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같지 않은 미국, 아프간 철수가 남긴 것…한반도 영향은

바이든 "비판 받을 것 알고 있다"…동시에 '국익' 강조
전문가 "'동맹국 수준 맞는 책임 분담' 美 메시지 있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 정부 붕괴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연설을 갖고 미군 철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국익이 없는 곳에 머물며 싸우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 AFP=뉴스1 ⓒ AFP=뉴스1 ⓒ News1 이동원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을 뺀 미국의 행보를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철저한 국익 중심의 대외 정책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이번 사례로 동맹국들한테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는 관측이다.

미군이 아프간 철수를 시작한 지난 5월을 기점으로 불과 3달 만에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은 아프간을 점령했다. 친미 성향 아프간 정부가 미국의 '우산'이 없어지자 순식간에 무너진 것.

특히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유혈사태를 피하고자 했다"고 했지만, 국외로 다급히 탈출한 것은 아프간 정부의 무능의 일부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평가다.

미국은 지난 2001년 9·11테러를 주도한 국제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넘기라는 자신들의 요구를 탈레반이 거부하자 영국과 연합군을 결성, 그해 10월 '항구적 자유'로 명명한 아프간전을 개시했다. 이들이 탈레반을 수도 카불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는 한 달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20년 만에 상황은 역전됐다. 미국은 1조달러(약 1100조원)를 투자하고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 훈련을 위해 최첨단 군사 장비를 지원했음에도 이들의 '정예화'에 실패한 것.

사실 정예화 실패는 아프간 권력층의 부패, 그리고 군의 무능함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아프간 정부군은 30만명으로 추정되는데 그중 이른바 '유령 군인', 즉 행정상 명단에는 있지만 실재하지 않는 군인이 대다수였다.

또한 그나마 있던 인원들의 자국 수호 의지도 낮았다. 이번에 탈레반이 카불까지 진격해오는 과정에서 정부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결국 미국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한계점에 다다랐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부터 추진돼온 아프간 철군의 마침표를 바이든 대통령이 찍은 것이다.

철군의 구체적인 밑그림은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 때 그려진 것이다. 작년 2월 탈레반과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지난 5월1일까지 아프간 주둔군을 철수를 합의한 바 있다.

1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정권 붕괴 후 카불 공항에서 자원 봉사자가 부상 당한 시민을 옮기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단 여기서 '실책'은 바이든 행정부는 탈레반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고, 20년 동안 미국에 협조해온 현지인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미국 부역자'라는 낙인이 찍힌 사람들은 탈레반의 횡포에 무방비로 남은 셈이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슬로건으로 내건 바이든 대통령이 탈레반의 여성에 대한 인권유린이 자명한 상황임에도 눈을 감았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그럼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일련의 반응을 예상한 듯 16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나의 결정이 비판받을 것을 알고 있다"면서 "다른 대통령에게 이 같은 부담을 떠넘기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아프간 정부군이 포기한 전쟁에서 미군이 희생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국의 국익이 없는 곳에 머물지 않겠다고 했다.

'국익 우선 동맹'에 기반한 대외 정책을 펼치겠다는 기조를 이번 아프간 사태를 통해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이는 사실상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바이든호의 이 같은 대외 정책 기조를 두고 우리로서는 한반도 정책에 미칠 영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는 지적이다. 한미연합훈련 축소, 중국과의 등거리 외교 등 한미동맹이 흔들릴 수 있는 요소가 여전히 산적해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서다.

전문가들은 아프간 사태와 한미동맹 사안을 직접적으로 연계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일명 '영양가 없으면 손절' 원칙은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는 "미국과 동맹이 아닌 아프간과 한미동맹을 비교해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이번 미국의 결단은 '의리만 가지고는 붙어있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동맹국들에) 던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이 헤게모니(주도권)를 쥐고 있으면 다른 패를 가질 수 있지만 단지 포지셔닝에 의해 움직이면 상대방이 우리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며 "한미동맹을 지키기 위해, 우리한테 필요한 것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만한 걸 해야 한다는 걸 이번 아프간 사례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이번 바이든 행정부의 아프간 결정은 미국의 동맹 정책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며 "과거 미국은 동맹국에게 경제·안보 등에서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줬다면 이제는 그렇게 할 만한 의지·능력도 없다. 이 때문에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이 스스로 각자의 수준에 맞게 책임과 비용을 분담하라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이어 "이번 아프간 철군 교훈도 미국이 그렇게 많은 정비를 했지만 결국 아프간 정부가 제대로 책임과 비용 등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라며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20여 년간 갖지 못했다. 미국은 그럴 경우 자신들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인데 이는 아프간뿐만 아니라 전 세계 동맹국들한테 똑같이 적용되는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