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안보 산 넘고 중·일 관리도 성공적…'실용외교' 힘 실린 APEC

[경주 APEC] 가장 큰 성과는 관세 협상 타결·핵추진잠수함 도입 승인
'미중 갈등 국면' 속 트럼프-시진핑 '휴전'의 장 마련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9일 한미정상회담 장소인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백악관 공식 사진, 다니엘 토록 촬영, 재판매 및 DB금지) ⓒ News1 류정민 특파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엿새간 숨 가쁘게 진행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국은 미국·중국·일본을 상대로 모두 전략적 소통을 통한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2일 나온다.

가장 큰 숙제였던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타결하고 핵추진잠수함 도입에 성공했고, 중국과는 소원했던 관계를 풀 기반을 마련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일본과도 '안정적 관계 유지'에 중점을 둔 무난한 소통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이번 APEC을 계기로 얻어낸 가장 큰 성과는 다름 아닌 '한미 관세 협상 타결'로 볼 수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정부는 대미 투자펀드 총 3500억 달러 가운데 2000억 달러는 매년 최대 200억 달러씩 10년간 현금 투자로, 나머지 1500억 달러는 조선업 협력(마스가) 방식으로 구성하는 데 미국과 합의했다.

당초 우리 정부가 제기한 '5% 이내 현금 투자'나 '통화 스와프' 등의 조건은 불발됐다. 다만, 미국이 요구해 온 대로 3500억 달러 전액을 현금으로 일괄 투자할 경우 제2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던 상황을 고려하면 나름 '선방'한 것으로 볼 측면도 있다.

특히 지난 7월 말 관세 협상이 큰 틀에서 합의를 이룬 뒤에도 세부 협상 과정에서 양측이 3개월가량 이견을 좁히지 못하던 분위기 속에서, 한국이 의장국인 이번 APEC을 계기로 극적으로 합의에 도달하며 경제적 불확실성을 줄이고 외교적 성과를 부각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이와 더불어 이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담판'하듯 핵추진잠수함 건조 승인을 받아내면서, 안보 분야의 오랜 숙원 사업을 해결하게 된 것도 의미 있는 성과로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부터 직접 "핵추진잠수함에 필요한 연료 공급을 결단해달라"라고 이례적으로 공개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다음 날 아침에 자신의 SNS를 통해 "한국이 현재 보유한 구식 디젤 잠수함 대신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라고 밝히며 한국의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핵추진잠수함은 기존의 디젤 잠수함보다 광범위한 해역에서 장기간, 은밀하게 잠항할 수 있어 전략무기로서의 가치가 높다. 역대 정부들에서도 핵잠수함 보유를 추진해 왔지만, 개발에 필요한 소형원자로와 농축 우라늄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한계 때문에 번번이 좌절됐다.

다소 민감한 사안이었지만, 이 대통령은 북한과 중국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에 대한 대응책 차원으로 이를 제기하며 한반도 안보에 대한 미국의 '부담'을 한국이 주도적으로 덜겠다는 외교적 수사를 구사해 성과를 냈다.

中과는 경제 중심 '관계 복원'에 초점…日과는 '셔틀외교' 지속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일 경북 경주시 소노캄 그랜드볼룸에서 한중 국빈만찬에 앞서 선물을 교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1.2/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11년 만에 한국을 국빈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는 민감한 정세 문제보다는 경제·민생·문화 교류를 확대해 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개선해 나가자는 데 뜻을 모았다.

지난 1일 진행된 한중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한중 양해각서 및 계약 교환식'을 따로 열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협상을 실질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총 6건의 양해각서와 양국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 계약서 등을 체결했다.

중국의 서해구조물 무단 설치 문제, 미국의 '대중 견제' 강화에 따른 한반도 안보 지형 변화 등 양국 간 민감하고 복잡한 현안을 다루기보다는 관계를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를 먼저 시행해 다소 멀어졌던 관계를 일단 복원하자는데 서로 의견을 맞춘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내년 APEC 의장국이 중국인 만큼 이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에게 의장직을 인계하고 APEC 가장 마지막 일정으로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는 등 그를 '주인공'처럼 연출하는 듯한 '의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대통령과 시 주석은 APEC 정상회의의 상징으로서 전날 만찬장 공연에 등장한 '나비'를 주제로 APEC의 연결성과 양국 관계와 관련한 사담을 나누며, 내년 APEC 때까지는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자는데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뤘다.

이에 앞서 지난달 30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와 무난한 대면식을 치렀다. 다카이치 총리는 극우에 가까운 '강경 보수'로 분류돼 한일관계가 빠르게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지만, 두 정상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교류·협력을 이어가고 정상 간 '셔틀외교'도 지속하자면서 고위급 소통을 지속하겠다고 합의했다.

트럼프-시진핑 '대화의 장' 마련…다자 협력'의 무대 연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30일 부산 김해국제공항 옆 김해공군기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25.10.30/뉴스1 ⓒ AFP=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무엇보다 이번 APEC을 계기로 트럼프 행정부 2기 들어 첫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한국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외교 이벤트의 장을 적절히 마련했다는 점도 성과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30일 부산에서 만나 무역전쟁의 '확전 자제'에 합의하고 악수했다. 미국은 중국에 부과한 관세를 낮추고 중국도 미국에 취했던 조선·해운 등의 보복 조치를 철회하기로 하면서 한국도 부수 효과를 누리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4월 중국을 방문하고 이후 시 주석이 워싱턴 D.C를 찾기로 하는 등 조만간 두 정상이 상호 방문하기로 의견을 모으며 대결 구도가 다소나마 풀리게 됐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새 정부 출범이라는 변수로 인해 APEC이라는 대대적인 국제행사를 맡는데 다소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흔들리는 국제질서 속에서 강대국들 간 중재자 역할을 통해 '다자 협력'의 가치를 보여줬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쉴 새 없이 진행된 양자회담을 통해 두루두루 실익을 얻었다"면서 "현 정부의 실용외교적 가치를 잘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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