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패키지'는 어디로? 관세 협상 이어 또 큰 청구서 온다

'패키지 딜' 추진했던 정부, 관세 협상 타결 후엔 "안보 사안은 별개 이슈"
美 '안보 청구서' 여전히 유효…한미 정상회담에서 본격 제기될 가능성

이재명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뉴스1 DB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한미의 상호관세 협상이 31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정부는 당초 이 사안을 안보 사안과 연계해 '패키지 딜'로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지만, 공개된 결과에 안보 관련 합의는 포함되지 않았다. 곧 미국의 안보 청구서가 날아오며 관세에 이어 한미 협상의 '2라운드'가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는 이날 미국이 부과하는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의 무역 협정에 타결했다. 한국은 미국이 소유·통제하는 투자 프로젝트에 3500억 달러(약 488조 원) 대출이나 보증 방식으로 제공하고, 1000억 달러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등 기타 에너지 제품을 구매하기로 했다.

한미의 협상 결과 발표를 종합하면, 이번 협상에선 한국의 대미 투자 방식·규모는 물론 자동차 관세(15%)와 철강·알루미늄·구리에 대한 관세(50%), 농축산물 시장 개방 등 통상 사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정부가 추진한 안보 사안과 연계된 패키지 딜은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방위비분담금 인상, 미국산 무기 구입 관련 협상 여부'에 대해 "안보 등 문제들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가 될 것 같다. 이번 협상에선 별개 이슈라서 같이 다뤄지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미국 측이 패키지 딜을 거부했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과 2주 뒤 한미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김 실장의 예상에 따르면 한국은 빠르면 2주 안에 미국의 '안보 청구서'를 받게 된다는 말이 된다.

지난해 10월 1일 건군 제76주년 국군의 날 시가행진이 서울 세종대로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주한미군 장병들의 모습. /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안보 청구서' 구체적 내용은?…전문가 "상호관세와 별개 사안 된 것, 호재일 수도"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인 2019년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금을 기존보다 약 5배 인상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그는 지난 대선 기간에는 한국의 방위비분담금이 10배가 돼야 한다고 공세의 수위를 높였지만, 현재 미국의 안보 청구서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의 문제에 접근하려는 전략을 내비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방비 인상 요구다. 미국은 이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을 압박해 이들이 2035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로 올리도록 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18일 의회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열린 2026회계연도 국방부 예산안 청문회에서 "나토가 행동에 나선 만큼, 동맹의 방위비(국방비) 지출의 새로운 기준을 갖게 됐다"라며 "이 기준은 아시아 지역을 포함한 전 세계 모든 동맹국들에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라고 말해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의 주요 동맹에게도 곧 '청구서'를 던질 것임을 시사했다.

NATO 회원국들은 GDP 대비 5%를 실질 국방비(3.5%)+간접 투자 비용(1.5%)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한국도 이와 관련해 여러 가지 방안의 시나리오를 구성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못지않은 과제가 '전략적 유연성'으로 표현되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이와 맞물리는 한국의 대중 견제 강화 기여 등이다. 중국의 영향력을 통제하고 싶은 미국의 새 인도·태평양 전략 수립에 한국의 역할 확대를 미국이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 중인 이재명 정부에게는 큰 과제가 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다만 안보 협상과 관세 협상이 분리되면서, 미국의 안보 청구서에 대응할 공간이 넓어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사안이 다른 사안의 진전을 막을 우려가 사라지면서, 협상 과장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더 낼 수 있는 상황이 됐다는 차원에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예측하기 어려운 트럼프라는 변수는 여전하지만 안보 사안이 관세와 연계되지 않는다는 점은 협상력 제고 차원에서 되려 상황이 나아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라며 "2주 안에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논의할 내용이 중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