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북 드라이브' 자주파에 '경고'?…한미, 아직 대북 조율 덜 됐다

美 대사대리, 정동영 만나 "조율된 메시지 중요"…대북 유화책에 제동
자주파·동맹파 이견으로…한미, 대북 접근법 '일치' 아직

정동영(오른쪽) 통일부 장관, 케빈 김 주한미국대사대리.(통일부 제공)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케빈 김 주한미국대사대리가 최근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대북 정책과 관련해 '한국 정부 내의 조율된 목소리'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한국의 대북 유화책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제동을 걸었다는 해석이 9일 제기된다.

김 대사대리는 지난달 25일 부임 인사차 정 장관을 만나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견인하기 위해선 '대북 협상력' 확보가 중요하다는 입장을 전하며 이같이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대북 협상력 확보를 위해 현재의 대북제재가 유지돼야 하며,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대북 압박 기조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사대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압도적 우위에서 북한과 협상하고 싶다"라며 두 사안을 필요조건으로 언급했다는 취지로 정 장관에 설명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정동영 "美 승인과 결재 기다리는 것은 관료적 사고" 발언 직후 美의 입장 전달

주목할 점은 정 장관이 지난달 25일 김 대사대리와의 만남 직전에 열린 한 세미나에 참석해 "미국의 승인과 결재를 기다리는 관료적 사고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게 한반도 문제의 특징"이라고 말했다는 점이다. 이어진 만남에서 김 대사대리가 전달한 미국의 입장은 사실상의 '경고'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일각에선 김 대사대리가 이재명 정부 내의 소위 '자주파'의 기조에 대한 미국의 불편한 입장을 정 장관을 통해 전달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남북관계를 양자 관점에서 풀자는 자주파와, 국제사회의 틀 안에서 대북 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동맹파의 대립에 미국이 동맹파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는 자주파나 동맹파라는 말은 유효하지 않은 말이라며 두 진영의 대립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정동영 장관 등 주도적 남북관계를 주장하는 이들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조현 외교부 장관 등 한미동맹 중심의 외교적 남북관계 해소를 추진하는 이들의 입장 대립은 정부 출범 직후부터 이어지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김 대사대리가 자주파의 '스피커' 역할을 하는 정 장관과의 만남에서 한미의 보폭을 맞추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미국이 자주파에게 '너무 앞으로 나서지 말 것'을 경고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이재명 정부 통일외교안보 정책:평가와 전망'을 주제로 열린 남북관계 원로 특별좌담에서 참석자들과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정 장관,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 2025.12.3/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케빈 김 "한미 간 긴밀한 공조, 절대적으로 중요"…국방장관, 외교차관 연쇄 면담

김 대사대리는 전날(8일)엔 박윤주 외교부 제1차관과 비공개로 면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한미가 여러 사안, 특히 북한 문제와 관련해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공조할 수 있을지 논의한 생산적 회의였다"라고 설명했다.

김 대사대리는 한미 정상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하는 등 대북 공조를 맞춰가고 있다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도 지난 21일 만나 이러한 부분에 의견일치를 봤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는 "안 장관도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중요성·필수성을 강조했고 '군사훈련은 군의 생명선(lifeline)과 같다'는 표현을 사용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의 조정 혹은 연기가 필요하다는 정 장관을 직격한 것이라는 해석으로 이어졌다.

특히 김 대사대리는 이날 비공개 면담에서의 통상적인 관례를 깨고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비공개 면담은 상대국에 대한 예의상 일방이 대화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관례기 때문에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김 대사대리가 비록 "정 장관, 안 장관 모두 한미 간 긴밀한 공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데 동의했다"라고 말했지만, 미국이 이재명 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려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자료사진.ⓒ News1 DB
北과 대화 준비하는 美…한미 대북 접근법 '완전한 조율'은 이제 시작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Nuclear power)으로 부르며 미국이 북한이 요구하는 '핵보유국'을 인정하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했다는 해석이 나왔지만, 한미 정상은 지난 10월 경주 정상회담에서 2018년 북미 정상의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합의하는 등 미국의 새로운 대북 전략은 아직 제대로 성안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한미국대사대리가 대북제재와 북한인권 문제로 북한을 압박하는 것이 대북 협상의 출발점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은, 미국이 이제서야 본격적인 대북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해석을 나오게 한다.

정부는 아직까진 북미 대화가 선행돼야 남북 대화도 풀릴 것이라는 관점으로 대북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부 차원의 대북 조치는 자주파의 기조를, 외교를 통한 대북 대응은 동맹파의 노선을 반영하면서 '밸런스'를 찾으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경고'를 기점으로 미국이 본격적으로 대북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정부에 자주파의 목소리를 낮출 것을 요구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입장을 미국이 취사선택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반영할 수도 있다는 차원에서다.

최근 유엔군사령부가 정부 주요 인사의 비무장지대(DMZ) 방문을 불허하는 등 문재인 정부 때 발생했던 한미 간 갈등 요인이 재현되는 것을 두고도 곧 자주파와 미국의 '파열음'이 발생할 조짐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