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투자 실현·떨어진 트럼프의 힘…파병 '결단' 더 신중해도 되는 이유
대미 투자 1차 프로젝트 합의로 美 '불만' 누그러뜨릴 여건 마련
명분·실익·국민 지지 챙겨야 '결단'도 힘 얻는다
- 한상희 기자, 윤주현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윤주현 기자 =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기여) 요청에 대한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는 미국의 요구에 부합할 수 있는 여러 '옵션' 마련과 실무적 준비를 병행하며 파병이 불가피한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정부가 최대한 최종 '결단'을 미루면서 신중하게 전략적 대응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파병 요구는 최근 들어 더 거세졌다. 공교롭게도 이는 3500억 달러(약 470조 원) 규모의 한국의 대미 투자 1차 프로젝트 협상이 막바지에 달하고, 11월 미국의 중간선거(상·하원 선거)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절박하게 지지도 제고를 꾀하는 시점에 불거졌다. 한국에 대한 파병 요구에 '선거용 외교 성과'라는 미국의 다른 노림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한미는 텍사스주 엔시날에 6.3기가와트(GW) 규모의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을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중 첫 번째 사업으로 낙점하고, 후속으로 8기의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알래스카 천연가스(LNG) 발전 프로젝트 투자 등 1000억 달러(약 134조 원) 이상의 대미 투자 합의에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0일(현지시간) 미국을 찾아 막판 협의를 진행 중이며, 18일쯤 공식 발표가 예상된다.
이와 관련 한 정부 소식통은 "파병 논란이 커지면서 구체적 대미 투자 내용의 합의가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주목을 덜 받는 듯하지만, 사실 미국의 입장에선 투자 문제가 그간 가장 큰 이슈였다"라고 짚었다. 이는 대미 투자 합의가 한국에 대한 미국의 누적된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정부가 대미 투자 합의와 동시에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의 어려움을 미국에 강하게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외교가에서 나온다. 파병 요구를 완전히 잠재울 수는 없더라도, 한미 현안의 후순위로 미룰 수 있는 방향으로 협상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현 외교부 장관이 한미의 대미 투자 합의 발표에 즈음해(18~19일 예상) 미국을 방문하는 일정을 조율 중인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대미 투자 합의를 호르무즈 파병 문제의 분기점으로 삼는다는 구상을 이미 실행 중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감안해야 할 또 하나의 전략적 변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이다. 현재는 그의 낮은 지지율이 한국에 대한 압박을 높이는 요인이지만, 중간선거 이후에도 이로 인해 국정 동력이 계속 떨어진다면 미국의 기조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에 의회 장악력을 내준다면 정책 추진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주의적 외교를 펼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세몰이'를 위해 지난 9~10일(현지시간)에 개최한 대대적 전당대회는 오히려 '약해진 트럼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당대회 티켓이 전부 매진됐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빈자리가 상당수 목격됐다. 트럼프 대통령도 그간의 성과나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기보다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면 미국 성인 모두에게 5000달러(약 670만 원)의 배당금을 주겠다는 황당한 '매표' 구상을 밝히는 등 승리가 절실한 모습만 드러냈다.
무엇보다 통상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르는 전당대회를 이례적으로 중간선거를 앞두고 열었다는 것 자체가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약점을 노출하는 행보라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판'으로 귀결되고 있는 중동 전쟁이 길어지고, 그의 정책 추진력이 약해진다면 중동 전쟁 해결을 위한 미국의 태도는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예산과 국방력이 낭비되는 전쟁을 빨리 협상을 통해 종결해야 한다는 논리가 더 힘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파병이라는 큰 결단을 고심하는 한국의 입장에선 호재라는 점에서, 정부가 '결단'을 미루고 조금 더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 외에도 정부가 파병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중동 전쟁의 '명분'이 과거 이라크 전쟁에 비해 약하다는 점과, 미국이 파병 압박만 가할 뿐 파병에 대한 반대급부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 점도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정부는 현재 '국제사회의 평화 유지'라는 명분이 확실한 유엔 평화유지군(UN PKO) 체제하에 동명부대(레바논·185명), 한빛부대(남수단·261명)를 파병했고, 이와 별개의 다국적군으로 청해부대(소말리아·257명)를 파병한 상태다. 아랍에미리트(UAE)에도 국방 협력을 위해 아크부대(141명)가 나가 있다.
미국이 주도해 비판을 받기도 한 이라크 전쟁이 중동 전쟁와 유사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라크 전쟁 때는 영국, 호주, 이탈리아 등 14개 국가가 다국적군으로 참여할 정도로 미국의 명분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은 측면이 있다. 미국의 주요 동맹인 한국이 빠질 이유가 없는 사안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중동 전쟁은 이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감정과, 중동에서의 최강국을 꿈꾸는 이스라엘의 욕심이 합쳐져 발생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쟁 발발 후 어느 국가도 미국을 돕기 위해 참전 혹은 지원군을 꾸리지 않았다는 점도 이를 방증하는 부분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이 선제적으로 파병을 결정할 경우 향후 국제무대에서 비판의 대상이 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중동 지역의 '민심'을 잃게되는 것도 큰 패착일 수 있다.
그나마 파병에 따른 실익이 확실하다면 고민의 각도도 달라질 수 있지만 현재로선 그마저도 선명하지 않다.
한국이 추구할 수 있는 '반대급부'로는 지연된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도입 및 원자력 협정 개정 논의(안보협의)에 속도를 내 한미 정상의 합의를 빠르게 이행하는 것과, 미국의 호응도가 낮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논의를 한국에게 유리하게 끌어오는 것이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 사안들은 한미 간 이미 '합의'가 이뤄진 사안이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반대급부를 미국에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안보협의와 전작권 전환 등은 호르무즈 파병과 무관한 현안인데도 이를 연계하는 것이 오히려 한국의 국익을 축소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한민국 군은 협상의 선금이 아니다"라며 파병을 다른 현안의 성과를 얻기 위한 카드로 활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물질적 '반대급부'보다는 파병의 명분에 따른 외교적·정치적 실익이 보장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로 읽힌다.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갤럽이 이날 발표한 조사에서 호르무즈 파병에 반대하는 국민은 조사 대상 중 55%로 찬성(32%)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반대는 69%에 달했다.
다만 핵심 동맹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협력 의사는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군이 실제 군사작전을 얼마나 수행하느냐보다는, 한국이 '함께 하겠다'라는 상징적 메시지가 더 중요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한 선택지로는 기술·물자 지원 등 파병 외에 다른 대안을 마련하거나, 영국·프랑스 등과의 공조를 통한 다국적군 형태의 파병 등이 거론된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전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국익과 국민 공감대에 기반한 해법이 무엇인지 고민 중"이라며 "우리가 기여한다고 한다면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들을 검토해야 되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특히 성 수석은 '파병 외에 어떤 선택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파병 옵션이 아니라면 기술적인 지원도 있을 수 있겠다"라며 정부가 파병 외에도 다른 대안을 고민 중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한편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세예드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교장관과 두 달 만에 통화하면서 이란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조 장관은 '파병이 결정된 것 없다'는 정부의 입장을 이란 측에 설명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 장관은 "정부는 호르무즈 내 자유 통항을 보장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지속 동참해 왔다"라고 밝혔는데, 이는 이란에게 '한국이 미국에 경도된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당장 파병이 임박했다면 이란과 이 같은 공개 소통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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