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재무 이례적 구두개입에 환율 '뚝'…"韓 투자·美 실리 통했다"

베선트 "펀더멘털과 괴리" 발언에 환율 진정…"3500억불 대미투자 고려"
일각선 "과도한 약세 경고한 것" 신중론도…향후 효과 지켜봐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2025.10.27.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세종=뉴스1) 전민 이강 심서현 기자 = 거침없이 오르며 1480원 선을 위협하던 달러·원 환율이 미국 재무장관의 말 한마디에 1460원대로 주저앉았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경제 수장이 특정 국가의 통화 가치를 콕 집어 "약세가 과도하다"며 방어에 나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미국의 '깜짝 등판' 배경에 3500억 달러(약 490조 원)에 달하는 대미(對美) 투자 약속과 미국의 무역 이익 보호라는 양국의 이해관계 일치가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미국의 발언이 한국의 인위적 환율 개입을 경계하는 경고성 메시지일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됐다.

달러·원 환율의 급등세는 진정됐지만, 추세적인 하락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美 재무장관의 이례적 등판…환율 10원 넘게 '뚝'

1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일 대비 12.5원 내린 1465.0원에 거래를 시작하며 안정세를 되찾았다. 이후 오전 장중 1467원 내외에서 거래되고 있다.

전날까지 5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1480원을 위협하던 시장의 분위기를 단번에 바꾼 건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의 발언이었다. 베선트 장관은 12일(현지시간)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원화 가치 하락은 한국의 강력한 펀더멘털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외환시장의 과도한 변동성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사실상의 '구두 개입'이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에서도 원화 약세를 우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간 환율 급등을 야기한 롱(달러 매수) 심리 과열이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2026.1.6/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3500억불 투자·관세 효과…이해관계 맞아떨어진 한미

시장에서는 이번 발언의 배경에 대해 "한미 간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우선 한국 입장에서는 대규모 대미 투자가 급한 불이었다. 한국은 미국에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한 상태다. 하지만 환율이 1500원에 육박하는 고공행진을 이어갈 경우, 기업들의 환전 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투자가 지연되거나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구 부총리가 고환율에 따른 대미 투자의 현실적 어려움을 설명했고, 이에 미국 측이 화답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 자국 이익에 부합했다는 분석이다. 원화 가치가 지나치게 떨어지면, 한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미국이 부과하는 관세 정책의 효과가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베선트 장관이 이날 "양국 경제 파트너십 심화와 미국 산업 재활성화"를 강조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관세를 높이는 것은 결국 자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함인데, 환율이 급등하면 관세 효과가 희석된다"며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이나 일본의 환율이 급격하게 오르는 것은 바라지 않기 때문에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상현 iM증권 전문위원 역시 "한·미 관세 협상에 따른 연간 대미 투자가 충실히 이행되기 위해서라도 과도한 원화 약세는 미국 입장에서도 불편했을 것"이라며 한국 외환당국과의 공조 가능성을 시사했다.

박지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과의 교역 규모가 큰 상황에서 달러·원 환율이 지나치게 높으면, 미국의 무역수지에는 악재가 된다"며 "미국도 높은 환율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발언을 한국 정부의 'SOS' 수용으로만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베선트 장관이 보기에 한국은 반도체·자동차 수출 호조로 펀더멘털이 좋은데도 원화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을 인위적 개입으로 의심했을 수 있다"며 "오히려 환율 관찰 대상국 지정을 암시하는 일종의 '견제구' 성격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신중론을 폈다.

13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증시 표시가 나오고 있다. 2026.1.13/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환율 '숨 고르기' 들어갔지만…중장기 효과는 신중론

미국의 등판으로 환율이 일시적인 안정세를 찾았지만, 전문가들은 추세적인 급락세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민경원 이코노미스트는 "롱 심리 과열은 진정되겠지만, 수입업체 결제와 해외주식 투자 등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환율 하단을 지지할 것"이라며 당분간 1460원대 중심의 등락을 전망했다.

박지원 부연구위원도 "일시적으로 환율의 조정 가능성은 있지만, 환율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워낙 강한 상황"이라며 "기대심리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상현 전문위원도 "한·미·일 재무장관의 동반 구두 개입은 단기적 효과를 보이겠지만, 그 효과가 어떻게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면서도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억압 정책 강화, 미니 양적 완화 등이 달러 약세 압력으로 작용해 상반기 중 완만한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강인수 교수는 "미국이 통화스와프 같은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작다"며 "1400원대 후반을 뉴노멀로 인식하고, 단기 처방보다는 기업 밸류업 등 펀더멘털 강화를 통해 긴 호흡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