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발 안먹히는 환율에…'유턴 서학개미' 양도세 카드까지 꺼낸 정부

해외주식 유턴 투자·환헤지에 양도세 감면 카드
"단기간 큰 변화는 쉽지 않아, 점진적으로 효과 나타날 것"

24일 오전 서울 시내의 환전소 전광판에 환율 등 정보가 나오고 있다. 2025.12.24/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세종=뉴스1) 이강 기자 = 고환율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자 정부가 '서학개미'들을 대상으로 세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최근 금융기관과 기업, 외국인을 대상으로 유동성 유입 정책을 발표한데 이어, 이번에는 해외로 나간 개인투자자의 자금을 국내로 되돌리는 방안을 내놓은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24일 이같은 내용의 '국내 투자·외환 안정 세제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해외 주식을 팔아 달러를 원화로 바꾸거나, 환헤지를 통해 달러를 시장에 공급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외환당국의 잇단 노력에도 환율이 내려오지 않자, 환율 증가의 원인으로 꼽혀온 '서학개미'를 불러들이기 위해 초강수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목표는 '유턴'…해외→국내 '달러 고속도로' 통행료 깎는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유턴 투자'다. 개인투자자가 해외 주식을 매각해 국내로 자금을 들여올 경우 '국내시장 복귀계좌'(RIA)를 통해 양도소득세를 최대 5000만 원 한도로 감면해 준다.

특히 최근 환율 상황을 고려해 빨리 돌아올수록 세금을 많이 깎아주는 감면율 차등 적용 방식을 도입한다. 예를 들어 내년 1분기에 국내로 복귀하면 100%, 2분기에는 80%, 하반기에는 50%의 세액 감면 혜택을 부여하는 식이다.

정부가 이처럼 파격적인 대책을 낸 것은 잇단 노력에도 달러·원 환율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달 들어 외환시장 안정 대책을 연이어 내놨다. 외국계 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늘리고, 외화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를 완화했으며,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거래도 확대·연장했다.

한은은 사상 처음으로 외화지급준비금(외화지준)에 이자를 지급(부리)하는 방안도 내놨다. 달러 유입을 막던 과거의 규제를 완화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달러·원 환율은 지난 2일 주간거래 종가 기준 1480.1원까지 오르며 다시 고점을 찍었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았던 수준도 이미 넘어섰다.

그간 외환당국은 환율 변동성 확대의 원인 중 하나로 개인 해외투자를 지목했다. 서학개미의 해외 주식 투자가 환율 상방 압력을 키운다는 인식 때문이다. 당국은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자산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달러 수요가 꾸준히 발생하고, 이 흐름이 환율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올해 1~11월 개인 해외 주식 투자액은 309억 달러로 국내 주식 투자액을 크게 웃돌았고, 개인 해외주식 보유 잔액도 3분기 말 기준 16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런 인식 속에서 증권사들이 해외 주식 신규 마케팅을 사실상 중단한 것도, 시장에서는 당국의 신호를 반영한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해외 주식을 당장 팔지 않아도 외환시장에 달러를 공급할 수 있는 장치도 함께 마련했다. 개인투자자용 선물환 매도 상품을 통해 환헤지를 할 경우, 매입액의 일정 비율을 양도소득세에서 공제해 주는 방식이다.

환율이 내려갈 때 발생할 수 있는 환손실을 세제로 보완해 주겠다는 취지다. 개인투자자는 환리스크를 줄이고, 정부는 달러 공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치도 포함됐다. 해외 자회사로부터 들어오는 배당금에 대한 익금불산입률을 100%로 높여, 기업 차원의 외화 환류를 유도한다.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연말 종가가 문제…막판 '환율 다이어트' 총력

당국이 연말을 앞두고 환율 '레벨 관리'에 집중하는 데는 연말 종가 환율의 상징성과 실익 때문이다. 연말 종가 환율은 기업과 금융기관이 내년도 재무제표를 작성할 때 적용하는 결산 환율이다.

환율이 높은 상태로 연말을 넘기면, 외화부채를 들고 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부채비율이 늘고, 신용등급과 자금조달 비용에도 연쇄적인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정부 대책의 효과를 단기보다는 중장기적으로 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번 조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진적으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본다. 개인투자자들이 그동안 환헤지를 거의 하지 않고 해외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단기간에 큰 변화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세제 혜택이 일정 부분 유인이 될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해외투자 후 국내로 돌아올 때 양도소득세 등 세제 혜택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는 "장기 국고채 등 세제에 민감한 자산에 투자하는 자산가의 경우, PB들이 설계를 잘하면 이번 기회를 활용할 여지가 있다"며 "다만 정부도 이 조치를 자동차세 할인처럼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는 정책으로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달러·원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3원 오른 1484.9원에 개장하며 연고점을 위협했으나, 정부의 구두개입으로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 기준 전날보다 33.8원 떨어진 1449.8원으로 집계됐다.

thisriv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