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환율 1500원 쇼크…"이란 사태 악화 땐 재돌파 경고"

에너지 수입 의존도 높은 韓…다른 통화 대비 약세폭 커
"사태 악화 시 1500원 다시 뚫을수도…트럼프 출구전략이 관건"

미군 공습으로 훼손된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빌딩 앞에서 주민이 이란 국기를 들고 서 있다. 2026.03.02 ⓒ 로이터=뉴스1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간밤 달러·원 환율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장중 1500원 선을 돌파하는 등 외환시장이 충격에 휩싸였다. 최근 1420원대에서 하향 안정화 기조를 보이던 환율은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 간의 지정학적 무력 충돌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심리적 방어선을 단숨에 넘어섰다.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 걸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된 영향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당분간 환율의 향방이 전적으로 중동 상황의 전개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사태가 악화되거나, 장기화될 경우 환율이 재차 1500원을 상회하며 고점 경신을 시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호르무즈 봉쇄 위협에 1500원 터치…'에너지 취약' 韓 직격탄

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간밤 서울 외환시장 연장거래 시간대 달러·원 환율은 한때 1500원을 일시적으로 넘어섰다. 달러·원 환율이 1500원을 웃돈 것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 간 전쟁 장기화 우려로 위험 회피 심리가 강해지면서 안전 자산인 달러화로 자금이 쏠린 영향이다.

이날 환율은 전날 주간 종가 대비 12.9원 오른 1479.0원에 출발한 뒤 1480원 안팎에서 등락을 이어가고 있다.

환율 폭등의 진원지인 중동 정세는 점차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특히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봉쇄 선언이 금융시장 심리를 뒤흔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즉각 군사·경제적 대응 조치를 발표하며 압박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필요할 경우 미 해군은 가능한 한 빨리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 호위를 시작할 것"이라며 "어떤 일이 있어도 미국은 전 세계로 향하는 에너지의 자유로운 흐름을 보장할 것"이라고 맞불을 놨다.

또한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에 걸프 해역을 통과하는 모든 해상 교역과 에너지 수송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정치적 위험 보험 및 금융 보증을 제공하도록 지시했다.

원화가 지정학적 위기에 유독 취약한 흐름을 보이는 배경에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특성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동일한 국내총생산(GDP)을 창출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이른바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제조업 중심의 수출국이다.

특히 산업 가동에 필수적인 원유와 천연가스 등 핵심 에너지를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중동 지역의 대외 에너지 공급망에 차질이 생길 경우 국가 경제 전반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현재 달러·원 환율은 자체적인 동력보다는 중동 사태에 완전히 종속된 변수로 움직이고 있다"며 "원화가 유난히 취약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한국이 제조업 중심 국가로서 에너지 집약도가 높고 핵심 에너지를 전량 수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과 에너지 수급 차질에 대한 악영향이 크게 우려되면서 원화의 약세폭은 다른 주요국 통화 대비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28일 이란에 대한 공습을 발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같은 날 TV 연설에 나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2026.2.28 ⓒ AFP=뉴스1
관건은 트럼프 출구 전략…변동성 장세 계속, 1500원 재돌파 가능성도

결국 최대 관건은 이번 중동발 위기가 언제쯤 진정 국면에 접어들지 여부다. 전문가들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조기 출구 전략 모색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사태가 악화될 경우 환율이 1500원을 넘어 재차 고점 돌파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백석현 연구원은 "미국은 한국보다 대중교통 통근 비중이 낮아 휘발유 가격 폭등이 민심 이반에 직격탄이 되기 때문에, 유가가 지나치게 오르면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국내 정치적으로 매우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 해군의 호르무즈 해협 호위 등을 약속하며 시장 달래기에 나선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다만 백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안정을 시도했지만 아직 불확실성이 짙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중동 사태가 악화하면 재차 고점을 높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시나리오대로 한 달 안에 상황이 다소 진정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물론 인근 중동 지역의 석유 및 가스 시설까지 겨냥하고 있어 분위기는 매우 험악하다"고 평가했다.

이 연구원은 "3월 한 달 간은 전쟁 전개 상황에 따라 금융변수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구간이 됐다. 유가가 오를수록 달러화는 강해지고 원화는 약해질 것이며, 전쟁이 진정되면 반대 힘이 작동할 것"이라며, 3월 환율 변동 범위를 1430원에서 1510원까지 넓게 열어둬야 한다고 분석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향후 1주일 정도가 이란 사태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박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사태의 출구를 조기에 찾을 수 있을지가 최대 관건"이라며 "만약 미국이 조기에 출구를 찾는다면 에너지 가격 급락과 함께 트럼프 행정부의 부양 정책 기조가 다시 강화될 여지도 충분하기 때문에, 지나친 비관보다는 경계감을 가지고 상황을 지켜봐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이란 간의 무력 충돌로 경제시장 불안감이 지속되고 있는 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나오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38.98포인트(4.13%) 하락한 5552.93, 코스닥은 전 거래일보다 32.87포인트(2.89%) 하락한 1104.83에 거래를 시작했다. 원·달러 환율은 12.50원 오른 1478.60원에 거래되고 있다. 2026.3.4 ⓒ 뉴스1 이호윤 기자
비상 걸린 외환당국…총재 출국 미룬 한은, 시장 안정 총력

외환당국도 일시적인 환율 1500원 돌파라는 이례적 상황에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시장의 과도한 불안 심리를 차단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은행은 4일 오전 이창용 총재 주재로 '중동상황 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전날 런던과 뉴욕 시장에서 원화 가치가 급락한 배경과 주요국 환율 변동 상황을 점검했다.

이 총재는 당초 태국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결제은행(BIS)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환율 변동성이 커지자 공항에서 발길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은 현재 대외차입 가산금리,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등 펀더멘털이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분석하면서도 당분간 중동 상황 전개에 따라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한은은 "시장 심리가 한 방향으로 쏠리지 않도록 필요할 경우 정부와 협조해 적기에 대응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