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500원 앞두고 정부 '총력전'…연금·기업 이어 증권사도 소집
'9시 환전 몰림' 지적…당국, 증권사에 환전 분산 요구
업계 "시스템 변경 현실적 어려움" 난색…추가 회의 가능성도
- 전민 기자, 신건웅 기자
(서울·세종=뉴스1) 전민 신건웅 기자 = 달러·원 환율이 1470원 선을 넘어 1500원 선을 위협하자 외환당국이 국민연금과 수출 대기업에 이어 증권사까지 소집하며 가용한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서학개미(해외주식 투자자)'의 급증하는 달러 수요가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뇌관이 되자, 증권사들의 환전 시스템까지 들여다보며 전방위적인 환율 방어에 나선 것이다.
26일 금융투자업계·관계부처에 따르면 외환당국은 지난 21일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등 9개 대형 증권사 외환 담당자들을 모아 비공개회의를 진행했다. 이날 회의는 사전에 예고되지 않은 회의였다.
이 자리에서 외환당국은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결제 수요가 다음 날 오전 9시에 집중되는 것을 분산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증권사들은 밤사이 고객들의 매매 내역을 정산해 부족한 외화 자금을 다음 날 장 시작 직후(오전 9시)에 일괄적으로 환전한다. 당국은 이 과정에서 환전 수요가 일시에 몰리며 장 초반 환율을 급등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증권사들은 난색을 표했다. 이를 조정하려면 기존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변경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외환당국이 증권사들을 불러 모아 환전 시간 분산에 대해 요구했고, 업계는 현실상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며 "이와 관련해 추가 회의가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이 증권사까지 소집한 것은 서학개미의 투자 규모가 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만큼 거대해졌기 때문이다.
국내 서학개미들이 미국 주식에 투자한 금액(보관금액)은 지난 21일 기준 1462억 4488만 달러(약 215조 3894억 원)에 달한다. 이달에만 49억 8394만 달러(약 7조 3403억 원)를 순매수하며 달러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이번 증권사 소집은 정부가 현재 가동 중인 '환율 방어 총력전'의 일환이다. 정부는 이미 외환시장의 양대 '큰손'인 국민연금과 수출 대기업을 상대로 달러 공급을 늘리기 위한 전방위적 압박에 들어갔다.
우선 지난 24일에는 기재부·복지부·한은·국민연금이 참여하는 '4자 협의체'를 공식 출범했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가 환율 상승의 구조적 원인으로 꼽히는 만큼, '전략적 환헤지' 비율 상향 등을 통해 달러 매도 물량을 유도하겠다는 포석이다.
앞서 지난 14일에는 주요 수출 대기업 재무 담당자들을 불러 환율 상황을 점검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기업 간담회에서 "수출 이익을 국내에 환류·투자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기업들이 해외 법인에 쌓아둔 달러나 수출 대금을 국내로 들여와 원화로 환전하는 '자금 리패트리에이션(Repatriation·본국 송환)'을 우회적으로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정부의 전방위적 개입이 환율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 금리 격차에 따른 자금 이탈 압력이 여전하고, 기업과 개인의 해외 투자 수요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환율이 지금보다 더 오를 경우 시장 불안이 걷잡을 수 없을 수 있다"면서도 "근본적 요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단기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min785@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