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대북정책 속도 조절' 경고한 케빈 김의 '침묵'…신중해진 美

美대사대리, 한미 협의서 한국의 '자주파'-'동맹파' 갈등에 침묵
'내정 간섭' 피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대북 공조에 부정적 영향" 우려도

정연두 외교전략정보본부장(오른쪽)과 케빈 김 미 대사대리가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협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5.12.16/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한미가 대북정책의 조율을 위한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협의'를 16일 개최했다. 한미는 앞으로 정례적으로 회의를 열어 여러 가지 대북 사안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취재진의 눈길은 미국 측 수석대표의 입에 쏠렸다. 외교부와 통일부가 대북 사안의 협의의 '주도권'을 놓고 대립·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앞서 정부의 대북 유화책의 '속도 조절'을 주문했던 케빈 김 주한 미국대사대리가 이날 협의의 수석대표로 나섰기 때문이다.

김 대사대리는 지난 8일 박윤주 외교부 제1차관과 비공개 면담을 위해 외교부를 찾았다. 당시 그는 방문 사실을 파악한 취재진과 만나 '한미 공조의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한미 연합훈련이 '군의 생명선'이라며 연합훈련이 현재의 방식으로 유지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두고 김 대사대리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이재명 정부 내 자주파(남북 양자관계 중심의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미국 행정부 내의 '불편한 시선'을 대신 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정 장관이 지난달 25일 "미국의 승인과 결재를 기다리는 관료적 사고로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라고 발언하거나,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통상적으로 외교 당국 간 비공개 만남 때는 언론에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이 암묵적 관례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에, 김 대사대리의 입장 발표가 미리 준비된 발언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김 대사대리는 정 장관이 '미국의 승인' 관련 발언을 한 당일 정 장관과의 면담에서 '대북 협상력 확보를 위해 대북제재가 유지돼야 하며, 북한인권 문제도 계속 압박해야 한다'라는 미국 측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한반도 사안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경고성 입장을 밝히는 것에 망설임이 없는 행보를 보여 왔다.

하지만 그는 이날 여러 차례 취재진과 마주쳤음에도 이날 회의의 결과나 자주파와 동맹파(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와의 갈등에 대한 입장 등을 밝히지 않았다.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 후속 협의'에서 케빈 김 주한미국대사대리와 정연두 외교전략정보본부장이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공동취재) ⓒ News1 임세영 기자
'자주파·동맹파 갈등에 개입' 시선 의식…美, 당분간 한국 상황 관망 예상

김 대사대리의 '로키'(low key) 행보는 정 장관과의 면담 발언이 알려지며 미국이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는 세간의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일 수 있다. 미국과 동맹파는 비슷한 기조를 보이고 있어 이번 사안이 '자주파 대 동맹파+미국'의 구도처럼 보이는 것에 부담을 느껴 거리두기를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외교부는 이날 협의 개최 전까진 협의의 명칭을 '대북정책 조율을 위한 정례협의(공조회의)'라고 설명했으나, 이날 협의 개최 직전에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협의'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이 역시 '외교부 주도의 대북 사안 협의'에 반대하는 통일부를 의식해 정부 내 갈등이 증폭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됐다.

협의의 명칭을 바꾸는 것은 미국의 동의도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김 대사대리의 '침묵'을 두고 한국 상황에 미국이 개입하진 않는다는 입장을 암묵적으로 부각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다만 미국의 로키 행보가 자칫 한미 간 대북정책 공조의 속도를 늦출 수도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대통령실은 내년을 남북대화 재개 등 '한반도 평화 공존 프로세스'를 본격화하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구상을 밝힌 상황이다. 특히 내년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대북 접촉을 성사해 정세의 분기점으로 삼겠다는 계획인데, 미국 측이 '한국 내 상황 정리'를 이유로 한미 간 협의에 소극적으로 임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의 입장에선 한국 정부의 상황에 개입한다는 오해나 비난을 받을 생각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이는 한미가 대북정책, '북한 비핵화 정책'에 대해 아직 제대로 된 협의를 못 한 상황에서 정책 공조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