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사 리모델링에 병력동원·사비까지?…육군 공간력 사업, 사실은 이랬다

공간력 시범사업 2년…시작부터 병력 동원·사비 갹출 의혹에 곤욕
시범부대 이외 일선에서 공간력 참칭…지침·공문 내려 재발방지

2021년의 육군 72사단 병영생활관 모습. 양쪽 벽면으로 침상과 개인 관물대가 배치돼 있고, 3단 매트리스와 모포, 베개가 놓인 전형적인 옛날 '내무실'의 모습이다. 2021.5.27 ⓒ 뉴스1 국회사진취재단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공간력(空間力) 혁신으로 사람 중심의 병영문화를 구현하자."

육군은 2025년 9월 육군참모총장 지휘서신 1호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공간력 혁신 시범사업'의 시작을 알렸다.

장병들이 이용하는 공간을 재편·개선해 휴식과 전투력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공간력 사업은 시범 단계부터 리모델링 작업에 불필요·부당하게 병력이 동원됐다거나, 간부들의 사비까지 투입됐다는 각종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업 자체의 필요성과 적절성 시비를 끊임없이 받아 왔다.

사례 #1. A 포병여단에서 지휘관 지시로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장병 20명이 망진마스크도 없이 '헤라'(스크래퍼)로 직접 바닥 타일을 제거했다.

사례 #2. 서부전선 B사단, 대학교에서 건축·건설·디자인을 전공한 병사들을 중심으로 공간력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막사 실측 및 개선 방안 토의를 진행했다.

사례 #3. 수많은 부대가 공간력 사업을 한다고 훈련을 취소하고 간부들이 '당근마켓'으로 집기를 구하고 맨손으로 인테리어를 했다.

육군본부가 시범사업 부대로 지정한 곳은 전국 7개 대대급 부대에 불과하지만, SNS에서는 육군 전체 33개 사·여단, 11개 사령부·병과학교·사령부에서 위와 같은 방식으로 공간력 사업이 진행 중이라는 비판 섞인 '설'(說)이 제기되기도 했다.

뉴스1은 지난 8~9월 육군본부에 정식 취재 요청을 넣어 △온라인에 유포된 공간력 사업 관련 의혹의 진위 △일선 부대에서 진행한 사업들의 정체 △그간 육군본부의 대응 △공간력 사업의 본질적 목적 등에 대한 답변을 받았다.

막사 노후화·병력 감소·군 구조 개편 속 복무 여건 증진·전투력 향상 도모
'공간력' 사업에 따라 새로 꾸려진 경기도 양평 육군 11사단 제108기계화보병대대 병사 생활관. ⓒ 뉴스1 구윤성 기자

육군은 병역 자원 감소에 따른 △상비 병력 간부 비율 '47% → 63%' 상향 △대대급 부대 구조 개편 △노후 막사 철거 및 현대화 등 과제를 고려하면서 단순한 환경 미화를 넘어 장병들의 복무 만족도와 안전, 전투력 향상, 부대 운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공간력 혁신 사업을 기획했다.

구체적으로 육군은 △393개 노후 막사 보수 및 철거·신축 △2006년 이후 지은 356개 병영생활관 중심 공간 재정비 및 부대 통폐합 △부대 통폐합에 따른 신규 막사 건설을 통해 2036년까지 총 800여 개 주둔지를 현대화할 계획이다.

특히 육군은 △병영생활관 △간부연구실 △지휘통제실 △병영세탁실 △독서 및 휴게 공간 △체력단련실 등을 우선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10대 필수 공간으로 지정해 지난해 대대급 5개 부대에 15억 4000여만 원을 투입했고, 올해는 시범 부대 2곳을 추가해 총 7곳에서 약 200억 원 예산을 들여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육군 관계자는 "막사 1동을 새로 짓는 데 약 300억 원이 필요한데, 그 10분의 1 규모 예산으로 사용자인 장병들의 이용 만족도 향상, 개인 정비와 훈련 여건 보장, 복무 환경 개선을 통해 전투력을 높이는 밑바탕을 조성하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육군은 △병영시설 노후도 △군 구조 개편에 따른 부대 통합 및 재배치 계획 △부대 임무 및 특성 등을 고려해 시범부대를 선정했다면서 "모든 공간을 동시에 개선하기에는 많은 예산과 시간이 필요한 만큼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복무 만족도 향상, 휴식 여건 극대화 등 전투력 창출에 직결되면서 예산 투입 대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곳을 '10대 필수 공간'으로 선정했다"라고 설명했다.

또 공간력 혁신 사업의 대원칙이 △외부 전문 시공업체가 개선 작업을 시행하고, 이 과정에서 △장병들은 사용자로서 개선 대상 공간을 어떻게 바꿀지 의견을 제시하고 피드백할 뿐 직접 개선 작업에 동원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육군본부 "시범부대 이외 '자체 진행 작업'은 '진짜 공간력 개선' 아냐"
육군본부의 '공간력' 사업에 따라 신형 장비가 대거 설치된 경기도 양평 육군 11사단 제108기계화보병대대의 체력단련실. ⓒ 뉴스1 구윤성 기자

일선 부대에서 '공간력', '공간 혁신' 등 표현을 사용하며 환경 개선 작업을 진행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육군본부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 부대의 작업은 '진짜 공간력 개선' 사업과는 거리가 멀다.

육군본부는 "일선 부대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환경 개선 작업은 공간력 혁신 사업과 별개로 부대에서 가용한 '시설유지운영사업' 예산이나 '부대운영비' 등 자체 집행이 가능한 예산으로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공간력의 개념을 임의로 적용하거나 명칭을 무단 사용한 것으로 파악했다"라고 설명했다.

육본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전 부대를 대상으로 부대운영비 집행 내역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공간력 관련 용어를 사용한 집행 내역은 총 249건으로 총 3330여만 원이 쓰였다.

'시설유지운영사업 예산'은 △계획 보수 △위임 보수 △사용자 보수로 구분된다. 건물 누수 보수, 보일러 교체 등 시설물의 원상복구, 기능 유지를 위한 예산인 '계획 보수, 위임 보수'는 장성급 부대에서 집행한다. 소규모 배수로 공사, 형광등·방충망 교체, 생활관 도색, 도어락·자물쇠 구매와 같은 단순 보수 예산인 사용자보수는 독립 중대급 이상에서 집행한다.

그런데 공간력 시범사업 부대에 쓰인 예산은 이런 예산이 아니라 '신영사업' 예산이다. 이는 건축물 신축·증축·개축·재축 및 대규모 개선을 위해 국방시설본부가 위탁 집행하는 예산으로, 필요시 국방부 승인을 거쳐 육군본부에서 집행할 수 있다.

육본은 "공간력 사업은 신영사업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 장병 개인의 돈, 부대 모금, 후원금, 위문금, 복지기금 등 다른 재원을 사용한 '공간력' 사업의 사례는 없다"면서 "장병이 직접 용접, 도배, 도색 작업을 하는 것은 공간력 혁신 사업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선을 그었다.

"현장 수요가 정책 속도를 앞섰다"지만…지침·공문 하달해 악용 방지

한 육군 간부는 "용사(병사)들이 사용하는 공간을 정비하고 보다 이용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각 부대가 돈을 들일 수 있다. 또 이를 진행할 때 가장 좋은 명분이 '상급부대의 사업명'이기도 하다"면서 "육군참모총장이 직접 말씀하신 만큼 일선 지휘관 입장에서 '총장의 지휘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정당화하면서 사실은 개인적으로는 치적을 쌓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육군본부는 "일부 부대가 단순 환경 개선 활동까지 공간력으로 오해하는 사례가 있었다. 현장 수요와 관심이 정책 추진 속도를 앞지르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일선 부대에서 자체 예산과 계획으로 공간력 사업을 진행하지 않도록 후속 조치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육본 공병실은 지난해 10월 "시범부대 자체 공사, 비품·가구 구매 등 금지. 시범부대 역할은 공간 확보 및 전 장병 의견 수렴을 통해 부대 특성에 맞는 최적의 설계 방향을 제시하는 것에 있다"는 내용의 공간력 시범사업 추진 지침을 하달했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공간력 혁신은 여단·대대 장병이 직접 도색하거나 자체 역량으로 무언가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다. 지휘관과 주임원사는 공간력 개념을 이해하고 장병들을 교육해 오해하지 않도록 조치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육군 전체 여단 및 대대 지휘관과 주임원사에게 각각 발송했다.

아울러 육본은 올해 3월 공간력 사업이 개별 부대의 단순 환경미화, 일부 시설 보수, 부대원 작업 동원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의 공문을 하달하는 한편, 매월 공병 주요직위자 토의 및 시설사업 추진평가회의에서 이같은 지침과 방향을 지속 강조하고 있다.

시공업체 공개 입찰로 공정성 확보…장기간 장병 의견 수렴해 현장성 강화
김규하 육군참모총장(대장)이 지난 5월 뉴스1 초대석 인터뷰에 임하는 모습. 2026.5.4. ⓒ 뉴스1 김기태 기자

육군본부에 따르면 공간력 시범사업은 3~4개월에 걸쳐 장병들의 10대 필수 공간에 대한 개선 의견을 수렴하고, 업체 선정을 거쳐 본격적으로 시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또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공개 경쟁 입찰 방식으로 시공사를 선정했다. 단, 일부 전문적인 공사가 필요한 경우에만 법률로 정한 기준 등에 따라 공개 수의 계약을 체결했다. 현재까지 총 55개의 시공 계약이 이뤄졌고 이 중 수의계약은 6건이다.

육군은 공간력 혁신 사업을 일회성으로 마무리하는 작업이 아닌, 병역자원 감소와 장병 수요 변화와 같은 환경 변화에 맞춰 지속적이고 주기적으로 병영생활 공간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육본 공병실 관계자는 "올해 시범사업 추진 성과 평가를 통해 전투력 창출에 효과적인 공간과 기능별 표준 모델을 모듈화해 향후 사업에 적용하되, 장병 의견과 과학기술 발전, 작전환경 변화 등을 반영해 맞춤형으로 추진할 예정"이라며 "수선 주기를 고려해 지속적으로 사업을 보완·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김규하 육군참모총장(대장)은 지난 5월 뉴스1과 인터뷰에서 공간력 혁신 사업을 '10년 프로젝트'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육본 공병실은 '육군 공간력 혁신사업 성과지표 개발 및 성과평가'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다. 민간의 시선에서 병영생활 공간 개선을 통한 전투력 증진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마련해 사업의 타당성과 필요성을 입증·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공간에 대한 인식 바꾸고 육군의 문화·제도로 정착해야 사업 종료"

육군은 공간력 혁신 사업이 단순히 장병 공간을 현대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용자로서의 주인의식을 발휘해 지속적으로 생활 공간을 가꿔나가 온전한 휴식과 전투력 강화가 한 몸이라는 인식을 심는 것이 사업의 최종 목표라고 강조했다.

육군은 "공간력 혁신 사업의 종료 조건은 단순히 시설 개선을 완료하는 것에 있지 않고, 궁극적으로 공간 혁신 필요성을 육군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공간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그 인식이 육군의 문화와 제도에 정착시키는 것이 사업 종료의 조건"이라고 밝혔다.

이어 "시범사업에서 장병들의 의견이 실제 구현되면서 장병들에게 '내가 만드는 공간'이라는 주인의식이 생겼고, 일부 공사가 끝나면서 임무와 전투 준비, 휴식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면서 "'공간이 사람과 조직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그것이 어떻게 전투력으로 연결되는지' 고민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공간력 혁신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goldenseagul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