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압박에 러트닉 '깜짝 방일'…3500억불 관세협상 막판 기싸움
한미, 직접투자 비중·기간·이익배분 놓고 막바지 협상
정부 "협상 속도보다 질…시장 충격 최소화 해법 모색"
- 나혜윤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관세 협상과 관련해 "타결에 매우 가깝다. 그들이 준비됐다면, 나도 준비됐다"며 한국 정부의 결단을 직접 압박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측 협상 '키맨'인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일본을 깜짝 방문하면서, 일본과의 대규모 대미투자 합의가 한국에 대한 간접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러트닉 장관은 일본 방문 후 한국을 찾아 최종 협상 조율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 발언과 러트닉의 깜짝 외교 행보가 맞물리면서, 한미 관세 협상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막판 신경전에 접어든 모습이다.
26일 통상 당국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현재 한국의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를 구성하는 직접 투자 비중, 투자 기간, 이익 배분 구조 등을 놓고 최종 조율 중이다.
지난 7월 30일 타결한 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제공하기로 합의했지만, 세부 이행방안이 정리되지 않아 투자 양해각서(MOU) 체결은 미뤄진 상태다. 당초 정부는 직접 투자 비중은 '5% 내외'로 하고, 나머지는 보증·대출로 충당하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과의 합의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투자처를 결정하면 한국이 45일 내 투자금을 특수목적법인(SPV)에 입금하는 등 소위 '투자 백지수표' 방식을 요구해왔다. 이에 우리 정부는 △무제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합리적 수준의 직접 투자 비중 △'상업적 합리성' 차원의 투자처 선정 관여권 보장 등을 주장해왔다.
이후 잇단 각료급 협상에서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일부 높이는 대신 총투자액 3500억 달러 중 2000억 달러를 현금으로 분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으로는 △8년간 250억 달러씩 내는 안 △10년간200억 달러씩 내는 안이 거론된다.
정부는 연간 150억~200억달러 수준을 최대 부담 한도로 설정하며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수준에서 투자 규모를 조정하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 역시 외환보유액, 시장 안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연 150억~200억달러가 '감내 가능한 수준'이라는 내부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내 가시적 성과를 원한다는 점에서, 투자 금액을 8년간 연평균 250억 달러 정도로 집행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지난 24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관련 질의에 "유사한 논의가 있었다"면서도 "숫자에 대해선 확인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협상을 총괄하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26일 전격 방일해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산업상과 회동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일 협상이 한미 협상의 '전초전'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러트닉 장관은 이날 오전 도쿄 아사쿠사 일대에서 아카자와 장관과 비공식 회동을 가진 뒤, 오는 28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서명이 유력한 5500억달러(약 782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MOU 세부 내용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러트닉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 방한 전 일본을 방문하면서, 트럼프 대통령 방한 일정에 맞춰 한미 협상팀과 직접 접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 안팎에서는 러트닉의 일정이 '일본 선행 서명→한국 후속 합의'의 연쇄 구조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 내부에서는 미국 측의 투자 압박이 국익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해 고심이 깊다. 정부 관계자는 "무리한 현금 투자는 재정 부담뿐 아니라 외환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며 "정부가 상업적 합리성 원칙을 내세운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타이밍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단기적 합의가 장기적 부담으로 돌아오는 일이 없도록 신중히 접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투자 이익 배분 구조도 쟁점이다. 앞서 미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전액 현금 직접 투자로 하고, 투자 수익은 원금 회수 전 한미 9대 1, 회수 후 1대 9로 배분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최근 협상에선 한국이 현금 투자 비중을 낮출 경우 수익 배분을 원금 회수 전 5대 5, 회수 후 1대 9로 조정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장관은 "국민경제와 시장 영향 측면에서 미국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까지 이어진 후속 협의에서 서로의 요구사항을 상당 부분 파악한 상태다. 7월 한미 관세 합의 이후 약 3개월간 4차례 실무·각료급 회담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한국은 '분할투자+보증병행' 방안을, 미국은 '직접투자+단기집행' 방식을 고수하면서 접점을 좁혀왔다. 양국이 실질 쟁점에 대한 기본 이해를 공유한 만큼, 정상 간 '정치적 결단'만 남았다는 관측도 있다.
이에 따라 오는 29일 트럼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예정된 만큼, 정상 간 담판에 따른 극적 합의 가능성도 지속적으로 거론된다. 우리 정부는 속도보다 협상의 질, 즉 외환 안정성과 실질 이행 가능성을 지키는 선에서 최선의 합의를 도출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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