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망 화재 후폭풍…재생에너지 핵심 'ESS' 확충 제동 우려

정부, ESS 23GW 확보 계획…리튬배터리 화재에 수용성 악화 우려
잇딴 화재에 에너지 전환 '시험대'…전력 인프라·지역 수용성 과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 전산실에서 발생한 화재로 정부 전산망이 사실상 마비된 가운데 28일 오후 서울 성북구청 내 무인민원발급기에 이용 불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번 화재 여파로 서울시 전역 자치구에서 수행하는 복지·행정 서비스가 대규모 마비 사태를 겪자 각 구청은 비상 대응 업무에 돌입했다. 2025.9.28/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가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변수로 떠올랐다. 태양광·풍력 발전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리튬이온 배터리를 활용한 에너지저장장치(ESS) 도입을 늘리는 방안이 추진 중이지만, 잇따른 화재로 안전성 우려가 커지며 시민 수용성 저하가 우려된다.

29일 정부 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26일 국정자원 대전 본원 전산실 화재는 무정전·전원장치(UPS)용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발생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고 방전이 잘 되지 않아 전기차나 ESS 등에 흔하게 쓰이고 있다. 그러나 과충전·외부 충격 등으로 내부 온도가 급격히 치솟는 '열폭주' 현상이 발생할 경우, 모듈 전체로 연쇄 확산돼 화재 위험이 커지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 때문에 한번 불이 붙으면 일반 소화기로는 진압이 어렵고, 불산 가스 발생으로 초기 대응도 쉽지 않다. 지난해 아리셀 공장 화재 역시 열폭주로 시작돼 22시간 만에야 완진됐다. 당시 폭발음이 연달아 발생하며 진화가 지연된 것도 리튬이온 배터리의 취약성 때문이다.

실제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는 최근 5년간 2400여건이 넘게 발생하는 등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소방청이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6월까지 배터리 화재 사고는 총 2439건 발생했다. 재산 피해는 1343억 6591만 원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는 7명, 부상자는 125명에 달한다.

문제는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핵심 과제로 추진하는 가운데 ESS 설치를 확대하려는 점이다.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8년까지 약 23GW 규모의 ESS가 필요하다고 보고, 2029년까지 ESS 2.22GW를 추가 설치한다고 밝혔다.

장기적으로 ESS는 원자력·화력 발전 의존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기 위한 핵심 장치다. 단순히 전력을 저장하는 보조 설비가 아니라, 전력 수급의 안정성을 좌우하는 에너지 전환기의 핵심 인프라인 셈이다. 이 때문에 ESS 확대는 불가피하지만, 안전성 논란이 정책 추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되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배터리 화재 위험과 정책 간 충돌은 불가피하다. 태양광과 풍력은 기상 여건에 따라 발전량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ESS는 필수적이지만, 안전성 논란이 지속될 경우 대규모 설비 구축은 주민 반발과 규제 부담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미 태양광·풍력 사업은 빛 반사, 저주파 소음, 경관 훼손 등의 문제로 지역 사회와 갈등을 빚어왔으며, ESS 화재 우려가 더해지면 수용성은 더욱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정부가 설정한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다만 정부와 업계 모두 안전성 확보가 선결 과제라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특히 열폭주를 막는 기술을 의무화하고, 화재가 발생했을 때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소방 설비 기준 강화가 주요 대안으로 꼽힌다. 중장기적으로는 폭발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 같은 차세대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ESS는 가정용이나 차량용 배터리와 달리 송전망·배전망과 직접 연결돼 있어, 한 번 사고가 나면 지역 단위 정전이나 국가 기반시설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관리 체계를 전면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 관계자는 "ESS 확대는 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한 핵심 인프라이지만 안전성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면서 "이번 화재를 계기로 관련 대책을 점검하고 보완할 것"이라고 밝혔다.

freshness41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