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美재무부 출신 경제학자 "韓 분할투자 현명…회수 리스크 주의해야"

허프바워 PIIE 선임연구원 "트럼프 압박 속 한국 협상 전략 높이 평가"
"투자금 회수 리스크 존재…韓기업 주도 투자·안전장치 강화 필요"

게리 허프바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 (PIIE 제공)

(세종=뉴스1) 심서현 기자

"한국 정부가 불리한 협상 여건 속에서도 관세 인하와 투자 조건 완화를 동시에 확보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다만 이번 협상이 미국의 정치적 변수에 따라 크게 흔들릴 수 있는 만큼 투자금 회수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미 양국이 지난 29일 정상회담을 통해 관세 협상을 타결한 가운데, 미 재무부 고위 관료 출신의 경제학자가 트럼프 행정부의 불합리한 압박 속에서도 한국 정부가 장기 분할 투자를 관철함으로써 협상에서 실질적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다만 투자 분야 사정에 따라 투자금 회수 리스크가 존재하는 만큼 이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함께 내놨다.

"韓 정부, 2000억 달러 현금 투자 분할 집행으로 외환시장 안정 확보"

게리 허프바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86)은 지난 1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2000억 달러 현금 투자를 한 번에 집행하지 않고 연간 200억 달러씩 나눠 집행하기로 한 것은 외환시장 불안을 최소화한 매우 현명한 조치"라며 이같이 말했다.

허프바워는 미국의 대표적 국제경제·통상 전문가다. 그는 카터 행정부에서 재무부 국제무역·투자정책 부차관보를, 포드 행정부에서는 국제조세정책국장을 지냈으며, 이후 조지타운대와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CFR), PIIE 등에서 30년 넘게 자유무역과 시장개방, 조세·투자 분야 정책을 연구해왔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정책에 대해 여러 차례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한국과 일본을 대상으로 한 관세 협상의 대규모 투자 요구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강제 공여'(forced gift) 또는 '조공'(tribute)을 요구하는 것에 가깝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허프바워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불합리한 압박 속에서도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성을 확보하며 협상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둔 점에 주목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 29일 정상회담에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현금 투자(2000억 달러) △조선업 협력(1500억 달러)로 구성하되, 현금 투자는 우리나라의 외환 지출 여력을 감안해 연간 200억 달러 상한을 두고 10년에 걸쳐 분할 집행하기로 했다. 이번 협상으로 미국의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은 25%에서 15%로 인하되며, 관세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

그는 "한국 정부가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효과적인 균형점을 찾았다"며 "분할 투자 방식은 외환시장 안정성을 지키는 동시에 투자 조건 완화라는 실질적 이익을 얻은 사례"라고 말했다.

허프바워는 "한국 정부가 대규모 현금 투자를 한 번에 전액 투입했다면 원화가 심각한 변동성에 노출됐을 것"이라며 "연간 200억 달러씩 투자하는 방식은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행도 비슷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3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 중앙은행이 보유한 외화 자산에서 나오는 이자나 배당을 활용해 공급할 수 있는 양이 150억~200억 달러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허프바워의 평가는 이 같은 중앙은행의 판단과 궤를 같이한다.

한미 양국은 3500억 달러(약 498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 중 2000억 달러를 현금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9일 오후 경주 APEC 국제미디어센터에서 '한미 정상 오찬 정상 회담' 관련 브리핑을 통해 이같은 내용의 관세 협상 세부 내용 합의안을 발표했다.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美 정치 변수·산업별 리스크 고려…투자금 회수 신중 필요"

다만 그는 투자금 회수 리스크에 대해선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프바워는 "이번 협상이 정치적 변수에 따라 크게 흔들릴 수 있는 만큼 투자금 회수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한국 기업들이 각 프로젝트 내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아야 투자금이 단순히 소모되지 않고 실질적인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허프바워는 그 이유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갈채를 받기 위한 프로젝트에 자금을 투입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런 사업은 대부분 수익성이 낮고, 1~2년 내 한국에 협정 변경을 압박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한 트럼프 정부가 투자 대상으로 거론한 조선·반도체·에너지·양자 기술 분야의 현 대내외 상황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의 조선업은 오랫동안 적자를 내고 있고, 2024년 1분기 이후 지난 2분기까지 6분기 연속 적자를 낸 인텔의 경우를 보면 반도체 프로젝트 또한 항상 생산성이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대부분의 에너지 프로젝트는 수익을 내지만, 초기 투자 비용이 몇 년간 투입된 후에야 수익을 얻는다"며 "양자 기술은 국가 안보에 필수적일 수 있으나 투자 수익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지난 30일 엑스(X)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파이프라인, 에너지 인프라, 핵심 광물, 첨단 제조업, 인공지능(AI) 및 양자 컴퓨팅 등 미국 내 프로젝트에 (한국의 대미 투자) 2000억 달러를 배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이 같은 리스크를 감안해 협상 과정에서 여러 안전장치를 포함했다.

정부는 투자금 상환 전까지 수익을 미국과 5대 5로 배분하고, 20년 내 상환이 어려울 경우 비율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사업 선정 시 '상업적 합리성' 조항을 넣어 미국의 일방적 투자처 선정을 막고, 여러 프로젝트를 하나의 '엄브렐러(Umbrella·우산)형 특수목적법인(SPC)'으로 묶어 손실을 상호 보전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미 상무장관과 한국 산업통상부 장관이 각각 투자·협의위원회를 맡아 사업 선정 과정에서 공동 협조하도록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3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한국 기업 주도·CPTPP 가입·시장 확대 전략으로 투자 안전장치 강화"

허프바워는 한국 정부가 투자금 손실을 막기 위한 추가적인 정책적 제언도 내놨다.

그는 "주요 기업들이 각 프로젝트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도록 보장하고, 미국 정부가 프로젝트에서 생산되는 산출물, 예컨대 조선소에서 건조되는 선박에 대해 적절한 가격을 보장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국 정부는 투자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가급적 한국 업체를 선정하고 한국인 프로젝트 매니저를 채용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정부는 각 프로젝트에 필요한 토지·용수·전력 공급을 지원하기로 했다.

허프바워는 또한 "한국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CPTPP) 가입을 통해 시장을 확대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중국과 원만한 무역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서는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무역 파트너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을 신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남은 임기 동안 추가 관세 인상을 자제한다면 신뢰가 점차 회복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가장 이상적인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모든 관세를 전면 철회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한국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최선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며 "수출 기업들을 계속 지원하고, 아시아 및 그 외 지역의 국가들과 자유무역을 확대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eohyun.sh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