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 7번이나 만났는데…협력 진전 불구 '과거사 시계'는 제자리

안보·경제 협력 빠르게 확대…사도광산 추도식은 여전히 공전
조세이 탄광 협력, DNA 감정으로 첫발…추가 유해 발굴·봉환은 기약 없어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19일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경북 안동의 한 호텔에서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2026.5.19 ⓒ 뉴스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광복 81주년을 맞은 15일 한일 관계는 양국 정상의 진전 노력으로 어느 때보다 순항 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한일 관계의 오랜 숙원인 과거사 현안은 관계 개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년여 만에 일본 정상과 일곱 차례 만나며 경제·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의 폭을 빠르게 넓혔지만, 한일 간 중요한 합의인 조선인 강제 징용의 현장 사도광산에서의 추도식은 여전히 표류 중이며, 최근 과거사 현안으로 부상한 조세이 탄광에서의 공동 유해 수습도 이제 겨우 첫발을 뗀 상태다.

미·중 전략경쟁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로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정부는 과거사보다 경제·안보 협력을 앞세우는 대일 실용외교에 무게를 실어 왔다.

이 대통령은 취임 약 2주 만인 지난해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시바 시게루 당시 총리와 처음 회담했고, 취임 80일 만인 지난해 8월에는 미국보다 먼저 일본을 찾았다. 한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양자외교 방문국으로 일본을 택한 것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처음이었다. 이시바 전 총리에 이어 집권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는 서로의 고향인 나라현과 경북 안동을 오가는 '고향 셔틀외교'를 성사했다.

정상 간 밀착은 실질 협력으로 이어졌다. 한·미·일 다영역 군사훈련 '프리덤 에지'가 실시됐고, 한·일 수색구조훈련은 9년 만에, 서울에서의 한·일 국방장관 회담은 11년 만에 재개됐다. 경제안보 분야에서도 공급망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액화천연가스(LNG) 수급과 원유 비축 관련 정보 공유를 강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협력 확대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호응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일본은 2024년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며 조선인을 강제로 징용했다는 내용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광산 내 유적과 박물관 설치물을 통해 알리고 매년 7~8월에 한일 공동으로 추도식을 열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2024년과 작년, 두 차례 모두 일본 측이 추도사에 '강제 징용'을 인정하는 표현을 명기하지 않으면서 추도식은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올해도 광복절이 되도록 개최 시기와 방식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그동안 추도식이 제대로 열리지 못했던 이유가 해소돼야 한다"라며 여전히 공은 일본 측에 있음을 시사했다.

이 당국자는 "일본 측의 계획을 계속 파악하고 있으며 협의도 이어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 3년 연속 각각 추도식을 여는 파행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추도사는 물론 사도광산 인근 전시물과 안내판에 '한반도 출신 노동자'가 광산에 있었다고만 명시했을 뿐, 강제 징용을 인정하는 표현은 적지 않고 있다.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도 일본 측의 조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한국 등 관계 당사국과 협의해 해설·전시 전략과 시설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는 통화에서 "등재 당시 약속에 비춰보면 일본의 태도가 불성실한 부분이 있는 만큼 우리 정부가 계속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일본 사도광산에서 우리 정부가 단독으로 진행한 조선인 강제징용자를 위한 추도식.(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1.21 ⓒ 뉴스1
가까워진 한일, 멈춰 선 과거사…'새 현안' 조세이 탄광 유해 수습은 이제 첫발

한일 간 새로운 과거사 현안인 조세이 탄광에서는 제한적이나마 진전이 있었다.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의 해저 탄광인 조세이 탄광에서는 1942년 2월 수몰사고로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 136명을 포함해 183명이 숨졌다.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1월 정상회담에서 유해 수습과 신원 확인을 위한 협력에 합의했고, 5월 안동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미 수습된 유해에 대한 DNA 감정 착수를 공식 발표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6월 일본 현지에서 유해 시료를 채취해 현재 DNA 감정이 진행되고 있다"며 "우리 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일본은 일본 측 기관이 감정을 실시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다만 감정 대상은 한일 정상의 합의 전, 일본 시민단체의 잠수 조사로 수습된 인골 일부뿐이다. 사고 해역에 남은 유해의 추가 발굴과 수습은 아직 한일 정부의 공동사업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조선인 희생자 136명 전원의 유해를 언제 수습해 국내로 봉환할지도 기약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미온적인 태도에 문제는 있지만, 현재의 국제 정세 상 한일이 가깝게 지내는 것이 더 국익에 부합하다고 보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한일이 그간 과거사 문제를 상대적으로 덜 다룬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지금은 양국의 전략적 협력이 더 필요한 상황인 만큼, 과거사를 전면적으로 다루지 않은 것조차 하나의 전략적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이지평 특임교수도 "과거사 사안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지속하되 우호 관계는 유지하는 현 정부의 입장이 현실적"이라고 짚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을 "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이자 중요한 동반자"로 규정하며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강조했다. 올해 경축사에서도 과거사 해결과 미래지향적 협력을 병행하는 '투 트랙' 기조를 재확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angela020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