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최고가격제' 1주일…주유소 90%가 내렸지만 소비자 "체감 안 돼"

전쟁 뒤 200원 상승, '정부 개입' 뒤 내릴 땐 35원 '찔끔'
인위적 개입 부작용 우려도…정부에선 추가개입 카드 '만지작'

이스라엘이 이란 최대 가스전을 폭격하고 이란이 주변국 에너지 시설에 반격하면서 국제유가가 다시 급등한 가운데 19일 서울 시내의 주유소에 유가정보판이 놓여 있다. 2026.3.19 ⓒ 뉴스1 김민지 기자

(세종=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정부가 기름값 급등을 막기 위해 '석유 최고가격제(가격상한제)'를 시행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소비자가 체감할 만한 가격 안정 효과는 아직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주유소 상당수가 가격을 내리기는 했지만, 인하 속도와 폭이 전쟁 초기 상승분을 따라가지 못했고, 현장에서는 재고 손실과 수익성 악화 같은 부작용도 제기되고 있다.

20일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18일 기준 서울지역 보통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L)당 1853.22원으로 집계됐다.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35원 안팎 내렸지만, 중동 전쟁 초기인 이달 1일 1751.75원과 비교하면 여전히 101.47원 높은 수준이다. 고점에서는 내려왔어도 소비자가 느끼는 부담은 아직 충분히 완화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시행 1주일, 90% 주유소 가격 인하…"하락 폭은 기대 이하"

전국 주유소 흐름도 비슷하다. 정부와 시민단체 집계를 보면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약 90%의 주유소가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내렸다. 겉으로 보면 정책이 시장을 움직인 셈이지만, 세부 수치를 보면 평가가 달라진다.

전쟁 발발 직후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단기간에 가파르게 올랐는데, 최고가격제 이후 하락 속도는 그보다 느렸다. 결국 '올릴 때는 빠르고 내릴 때는 느리다'는 기존 흐름이 완전히 바뀌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미국-이란 갈등 뒤 서울 내 휘발유가격 1~18일 추이 ⓒ 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정부가 정유사 공급가격과의 차액 일부를 보전하면서 유류 최고가격을 설정한 것도 한계로 지목된다. 현재 고시된 최고가격은 리터당 휘발유 1724원,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이다. 단기적으로 급등세를 억제하는 효과는 있지만, 국제유가 상승 흐름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아니어서 장기간 유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다음 고시 시점에 국제유가 상승분이 한꺼번에 반영될 경우, 소비자 가격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주유소는 "팔수록 손해" 토로…재고 손실·수익성 악화 부작용도

정책 부작용은 일선 주유소에서 먼저 드러나고 있다. 주유소들은 국제유가 상승 전망에 따라 3월 초 이미 높은 가격에 유류를 확보했는데, 정부가 판매가격을 낮추면서 재고 손실을 감수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토로한다. 가격을 내리면 중간이윤이 거의 사라지고,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유지하면 점검 대상이 되기 때문에 사실상 버티기 어렵다는 것이다. 카드 수수료까지 감안하면 고가 재고는 팔수록 적자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최고가격제가 소비자 부담을 일부 덜어준 것은 맞지만, 지속 가능한 정책이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소비자 입장에선 가격이 다소 내려도 여전히 전쟁 초기보다 비싸고, 주유소 입장에선 손실 누적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재정으로 손실을 보전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국제유가 불안이 길어질수록 정책 부담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제유가 상승에도 급격한 가격 인상을 막기 위해 일정 기간 유류 최고가격을 설정하고, 정유사에는 공급가격과의 차액 일부를 보전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관리하고 있다. 이런 방식이 단기적으로 급등세를 누르는 효과는 있지만, 시장 가격 기능을 왜곡해 수요 억제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철우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가격에 직접 개입하면 부작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며 "시장 가격이 반영돼야 할 수준보다 인위적으로 낮아지면 수요 조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위적 가격 억제 한계"…차량 5부제 등 수요 관리 병행 검토

오히려 시장 가격 자체를 반영하는 편이 더 실효적인 수요 억제책이라는 의견도 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위적인 최고가격제보다 시장 가격을 반영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수요 억제책"이라며 "가격이 오르면 승용차 이용이 줄고 대중교통 수요가 늘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9일 오전 범부처 합동점검단과 함께 서울 송파구에 있는 정유사 직영 주유수를 불시에 방문해 점검하고 있다. (산업통상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3.19 ⓒ 뉴스1

정부도 최고가격제만으로 상황을 관리하기 어렵다고 보고 추가 대응을 검토 중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국민 차원의 '에너지 다이어트' 필요성을 언급했고, 이재명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범사회적 에너지 절약 확산과 자동차 5부제 또는 10부제 같은 수요 절감 대책을 주문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최고가격제 시행 1주일 결과, 가격 급등 억제에는 일부 효과가 있었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수준은 제한적이었다"며 "주유소의 가격 인하 비율은 높았지만 하락 폭은 기대보다 작았고, 소비자 부담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주유소 경영난과 정부 재정 부담까지 겹치면서, 최고가격제가 중동 변수에 맞선 단기 진화책 이상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ac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