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사태 대응하는 고난의 탐색 외교…韓 '전략적 모호성' 운명의 5일

美 '5일 유예' 발언에 전황 변화 여부 주목
원유 등 에너지 공급·호르무즈 파병 압박에 '숨통' 트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에서 에어포스원(미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기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03.23. ⓒ AFP=뉴스1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을 5일간 유예하고 협상을 진행하겠다고 밝히면서 중동사태로 인해 원유 등 에너지 공급과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파병 압박을 받은 한국에도 '숨통'이 트일 가능성이 24일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에서 전용기에 탑승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이란 최고지도부와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전하며 "주요 쟁점에서 합의점을 도출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에 앞서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도 이란과 이틀간 대화를 진행했다면서, 이란의 에너지 시설 폭격 시한으로 제시한 '48시간'을 닷새로 늘렸다.

이란 측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실제 미국과 이란의 물밑 협상이 진행 중이라면, 지난달 28일 시작된 중동사태 이후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번 협상이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이란 외무부 등은 "협상은 없었다"며 미국 측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상대'로 지목한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가짜뉴스'라고 비난하며 "이는 금융과 석유시장을 조작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빠진 수렁에서 탈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별개로 '48시간 시한' 제시 후 배럴당 114달러까지 상승한 국제유가는 10% 넘게 하락하는 등 중동 상황의 안정에 대한 기대감은 시장에 빠르게 반영되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이란 측의 부인을 두고 내부 결속을 위한 전략적 메시지일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당장은 이란이 미국에 대한 호전적 메시지로 결속을 이어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과의 정치적 협상이 공개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 반응이라는 해석이다.

호르무즈 해협 이미지. ⓒ 로이터=뉴스1
정부도 상황 예의 주시…협상 결렬 시 압박 심화에 우려

한국은 중동사태 발발 후 '고난의 탐색 외교'를 이어왔다. 중동사태는 원유 등 에너지 공급 문제와 동맹의 기여를 압박하는 미국의 외교가 맞물린 복합적 사안이지만,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해결할 뾰족한 방법은 없다는 측면에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을 콕 집어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파견하는 '참전'을 요구하면서 곤혹스러운 상황은 악화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어느 한 방향을 선택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한 채 상황 관리에 집중해 왔다. 군함을 파견하진 않으면서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 등 22개국과 함께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에 참여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을 달래면서도 이란에 대한 자극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현 외교부 장관이 전날인 23일 세예드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과 중동사태 발생 후 첫 통화를 한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이란이 한국과의 소통에 임했다는 것은 현재 이란이 한국을 '미국의 편'으로 보진 않는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장관은 아락치 장관에게 이란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에 대한 안전 보장·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항행 안전 보장을 촉구했다는 것이 외교부의 설명이지만, 현 상황에 대응하는 정부의 입장도 공식적으로 전달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전략이 한미동맹이라는 구조적 제약 속에서 결국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미국의 압박이 강화하고, 실제 중동 전황이 악화하면 미국의 요구를 따를 방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점에서다.

외교부 등 정부 내에서는 이같은 상황을 인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공격을 멈춘 후 이뤄질 협상의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협상이 일정 수준의 성과를 거둬 중동 상황이 안정 국면으로 선회하면, 한국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파병 부담을 일부 덜고 원유 등 에너지 공급 문제도 일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반대로 수일 만에 협상이 결렬될 경우 미국의 추가 압박이 거세지면서 선택의 폭이 급격히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현 상황의 진단 자체에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협상'에 대한 미국과 이란의 입장이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 교수는 "양측의 입장이 보다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라고 전제한 뒤 "봉합이 이뤄진다면 이전으로 회복력이 작동한다는 의미로 에너지 수급 측면에서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중동사태 이후 돌발 변수로 상황이 급변한 지 벌써 한 달이 됐다"며 "(정부로서는) 조금 더 흐름을 지켜보며 신중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