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관세는 언제든 다시 나온다…한미 통상의 불편한 진실
- 이정현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큰 고비를 넘긴 듯 보이던 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예고 없이 다시 한국을 겨냥한 '25% 관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국회에서 대(對)미 투자특별법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는 이유였다. 협상의 궤도가 안정권에 들어섰다고 판단했던 통상 환경은 한순간에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막바지 조율 국면이라 여겼던 한·미 통상 관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다시 불확실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변심을 더 이상 돌발 변수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협의의 진전과 무관하게 언제든 관세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는 전제가 이제는 한·미 통상 관계의 기본 조건, 다시 말해 하나의 '상수'로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정부는 외교·통상 라인을 총동원해 워싱턴을 찾았지만,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조현 외교부 장관까지 잇따라 미국을 방문했으나 카운터파트와의 핵심 면담은 성사되지 않거나 원론적 설명에 그쳤다.
미국은 결과를 요구했고, 우리는 절차를 설명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에 부딪혔다. 관세 재인상을 막기 위한 설득전은 이어졌지만, 정작 미국이 문제 삼는 입법과 이행의 열쇠는 행정부가 아닌 국회에 있었다.
이 지점에서 이번 협상을 단순히 '외교 실패'나 '협상력 부족'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미국의 압박이 일방적이고 거칠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한국이 국제사회와의 합의 이행을 둘러싸고 신뢰를 충분히 관리하지 못한 측면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국내 정치 일정과 입법 지형을 이유로 약속된 사안을 미루는 동안, 미국은 이를 '의도적 지연'으로 받아들이며 또 '관세'라는 가장 효과적인 압박 수단을 선택했다.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가 동맹국에 대한 배려보다 국내 정치적 계산을 앞세운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접근은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재현될 때마다 정부와 산업계가 매번 즉흥적으로 대응하며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는 데 있다. 트럼프발 관세 압박이 상수라면, 이제 필요한 것은 사후 해명이 아니라 사전 관리다.
대미 투자 이행, 방산·원전 협력, 첨단산업 공급망, 통상·안보 패키지 합의의 후속 조치 등과 같은 미국이 향후 문제 삼을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시나리오별로 점검하고, 국내 의사결정 구조의 병목을 최소화할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한다.
여기에 지난해 정상 간 합의를 통해 언급된 핵추진잠수함 건조,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우라늄 농축 허용 등 민감한 사안들 역시 상호주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챙길 필요가 있다. 미국이 합의 이행을 지렛대로 관세를 압박한다면, 한국 역시 약속된 후속 조치의 진행 상황을 공식 의제로 올려 균형을 맞춰야 한다. 외교는 호소가 아니라 거래의 영역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한·미 관세 협상의 갈등이라기보다, 트럼프 시대 통상 환경의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사건에 가깝다. 불확실성 자체를 제거할 수 없다면, 그것을 관리 가능한 변수로 낮추는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관세 카드를 '예외적 돌발 변수'로 취급하는 순간, 우리는 매번 같은 혼란을 반복하게 된다. 이제는 그 변수를 상수로 전제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euni12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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