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로 상륙함 한 척 날렸다"…향로봉함 화재 원인, '안전 수칙 미준수'
연료유 이송 시 밸브 차단·펌프 중지 체크 안 해 화재 발생
'중간 감독자' 중사 1명도 없어…하사 1명이 5인분 업무 처리로 '과부하' 지적도
- 김예원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지난 7월 발생한 해군의 2600톤급 상륙함인 향로봉함 화재의 원인이 연료유 이송 작업 과정에서의 안전 수칙 미준수였던 것으로 8일 파악됐다. 군은 향로봉함이 복구가 불가능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인재(人災)로 인해 우리 군의 함정 한 척이 사라지게 된 셈이다.
다만 사고 당시 충원율 저조로 안전 여부를 관리·감독할 중간 감독자(중사)가 부재했던 점 등을 감안하면, 승조원 개인의 실수만이 아닌, 적절하지 못한 군의 인력 배치가 부른 사고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해군은 이날 정승일 해군 준장(진)을 위원장으로 하는 사고조사위원회(사고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사고는 지난 7월 31일 오후 3시 43분쯤 발생했다. 학군사관후보생 실습 지원 후 진해항으로 입항하던 향로봉함 보조기관실에 화재가 발생하며 연료유 이송 작업을 하던 하사 1명이 우측 팔에 3도 화상을 입고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됐다. 3명의 병사와 학군후보생 32명은 연기를 흡입했으나 건강에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군에 따르면 연료유 이송 때는 원칙적으로 정유기를 사용하되, 정유기가 고장 나거나 긴급 사용이 필요할 때 이송펌프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향로봉함은 만들어진 지 26년가량이 지난 노후함으로, 정유기도 오작동이 잦아 실무자들은 평시에도 정유기와 이송펌프를 병행해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당일에도 담당자인 A 하사가 이송펌프를 사용해 연료유를 이송했다.
A 하사는 연료유 이송 작업을 종료한 직후 △이송펌프 중지 △출구 밸브 차단을 순서대로 진행했어야 하는데, 이송펌프를 열어둔 상태에서 출구 밸브를 차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펌프에 과도한 압력이 형성되면서 호스가 파열, 연료유가 에어로졸 형태로 분사되면서 섭씨 250도가량인 배기 배관의 고온부와 접촉해 화재가 발생했다.
출구 밸브와 이송펌프 사이 차단막 역할을 하는 샘플링 밸브가 잠겨 있었으면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나, 화재 당시 샘플링 밸브 역시 열린 상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사건 발생 이틀 전인 7월 29일 연료유를 이송하던 병사 2명이 휴대용 연료통에 연료유를 받은 뒤 밸브를 잠그지 않고 올라온 것으로 확인됐다.
A 하사는 화재 발생 직후 이송펌프 입구 밸브를 차단한 뒤 같이 있던 병사에게 대피 및 상황 전파를 지시했다. 보고를 받은 지휘부는 소화기를 원격 작동해 이를 진압하려 했지만, 발생 1분 뒤 함 내 정전이 발생하는 등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자 지휘부에선 배를 부두로 정박시켜 해·육상에서 동시 진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화재는 발생 약 24시간 만인 8월 1일 오후 3시 50분쯤 완전히 진압됐다.
직접적 원인은 담당자의 안전 지침 미준수지만, 인력 미충원 및 업무 과부하에 따른 구조적 문제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해군에 따르면 향로봉함의 적정 편성 인원은 원사 1명, 중사 3명, 하사 5명, 병 5명이다. 하지만 당시 해당 상륙함엔 인원 미충원으로 원사 1명, 상사 4명 중사 0명, 하사 1명, 병 5명 승선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선상 업무를 관리하고 점검하는 중간 감독자 역할을 하는 중사가 한 명도 없었던 셈이다.
그 때문에 현장 실무자였던 하사에게 업무가 몰려 안전 수칙 준수 등 책임에 상대적으로 소홀해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해군 관계자는 "향로봉함은 화재 발생 때는 정유기 수리가 완료돼 정상 운용이 가능한 상태였다"라면서도 "장비가 노후화한 점 등을 고려해 적은 수의 작업 인원만으로 빠른 작업이 가능한 이송펌프를 사용하는 일이 잦았던 것으로 확인된다"라고 밝혔다.
한편, 4년 정도 더 운용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됐던 향로봉함은 이번 화재로 도태 절차를 밟게 될 전망이다. 군수품 훈령에 따른 수식으로 피해 규모를 계산한 결과 복구 시 활용 가치는 복구 추산 비용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는 것이 군의 설명이다.
이번 화재로 향로봉함 함교와 기관조종실, 승조원 생활 구역 등이 다수 손상된 것으로 전해졌다. 해군은 올해 12월 말 예정된 정밀 진단을 거쳐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할 예정이다. 해군은 유사 사고를 근절하기 위해 작업 안전 수칙 준수 및 관련 교육을 강화하고 함정 손상 통제 시스템 진단 등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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