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은 월급으로, 생활비는 부모카드"…강남 아파트 '꼼수 증여' 전수 검증

국세청, 강남4구·마용성 아파트 증여 2077건 전수 검증
부담부증여·저가신고 집중 점검…부실 감정평가기관 '영업정지' 초강수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2025.12.2/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사회초년생 A 씨는 어머니 B 씨로부터 시가 수십억 원에 달하는 서울 강남 아파트를 '부담부증여'로 물려받았다. 아파트에 낀 수억 원의 대출 채무를 A 씨가 떠안는 조건이었다. A 씨는 국세청에 자신의 급여로 대출을 상환하고 있다는 증빙을 제출했다. 그러나 국세청 조사 결과 A 씨의 급여는 빚을 갚는 데만 쓰였을 뿐, 실제 생활비는 어머니 B 씨가 대준 것으로 드러났다. A 씨는 연간 수억 원에 달하는 신용카드 대금과 자녀 유학비, 해외여행 경비 등을 모두 B 씨의 지갑에서 해결했다. 국세청은 이를 사실상 부모가 빚을 대신 갚아준 '편법 증여'로 보고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이 서울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인기 지역의 고가 아파트 불법 증여 혐의에 대해 칼을 빼 들었다.

국세청은 4일 이들 지역의 아파트 증여 신고 2077건에 대해 전수 검증에 나선다고 밝혔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발생한 증여 거래 중 신고 기한이 지난 건들이 대상이다.

이번 조사는 최근 집값 상승세와 맞물려 다주택자들이 매도 대신 증여를 선택하는 비중이 늘어난 데다, 이 과정에서 각종 편법이 동원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뤄지게 됐다.

실제 올해 1~10월 서울 집합건물 증여는 7708건으로 2022년 이후 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미성년자 증여(223건)의 60%인 134건이 강남4구와 마용성에 집중됐다.

국세청은 우선 '부담부증여'를 악용한 사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 부담부증여는 전세보증금이나 담보대출 등 채무를 포함해 증여하는 방식으로, 증여세 과세 표준을 낮추는 절세 수단으로 활용된다.

국세청은 자녀가 부채를 자력으로 상환하는지, 부채 상환을 핑계로 부모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는지(부모 찬스) 등을 정밀 검증할 계획이다.

오상훈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채무를 본인 소득으로 상환했다고 하더라도, 고액의 신용카드 사용액 등 생활비를 부모가 대신 부담했다면 사실상 자금을 대여해 주거나 증여한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오상훈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이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세청에서 강남4구·마용성 등 고가 아파트 증여 2077건 전수 검증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12.4/뉴스1 ⓒ News1 김기남 기자

감정평가액을 시세보다 낮게 조작한 경우도 주요 조사 대상이다.

일례로 자녀 C 씨는 아버지 D 씨로부터 아파트를 증여받으면서 같은 단지 동일 평형이 60억 원에 거래된 사실을 알고도 감정평가법인에 의뢰해 39억 원으로 평가받아 신고했다가 적발됐다.

국세청은 시가로 신고된 1068건의 적정성을 따져보고, 매매사례가액 등 시가 대신 공시가격으로 신고한 631건에 대해서는 직접 감정평가를 실시해 시가 과세할 방침이다.

오 국장은 "부당하게 낮게 평가한 감정평가법인은 '시가 불인정 감정기관'으로 지정할 것"이라며 "사실상 영업 정지에 해당하는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경고했다.

한 의사 부부는 신고 누락한 현금 매출로 고가 아파트를 취득해 자녀에게 증여했다가 적발됐다. 국세청은 이들에게 소득세와 현금영수증 미발급 가산세 등 수억 원을 추징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가족 법인을 통한 우회 증여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증여한 것처럼 꾸며 할증 과세를 피하려 한 세대 생략 증여 위장 사례 등도 검증 대상이 됐다.

국세청은 이번 검증을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고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지속할 방침이다.

오 국장은 "강화된 대출 규제에도 '강남 불패' 심리에 편승해 편법으로 부를 이전하는 행위는 엄정 대응하겠다"며 "탈루 혐의가 확인되면 관련 사업체까지 세무조사 범위를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