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핵잠수함 보유, '10년 대계' 예상…누가·어디서·어떻게 건조하나

트럼프 "필리조선소서 건조"…한화오션이 맡을 가능성 높아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도 필수…"예산은 최대 5조 원까지 봐야"

이재명 대통령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8월 26일(현지 시간) 미국 필라델피아 한화필리조선소에서 열린 선박 명명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화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2025.8.27/뉴스1 ⓒ News1 박종홍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지난 29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결과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보유가 '30년 숙원'에서 현실이 되는 모양새다.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건조사업의 추진 방식과 구체적인 능력은 앞으로 한미가 협의할 예정이지만 누가·어디서·어떻게 건조할지에 대한 윤곽은 빠르게 드러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이 현재 보유한 구식이고 기동성이 떨어지는 디젤 잠수함 대신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다른 게시물에서는 "한국은 필라델피아 조선소(필리조선소)에서 핵잠수함을 건조할 것"이라고 했다. 이 조선소는 한화그룹이 1억 달러에 인수한 곳으로,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의 상징으로 통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건조 승인'의 의미를 넘어선다. 중국과 북한으로 대표되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군사 위협에 맞서 한국의 방위력을 한층 끌어올리는 동시에, 침체한 미국 조선 사업에 동맹국의 협력을 통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형 핵추진잠수함의 건조 주체는 필리조선소를 운영하는 한화오션이 맡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 조선소는 상선 중심의 설비를 갖추고 있어, 핵 연료 취급과 방사선 안전을 위한 별도의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정부는 핵추진체계의 핵심인 소형원자로 등을 조선소 외의 별도의 시설에서 제작해 잠수함에 조립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다.

HD현대중공업도 디젤 잠수함 건조 경험이 있고 100MW급 일체형 소형원자로 개발에 나선 상태인 만큼 협력 파트너로 거론됐으나, 현재는 구체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한국은 상용 원전과 SMR 연구 경험을 이미 보유해 원자로 자체 개발은 어렵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형 핵추진잠수함은 20% 미만 저농축 우라늄 기반 설계로 출발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새로운 SMR이 아닌 현재 미국에서 사용하는 핵추진 방식이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0월 22일 진수식을 가진 장보고-Ⅲ Batch-Ⅱ 1번함 장영실. 이 잠수함은 3600톤급으로,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은 이보다 1.5배가량 클 것으로 예상된다. 2025.10.22/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핵추진잠수함의 최대 과제는 핵연료 확보다.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 협정은 핵 연료를 연구용으로만 사용 후 미국의 승인에 따라 핵 연료 재처리와 20% 미만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고 있다. 군사용 핵 연료 확보를 위해선 협정 조정과 미국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연료 공급에 결단을 내려달라"라고 직접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이 곧바로 사업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통적으로 핵 비확산을 중시하는 국제사회와 미 국무부의 입장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내에서도 핵추진잠수함 도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으나, 구체적인 형태에 대한 논의는 무르익지 않았다.

핵추진잠수함 사업 규모와 기간은 방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기술을 갖추고 있더라도 SMR 개발, 기체 설계, 시스템 구축, 건조, 시험 등을 포함하면 10년은 걸릴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특히 핵추진잠수함은 우리 군이 운용 중인 최신형 3600톤급보다 훨씬 큰 6000톤급 이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 '새로운 영역'으로 꼽힌다.

강동길 해군참모총장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우리 군이 첫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0년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석종건 방위사업청장도 "선진국 사례를 보면 핵추진잠수함 건조에는 통상 10년 정도가 걸린다"며 "우리 역량을 통합하면 조금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군 잠수함 손원일함 초대 함장 등을 역임한 최일 잠수함연구소장은 "디젤 잠수함도 사업에 10년이 걸리는데, 지금 필리조선소엔 잠수함 건조를 위한 설비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핵추진잠수함을 만들기까지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 소장은 또 "한 척당 2조~3조 원이 필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지만 일반적인 건조 비용 외에 설비 투자, 저농축 우라늄을 쓸 경우 약 7년 후 연료 교체 및 폐기 등을 모두 따지면 5조 원은 넘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방부 국방정책실이 현재 핵추진잠수함 도입 방안을 본격 검토 중이며, 한미 간 기술·연료·법적 무제를 조율하는 실무 협의 채널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본격적인 협의가 진행될 것"이라며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오는 단계는 아직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건조는 기술·외교·시간이 충족돼야 완성되는 '10년 대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업체의 인프라와 생산 역량,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과 핵연료 공급 협의, 국제 비확산 규범 돌파를 위한 외교력을 동시에 맞춰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겼던 일이 이제 절차와 시간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라며 "핵추진잠수함에도 여러 등급이 있는, 우리가 어느 정도 크기에 어떤 장비를 넣어 어떻게 설계하는, 좋은 잠수함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게 새로운 숙제다"라고 말했다.

hg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