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주 구금 사태 간신히 수습…'병 주고 약 준' 트럼프 신뢰 떨어져
무차별 단속으로 동맹 신뢰 깨…'실상 파악' 후 "원하는 조치 들어 준다" 뒷북
美, 조현-루비오 만남 공개하며 조지아주 사태 언급 無…'외교 결례' 지적 제기
- 노민호 기자, 류정민 특파원
(서울·워싱턴=뉴스1) 노민호 기자 류정민 특파원 =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단속으로 인한 대규모 한국인 구금 사태가 한미 간 진통 끝에 11일 간신히 수습 국면으로 들어섰다. 이번 사태는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병 주고 약 주는' 외교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한국의 신뢰가 크게 손상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는 평가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10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과 면담하고 조지아주에 구금돼 있는 우리 국민의 석방 및 비자 제도 개선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정부는 이번 사태 발생 이후 미국 측이 구금된 한국인들을 '자진 출국' 형식으로 내보내 줄 것과, 추후 미국 재입국 시 불이익을 면제해줄 것을 요구해 왔다. 미국의 단속이 적법, 혹은 적절한지 전면적으로 따지지 않는 대신 미국 측이 동맹에 대한 '신뢰'를 보여 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특히 구금 한국인들의 출국 관련 협의에서 미국 이민 당국이 이들의 재입국 시 불이익 전면 면제에 호의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공항 호송 때도 수갑 등 신체적 속박 도구를 이용하겠다고 나오면서 한미 간 협의가 파행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하라고 지시했다"라고 전하며 막판 틀어진 뻔한 한미 간 협의를 간신히 틀어막았다. 일단 시급한 과제인 우리 국민들의 재입국 시 불이익 부과와 불필요한 신체 속박 행위를 막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간) 이번 사태가 발생한 직후에는 단속된 우리 국민을 향해 "그들은 불법체류자일 것"이라며 "우리 이민 당국이 할 일을 한 것"이라는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투자를 강하게 압박해 놓고, 정작 한미동맹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비판적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 지난 7일(현지시간)에는 '이번 사태로 한미관계가 나빠지지 않겠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한국과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라며 확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이를 두고 사흘 사이 한국과 미국의 여론이 일제히 미국의 단속 조치가 과했다는 비판을 쏟아내자 트럼프 대통령이 '태세 전환'을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 이민 정책을 충실하게 수행하던 국토안보부 등 이민 당국의 행보에 외교를 챙겨야 하는 국무부가 제동을 건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한미 외교장관의 대면 수 시간 전 우리 국민을 태운 대한항공 전세기의 현지 출발 일정이 '미국 측의 사정'으로 연기된 것도 미국 행정부 내의 기 싸움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DHS)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태세 전환이 이뤄지고, 한미 간 실무 소통이 진행 중이던 지난 8일(현지시간)에도 "우리는 법대로 하고 있다"라며 "그들(구금 한국인)은 추방(deported)될 것"이라고 홀로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루비오 장관이 조현 장관을 국무부가 아닌 백악관으로 부른 것을 두고도 그가 국토안보부의 개입 없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소통을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이 사안에 직접 개입해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바를 수락하는 모양새를 연출하는 것으로 구금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미 행정부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 국무부는 이날 한미 외교장관 면담 사실을 전하는 보도자료에서 뜬금없이 "루비오 장관은 한국의 대미 투자를 환영하며 관련 분야에서 협력을 심화하는 데 관심을 표명했다"거나 "두 장관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억지력을 강화하고 공평한 방위비 분담(equitable defense burden sharing)을 확대하며 한미동맹을 발전시켜 나가는 방안을 논의했다" 등의 내용만 전하고 조지아주 사태에 대해서는 단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또 외교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미국 측에서 사과의 표현이 있었나'는 취재진의 질문에 "제가 알기로는 그런 건 없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미국이 동맹국에 대한 '외교적 결례'를 범한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나오는 이유다.
아울러 이번 사태의 근본 배경이 된 미국의 비자 제도 개선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빠른 제도 개선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등 속도감 있는 조치가 없다면 규모는 다르더라도 비슷한 사태가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는 불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 장관은 미국에 비자 제도 개선을 협상을 위한 '워킹그룹' 설치를 제안했고 미국도 동의했다며 곧 워킹그룹을 통한 논의가 개시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실제 협상이 진행되면, 미국 측이 몽니를 부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벌써 제기된다.
그 때문에 오는 23일 제80차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비자 제도 개선에 대한 확답을 받아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의지가 중요한 행정부인 만큼, 정식 정상회담이 아닌 짧은 대면을 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비자 제도를 고칠 것"이라거나 정부가 요구하는 한국인 특별 비자 신설 의지를 밝히도록 유도하는 외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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