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문서] 北 김정은 방러 정세, 1984년 김일성 때와 '판박이'

정부, 당시 "극동정세 변화, 北 경제개발 필요성 증대" 판단
'중국과 불편한 사이'도 지금과 흡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왼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AFP=뉴스1 2015.03.12/뉴스1 ⓒ News1

(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북한 김일성 주석의 1984년 소련 방문을 앞둔 정세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러시아 방문을 앞둔 지금과 '판박이'였던 것이 외교문서를 통해 나타났다.

외교부가 30일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에 따라 공개한 비밀해제 문건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김 주석의 소련 방문 등 동구권 순방의 목적을 "경제 개발 필요성으로 인한 대소련 경제협력 강화 등의 요인이 작용"으로 판단했다.

이는 김 제1비서가 오는 5월 러시아 방문이 유력시 되는 상황에서 최근 학계와 언론을 통해 제기되는 북-러 간 밀월의 배경과 매우 흡사하다.

북한과 러시아는 김 제1비서의 집권 후 나진-하산 물류사업 개발과 훈춘 지역의 경제특구 추진 등 여러 분야에서 밀접한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정부는 일본, 미국 등을 통해 얻은 정보에서 당시 소련에 대한 북한 유학생과 과학기술 교류 등이 이미 2년 전인 1982년부터 증가되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눈에 띄는 부분은 비단 북-소 관계 뿐 아니라 북-중 관계에 대한 당시 우리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는 당시 중국(중공)의 대미 유연 자세 등으로 인한 극동정세의 변화도 북한과 소련이 밀접해진 한가지 원인으로 분석했다.

1984년 주일 한국 대사관의 보고에 따르면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좋은 것 같으나 사실은 상당히 긴장되고 있는 것 같다"며 "중국 측이 북한에 대해 하고싶은 이야기를 못하고 매우 신중한 것 같다"고 기술돼 있다.

이는 김정은 제1비서의 집권 후 곧바로 단행한 제3차 핵실험과 이에 대한 중국의 불편한 심기로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북-중 관계와 매우 닮아있다.

특히 "중국이 북한에 대해 하고싶은 이야기를 못하고 매우 신중한 것 같다"는 언급은 북한의 핵문제와 인권 문제에 대한 중국의 현재 입장을 보여주는 듯 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일성 주석은 같은 해 5월 1961년 이후로는 23년 만에 처음으로 300명 가까운 대규모 사절단을 열차로 대동해 소련을 방문한다.

이후 김 주석은 불가리아 등 7개 동구권 국가의 순방까지 약 한달여 간의 긴 일정을 소화한다.

같은 해 북한은 동해의 나진·웅기·청진·원산항 등을 소련 측에 군사기지로 제공하는 등 양국 관계는 스탈린 시대 이후 절정에 도달하기도 한다.

한편 눈에 띄는 부분은 김일성 주석의 소련 및 동구권 순방을 불과 3개월 앞둔 2월 평양을 출발해 소련으로 가던 고려항공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북한의 동민광 임업상 등 탑승객 전원은 이 사고로 모두 사망한 바 있어 김일성 주석이 이로 인한 공포심으로 300명에 가까운 인력을 순방단으로 꾸리고도 굳이 열차를 이용한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된다.

그러나 김 주석의 손자인 김정은 제1비서는 꾸준히 관영매체에 비행기를 타는 모습을 공개하는 등 선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어 오는 5월 러시아 방문이 성사되더라도 비행기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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