속에서도 정부가 전기요금 동결 기조를 유지하며 민생 부담 완화에 나섰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전력 도매가격(SMP)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요금 인상 대신 수요 관리 중심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전기요금 동결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가격 조정 없이 절약 유도만으로 전력 소비를 관리할 수 있을지 정책 실효성이 시험대에 올랐다.

29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전기요금은 정부가 100% 책임지고 있는 구조라서 웬만하면 지금 변경하지 않고 유지하려고 한다"고 밝히며 당분간 요금 동결 방침을 재확인했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물가 상승 부담을 고려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상반기까지 전기요금 동결한 정부…유가 상승 등 생활물가 부담 탓

정부가 요금 동결 기조를 유지한 배경에는 최근 석유 가격 상승과 맞물린 생활물가 부담이 자리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상승할 경우 교통·물류 비용은 물론 전반적인 소비자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전기요금까지 인상될 경우 체감 부담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부는 요금 인상 대신 에너지 절약을 통한 수요 관리에 정책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차량 운행 제한을 기존 10부제에서 5부제로 강화하고,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전력 사용 절감 조치를 확대하는 한편 민간 기업과 가정의 참여를 유도하는 캠페인도 병행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25일부터 공공부문에 대해 승용차 5부제를 의무 시행하고, 민간은 자율 참여를 기본으로 하되 향후 원유 수급 상황이 악화해 '경계' 단계가 발령될 경우 의무 적용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공공부문 5부제 시행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았던 2011년 이후 약 15년 만이며, 민간까지 확대될 경우 1991년 걸프전 이후 35년 만의 조치가 된다.

현재 민간 부문에 대해서는 권고 수준에 그치고 있으나, 기업들은 조명 소등과 차량 운행 제한 등 자발적인 에너지 절감 조치를 도입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자원안보위기 경보가 '경계' 단계로 격상될 경우 민간에도 5부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전기·수소차와 생계형·장애인 차량을 제외하면 약 2370만 대가 적용 대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같은 노력에도 전력 수급 구조를 고려하면 비용 부담은 계속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전력 도매가격(SMP)은 발전 연료비, 특히 액화천연가스(LNG) 가격과 밀접하게 연동되는 구조로, 국제 유가가 상승할 경우 전력구입비 부담이 증가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처럼 연료비 상승이 곧바로 전력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인 만큼, 요금 동결이 지속될 경우 비용 부담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27일 언론 인터뷰에서 "석유와 가스 총량은 확보돼 있다"면서도 "국제 유가가 오르면 LNG 가격이 연동돼 상승하고, 그 영향이 전기요금에 3~6개월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쟁이 장기화하면 인상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국민 부담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력 수요 측면에서도 변수는 적지 않다. 전기요금이 동결될 경우 가격 신호가 약화되면서 전력 사용량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산업계에서는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낮을 경우 전력 사용이 늘어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李대통령 "요금 유지한다면 재정 손실·과도한 에너지 낭비도 문제" '절약' 강조

이 대통령 역시 이러한 점을 언급했다. 그는 "전기요금을 이대로 유지할 경우 정부 재정 손실도 문제고, 과도한 에너지 낭비 문제도 생길 수 있다"며 재무 부담을 짚은 후 "국민 여러분께서 전기 사용을 각별히 협조해 주시길 당부드린다"라고 절약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같은 구조적 부담은 한국전력의 재무 상황과도 직결된다. 한전은 현재 200조 원을 웃도는 부채를 안고 있으며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국면에서는 전력구입비 부담이 추가로 확대될 수 있는 구조다. 전력 판매 단가가 비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경우 재무 부담이 누적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국제 유가와 LNG 가격이 상승할 경우 전력구입비 증가가 일정 시차를 두고 요금 체계에 반영되는 구조인 만큼, 현재의 요금 동결 기조가 향후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요소로 꼽힌다.

정부는 당분간 전기요금 동결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중동 정세와 국제 에너지 가격 흐름을 면밀히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상황 변화에 따라 전력 수급 여건과 비용 구조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응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국제 유가 상승이 장기화될 경우 연료비 상승분이 순차적으로 반영되는 구조상, 하반기 이후에는 요금 조정 논의가 다시 불가피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민생 안정과 재무 부담 사이에서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가 향후 전기요금 정책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freshness41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