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받고 협상도 해야 하는데…北 끌어낼 뾰족한 유인책은 없다
'한국의 자작극' 부인한 北 입장 뒤집을 '스모킹 건' 없어
'MDL 재획정 필요' 실무 대화 추동하지만…北 호응 가능성 낮아
- 김기성 기자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 정부가 최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북한군 지뢰 폭발 사건과 관련해 북한의 사과를 받아내고 출구를 모색할 대화·협상을 위한 '묘수'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한국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한 북한의 입장을 뒤집을 결정적 증거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2일 꼽힌다.
전문가들은 현재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선언하고 물리적 단절을 시도하는 북한으로서 한국과의 대화는 관심사가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제안한 북미 대화마저도 소극적인 북한이 당장 한국과 마주 앉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점에서, 상황을 회피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최근 나온 국방·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보면 정부는 일단 북한의 사과보다는 '군사분계선(MDL) 재획정'이라는 기술적 사안을 의제로 제안해 북한을 끌어내려는 계획으로 보인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의 긴급 현안질의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측에 '(MDL에 관해) 서로 확인을 하자. (대화) 테이블로 나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군이 이번에 폭발한 지뢰를 'MDL 오인식'에 따라 도발 의도 없이 매설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중국군과 유엔군사령부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때 MDL을 정하고, 이를 1200여 개의 말뚝으로 구분했으나 세월이 흐르고 관리 부실로 인해 현재 말뚝은 200여 개만 남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러시아의 GPS(위성항법장치)인 '글로나스'를 사용한 북한과, 미국의 GPS를 사용한 한국, 자체적인 기준을 따르는 유엔사의 MDL이 '서로 다른 세 개의 선'이 되면서 곳곳에서 우발적 문제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우리 군과 유엔사는 이번 사건은 북한군의 MDL 월선 및 지뢰 매설에 따라 발생한 것이라는 입장엔 이견이 없지만, 사고 발생 지점이 MDL 남쪽으로 불과 10m 떨어진 곳이라는 점에서 지뢰 매설이 북한의 MDL 오인식에 따른 결과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만나 "이제 남북이 만나서 소통해야 한다"라며 "적어도 군사분계선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확정하기 위해 소통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이번 사고를 '불의의 사고'라고 표현하며 "싸워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보다 더 확실한 안보는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를 만드는 것"이라며 북한에 '사과'보다는 대화를 촉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정부의 스탠스는 당장 북한에 사과를 받아낼 만한 증거가 부족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2015년 목함지뢰 도발 사건 때는 사고 발생 지점이 우리 군이 수시로 드나드는 DMZ 추진철책 통문이었다. 그 때문에 해당 지점을 촬영한 감시장비 영상과 작전상 정황 증거가 충분했지만, 이번 사고 지점은 우리 군이 지난 50년간 진입하지 않은 지역인 탓에 북한의 행위를 입증할 영상은 물론 정황 증거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MDL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북한도 이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미 지난달 30일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의 담화에서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가 폭발한 것'이라는 정부의 1차 조사 결과가 "명백한 자작극"이라며 모든 혐의를 부인한 뒤 이번 사안에 대해 아예 침묵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북한이 정부의 대화 및 협상 제의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상용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는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앉더라도 좋은 말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일뿐더러, 중국·러시아와의 밀착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미국, 한국과 같은 불필요한 변수를 만들고 싶지도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당장 반응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이어 "그간 북한이 남한을 향해 내놓는 반응들은 한미 연합연습을 비판하는 등 부정적인 성격이 강했지 긴장 완화나 관계 개선 등 긍정적인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라고도 짚었다.
실제 우리 군은 지난해 11월 이미 MDL 기준 재설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북한에 군사당국 간 회담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침묵'으로 이를 거부한 바 있다.
국방부 대북정책관을 지낸 조용근 경남대학교 군사학과 초빙교수는 "북한이 전방부대의 무력을 강화하면서 현재 남북 관계와 DMZ에서의 주도권을 강화하고 있고, 우리는 주도권을 뺏기는 상황"이라며 "헌법에까지 남북 관계를 '단절'로 규정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한국과의 대화에 응한다는 것은 내부 노선의 혼선이자 자기 부정으로까지 비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이어 "미국이 중국을 상대하듯 길고 변함없는 원칙을 세워야 하고, 한국이 북한보다 강국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강국의 질서에 북한이 따라오도록 만드는 정책과 전략을 지금이라도 구상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일정하고 정제된 대화 메시지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군사적 긴장 고조를 관리하는 한반도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goldenseagul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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