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아베'냐 '긴장 속 협력'이냐…다카이치 체제의 한일관계는
극우적 과거사 태도, 한일관계 '시한폭탄'
전문가들 "국제 정세 혼란으로 일단 한일관계 '안전 운전'할 것"
- 노민호 기자, 정윤영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정윤영 기자 =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다카이치 사나에는 '여자 아베'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우파적 색채가 짙다. 한일 간 역사 문제에서도 한국과는 대척점에 있는 '극우적' 성향을 보인 인사로, 다카이치 체제는 한일관계에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관건은 과거사와 한일 양국의 협력 사안을 구분해 접근하는 이재명 정부의 '투 트랙' 실용외교 기조에 다카이치 총리가 호응할지 여부다. 전망은 밝지 않지만, 당장 복잡한 국제 정세에서 일단 일본도 한일관계를 관리하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새 일본 총리의 명확한 입장은 오는 3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확인될 것으로 21일 예상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한국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등에 대한 일본의 잘못을 인정·사죄한 '고노 담화'(1993년)와 '무라야마 담화'(1995년)를 부정한 바 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일본 시마네현이 독자적으로 정한 '다케시마의 날'에 장관급 인사를 파견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한국에선 좋은 평가를 받는 정치인이 아니다.
일본에서도 그의 평가는 '초(超)보수주의자'로 인식되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수주의 단체인 일본회의의 회원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 2021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공개적으로 다카이치 총재를 지지한 것은 자민당 내 다카이치 지지 세력의 성향을 보여 주는 일화다.
다카이치 총리의 이러한 성향은 총리 지명 과정에서도 여실히 확인됐다. 그는 자민당의 정치자금 스캔들 대응 과정에 문제를 제기한 중도보수 성향의 공명당이 26년간의 연립정권 종료를 선언하자, 정권 장악력 유지를 위해 극우 정당인 일본유신회와 손을 잡았다. 유신회 소속 인사들이 내각에 들어오지 않는 조건이었지만, 사상 초유의 '극우 연정' 탄생은 한국엔 우려스러운 일임에 분명하다.
일단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 선출 직후에 진행된 추계예대제(例大祭·제사) 때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북중러 협력에 대응하고, 한미일 방위·안보 분야 협력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관계를 심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정권 유지에 필수적인 유신회와 관련 세력의 지지 유지를 위해 언제든 극우적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카이치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출 직후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과거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의 집권 첫 여론조사 때보다 높은 지지를 받은 것은 그가 자신의 정치 성향을 바꾸지 않을 기반이 된다.
유신회는 최근 '전쟁 포기', '국가 교전권 불인정' 등을 규정한 평화헌법의 9조를 삭제·수정할 것을 주장하며, 자위대의 '국방군'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헌법 9조 1항엔 '전쟁·무력 행사 영구 포기', '2항엔 육해공군 전력 보유·교전권 불인정'의 내용을 담고 있다. 유신회는 또한 '외국인 유입 총량제'도 추진하는 등 이른바 반(反)외국인 정책에도 힘을 싣고 있다.
다만 복잡한 국제 정세, 특히 미국의 경제·안보적 압박과 북한, 중국, 러시아의 새로운 밀착은 다카이치 내각의 정책 구상 우선순위 설정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보수 성향이 강한 다카이치 총리라고 할지라도, 당장은 '본심'을 숨길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당장 한일 협력이 국제무대에서 양국에 더 큰 이익을 주는 상황에서 이시바 전 총리와 이재명 대통령이 설정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협력' 기조를 박살 내듯 깨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학교 교수는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달 24일 일본 기자클럽이 주최한 자민당 총재 선거 후보 토론회에서 '미일 관세 협상의 불평등이 드러나면 재협상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을 언급하며 "미국하고의 문제가 안정되기 전까지는 한일관계는 협력 쪽에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예상했다.
이원덕 국민대학교 교수도 "아베 신조 전 총리 때와 현재 일본이 처한 국제적인 상황은 상당히, 많이 다르다"라며 "미국의 관세 정책 등으로 인한 압박이 심한 상황에선, 일본의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한일관계가 굉장히 중요한 외교적 자산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 교수는 "다카이치 총리와 정치적 지향점은 다르지만 이시바 전 총리가 공들여서 쌓은 한일관계를 훼손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득인 상황"이라며 "다카이치 총리는 당분간 '안전 운전'을 하는 방향을 선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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