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관세 'D-27' 자신감 보인 日, 입도 못뗀 韓…골든타임 놓칠라

일본 등 주요국, 미국과 정상회담·고위급 소통으로 관세 배제 요구
정부 "피스밀 대응보단 큰 틀서 논의"…업계 "협상 타이밍 놓칠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을 방문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회담서 “우리는 가자 지구를 가질 것이다”고 밝히고 있다. 2025.02.12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세종=뉴스1) 전민 이정현 기자 = 미국의 철강 관세 발표 등 통상 압박이 거세지면서 일본 등 주요국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고위급 접촉을 통해 기민한 대응에 나섰으나, 우리 정부는 아직 별다른 대응 방안을 내놓지 못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개별 사안에 즉각 대응하기보다 정책 전반이 윤곽을 드러낸 후 통합적으로 협의에 나선다는 방침이나, 트럼프 취임 이후 아직까지 정상 간 통화조차 성사시키지 못하는 등 고위급 소통이 막힌 상태라 리더십 부재로 '관세 폭탄'을 그대로 떠안는 것이 아닐지 업계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1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를 되살리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관세는 약 한 달 뒤인 다음 달 12일부터 발효된다. 이에 따라 철강 수출국들의 타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네 번째로 많은 철강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주요국들은 손해를 줄이기 위한 적극적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일본 정부의 경우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한 데 이어 주미 일본대사관을 통해 미국 정부에 관세 조치 면제를 정식 건의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유럽연합(EU)도 행정수반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JD 밴스 미국 부통령을 만나 대화에 나선 상태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철강 관세의 세부 사항과 관련해 미국 측과 대화를 진행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방인 호주에 대한 관세 면제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주요국이 적극적 조치에 나섰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 상황이다.

정부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를 조율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성사되지 않았다. 과거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당시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0일 만에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정부의 대응이 소극적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는 무역적자, 방위비 분담 문제 등 일본과 한국을 비슷한 수준에서 보고 있어 미일 정상회담이 한국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며 "아직 우리 정상이 미국과 첫 전화 통화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엄청난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현안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2.11/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정부 "'피스밀'보다는 통합 대응"…산업계 "리더십 공백 속 실기 우려"

정부는 향후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통상정책이 지속적으로 발표될 예정인 만큼 개별 사안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통합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철강 관세뿐만 아니라 반도체·자동차 관세 등도 예고됐기 때문에 미국의 움직임을 좀 더 살핀 뒤 전반적인 대응을 한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하루 이틀 쏟아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반적인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하나하나 '피스밀'(Piecemeal·각개 대응)로 사안에 접근하기보다는 큰 방향에서 논의하고, 필요시 우리 기업의 지원 방안과 미국과의 협의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을 특정해 제재를 가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변국들의 대응을 참고하며 가장 유리한 선택지를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외교당국이나 통상당국이나 대화·협상 창구를 대외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실무그룹 차원에서의 접촉은 하고 있고, 유선상으로든 직접 방문이든 준비 중이다"며 "각 실무부서 차원에서는 활발하게 상황 모니터링과 대책 등을 준비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에선 트럼프발 무역 전쟁이 본격화한 상황에서 세계 각국이 정상 외교를 통해 실마리를 찾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탄핵정국에 따른 리더십 공백으로 미국과의 소통이 늦어지면서 외교통상 분야 '실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1기 때와 비교해도 우리 통상당국의 대미 협상 창구는 막혀있는 모습이다.

당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철강 관세 부과 조치로 업계 안팎의 우려가 확산하는 상황이던 2018년 3월 26일 미국 출장길에 올라 미 정부·의회·업계 주요 인사들과의 면담을 통해 '쿼터제'를 이끌었다.

반면 현 정부에서의 대미 통상분야 논의를 위한 교류는 12·3 비상계엄 이후 멈춰선 상태다. 안덕근 산업장관은 지난달 6~1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미국을 방문한 바 있지만, 이는 비상계엄 이후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잠재우기 위한 목적이었다.

산업계 관계자는 "당장 철강 관세 발효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만 해도 정상회담으로 협력 강화를 끌어내고, 관세 배제를 당당히 요구하는 상황임을 볼 때 우리나라의 소극적인 대응은 아쉬움이 크다"며 "자칫 협상 타이밍을 놓쳐 관세 영향을 고스란히 받으면 피해가 상당한 만큼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