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한 북미 '가을 대화' 가능할까…韓은 패싱 없는 '총력 외교' 절실
트럼프 연내 회담 공언·北은 핵보유 전제로 문턱 높여…'진영화'도 변수
"한미, 대북 협상 '전담라인' 구축해 패싱 막는 '안전장치' 마련해야"
- 한상희 기자, 윤주현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윤주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올해 안에 만나겠다고 공언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유화책인 한미 연합연습 축소가 '의미가 없다'라고 일축하면서도 북미 정상 간 개인적 관계는 '훌륭하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
북미 대화가 열린다면 유력한 시기로 꼽히는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전후로 한 '가을 대화'의 불씨가 살아났지만, 한국에는 기대보다 복잡한 과제가 놓인 모양새다. 북한은 '핵보유국' 입지를 강화하면서 대화의 문턱을 높이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가 여전히 궁극적 목표인지 선명한 답을 내놓지 않으며 김정은 총비서와의 만남에만 서두르는 모습이다.
상황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목표인 한국의 구상과 결이 다르게 흐르고 있다. 정부가 고대하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한국이 협상에서 배제되는 '패싱'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북미 대화가 가시화하기 전 한미가 대북 협상을 위한 전담라인을 구축하고, 연합연습·훈련의 축소와 주한미군의 태세 변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 등과 관련해 한국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미국의 대북 협상안에 미리 반영해야 한다고 20일 제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마주친 자리에서 올해 안에 김 총비서와 만날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만날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 발신은 지난 16일(현지시간)부터 계속되고 있는데, 그가 이처럼 강한 대북 대화 의지를 밝힌 것은 지난해 10월 경주에서 열린 APEC 회의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김 총비서와의 대화 목표가 '비핵화'인지를 묻자 "그 문제에 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대신 "그는 나를 좋아하고 나도 그를 좋아한다"며 정상 간 개인적 친분 관계만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의 수가 '57개(기)'라고 언급한 것과, 한미 연합연습이 김 총비서의 입장에서 "매우 모욕적인 일"이라고 표현한 대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완전한 비핵화'에서 북한의 핵보유 현실을 인정하고 이를 토대로 일부 핵무기를 폐기하고 경제·외교적 이익을 주는 '거래'를 추진하는 쪽으로 변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북한은 전날인 19일 '대외 총괄'이자 김정은 총비서의 동생인 김여정 당 총무부장을 앞세워 연합연습 축소는 "평할 가치도 없는" 조치라고 일축했다. 김 부장은 훈련의 규모나 기간이 아니라 연합연습이 계속된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았는데, 미국의 대북정책의 근본적 전환이 요구사항임을 재확인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다만 김 부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총비서의 관계는 "의연 훌륭하다"라며 "이는 세상이 다 아는 일"이라고 밝혔다. 현재 제시된 상황과 조건을 '대화 신호'로 즉각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미국과의 대화를 위한 최종 판단은 결국 최고지도자에게 달렸기 때문에 향후 협상을 진행할 여지는 남아 있다는 취지로 읽힌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부장의 입장문은 대화에 대한 거부라기보다는 북미 대화의 틀 조정 및 사전 정지작업의 성격이 강하다"라며 "북미 관계는 상호 탐색과 신호 교환을 거듭하는 일종의 '썸' 국면에 진입했다"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북한이 대화 문턱을 높일 수 있는 이유로는 고도화한 핵능력 못지않게 러시아와의 밀착과 중국의 외교적 지지도 중요 요소로 꼽힌다. 19일 한국을 찾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북미 대화에 대해 "그것은 북한과 미국이 결정할 일"이라면서도 미국이 적대적 대북 정책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중국이 제 발로 먼저 나서 북미 대화를 중재하진 않겠지만, 북한을 감싸면서 추이에 따라 협상에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되는 발언이다.
북한 역시 한미를 겨냥한 김 부장의 담화에서 러시아와의 밀착을 부각하는 언급을 길게 늘어놓으며 눈길을 끌었다. 이는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북미 대화가 추진될 경우 북미 양자 관계를 넘어 한미와 북중러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진영 대결의 장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앞으로는 정부가 북한만을 겨냥한 메시지가 아니라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조율해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라며 "우리가 이 정세를 큰 틀에서 관리할 수 있고, 강대국을 상대로 외교적 역량을 발휘할 능력을 갖고 있음을 북한에 보여줘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필요한 것은 북미 정상의 만남 그 자체보다는 두 정상이 꾸릴 협상의 테이블에 오를 의제의 '디테일'에 관여하는 것이라는 제언이 나온다.
북한은 김 부장의 담화에서도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추진과 한미 연합연습을 비난하며 적대적 인식을 거듭 드러냈다. 유독 '적대 국가'인 한국에게는 대화의 조건 자체를 제시하지 않는 강경한 모습이 반복된 것이다.
이같은 태도는 북미 대화가 시작돼도 북한이 한국을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으로 이어진다. 북러 밀착과 중국의 지원으로 과거보다 대미 협상력이 높아졌다는 판단도 한국을 통하지 않고 미국과 직접 거래하려는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욕심'도 심상치 않다. 최근 닷새간 이뤄진 그의 대북 제스처는, 우리 정부에게 구체적인 북미 접촉 현황이나 협상 구상을 충분히 공유하지 않은 채 이뤄지고 있다. 미국 역시 한국을 대북 협상의 '진정한 파트너'로 여기는지 의구심이 제기되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가 궁극적 목표인지에 대한 답을 피하면서 김 총비서와의 만남을 향해 고속으로 달려가는 만큼, 북한이 한미 연합연습 혹은 주한미군의 태세와 관련한 요구를 협상안으로 제시했을 때 한국이 힘도 써보지 못하고 타격을 받을 공산이 커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북미 대화로 '그들의 평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우리는 북한의 적대적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앤드류 여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뉴스1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미국이 한국과 충분히 협의하지 않고 연합연습이나 주한미군의 태세를 양보하거나 북한을 영구적인 핵보유국으로 암묵적으로 승인할 경우 한국은 트럼프-김정은 중심의 대화 프로세스에서 소외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북미 직접 협상이 진행될 경우 한국이 한반도 평화 문제의 당사자로서 협상 과정에 참여한다는 입장이며, 관련 논의를 미국 측과 꾸준히 해왔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사 외에 한국의 요구를 미국의 협상안에 반영할 구체적인 통로와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한미가 공동으로 대북 협상을 위한 의제를 논의하는 전담라인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말한다. 북미 정상회담이 실현 단계로 구체화한 뒤 대응해서는 늦기 때문에, 양국의 대북 협상 책임자가 회담 의제와 '양보의 범위'를 사전에 조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한국의 북핵 수석대표인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미국의 북핵 수석인 국무부의 대북정책특별대표 간 라인이 활발해 한국이 원하는 것이 미국의 협상안에 반영될 수 있었다"라며 "이러한 라인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의 북핵 수석은 외교부 외교전략정보본부장이 맡고 있으나, 미국의 대북정책특별대표는 2024년 7월 이후 공석이다.
한미의 대북 전담라인에서는 연합연습과 주한미군 태세 관련 변경 사항은 반드시 한국과 협의하고,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공식적·암묵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정상 간 합의를 검증 가능한 후속 실무협상으로 연결한다는 원칙 등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한다.
앤드류 여 석좌는 "한국은 외교적 대화를 환영하되 확장억제와 한미동맹의 대비태세를 유지하면서, 평양과의 어떤 합의도 한국의 안보 이익을 반드시 반영하도록 미국과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아울러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유지하면서 당장은 북한 핵·미사일 능력의 추가 확장을 검증 가능하게 중단시키고, 이를 축소와 폐기로 연결하는 단계적 협상안 마련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angela0204@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