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도 항생제 쓴다"…말기암 환자 사용 되레 늘어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후 항생제 처방 88.3%→90.8%

지난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암 환자의 생애 말기 항생제 사용이 오히려 증가했다. 사망을 앞둔 암 환자 10명 중 9명꼴로 항생제를 처방받았고, 중증 감염이나 내성균 감염 등에 사용하는 광범위 항생제 사용도 크게 늘었다. ⓒ 뉴스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지난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암 환자의 생애 말기 항생제 사용이 오히려 증가했다. 사망을 앞둔 암 환자 10명 중 9명꼴로 항생제를 처방받았고, 중증 감염이나 내성균 감염 등에 사용하는 광범위 항생제 사용도 크게 늘었다.

연명의료결정법상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등 주요 연명의료의 중단·유보는 결정할 수 있지만 항생제는 명시적인 중단 항목에 포함되지 않아, 생애 말기 치료 과정에서 사실상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대목동병원은 김정한 감염내과 교수와 유신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교수, 가톨릭대의 심진아 교수와 이완택 연구원 공동연구팀이 이런 내용을 담은 연구를 지난달 29일 국제학술지 'JAMA Network Open'에 발표했다고 2일 밝혔다.

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활용해 2012~2023년 폐암, 간암, 위암, 대장암, 췌장암, 전립선암, 담도암, 유방암 등 장기나 조직에 덩어리 형태로 발생하는 8대 주요 고형암으로 숨진 성인 환자 74만3842명을 분석했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전인 2012~2017년 사망자 34만8813명과 시행 후인 2018~2023년 사망자 39만5029명을 나눠 사망 전 6개월 동안의 항생제 처방 양상을 비교했다. 그 결과 사망 전 6개월 동안 한 차례라도 항생제를 처방받은 환자는 법 시행 전 88.3%에서 시행 후 90.8%로 증가했다.

특히 사망에 가까워질수록 항생제 사용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었다. 사망 전 3개월과 마지막 1주일에도 처방 증가가 뚜렷했다. 항생제 투여량 역시 법 시행 전 1000명 환자·일당 231.4일에서 시행 후 261.6일로 13% 증가했다. 생애 말기 항생제 치료가 줄지 않은 셈이다.

반코마이신이나 카바페넴처럼 중증 감염이나 내성균 감염에 주로 사용하는 광범위 항생제를 처방받은 환자 비율은 54.4%에서 63.9%로 9.5%p(포인트) 상승했다. 이들 광범위 항생제의 투여량 역시 1000명 환자·일당 63.8일에서 83.7일로 31.2% 증가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 의사에 따라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하지만 항생제는 법에서 정한 연명의료 중단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다. 연구팀은 이 때문에 말기 암 환자에게 치료 효과가 불분명한 항생제가 투여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특히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등을 시행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항생제가 일종의 '의료적 절충안'처럼 사용될 가능성도 제기했다. 적극적인 치료를 중단하는 데 따른 심리적 부담을 낮추면서 치료와 돌봄을 계속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연구팀은 항생제 사용 자체를 일률적으로 중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생애 말기에도 항생제를 통해 감염으로 인한 불편한 증상을 줄이거나 분명한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김정한 이대목동병원 교수, 유신혜 서울대병원 교수, 심진아 가톨릭대 교수.(이대목동병원 제공)

중요한 것은 환자의 상태와 치료 목표, 예상되는 이득과 부담을 함께 고려해 항생제 사용의 적절성을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생애 말기에 시행되는 여러 치료가 환자에게 실제로 어떤 도움과 부담을 주는지를 치료 목표에 따라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은 약물 부작용과 내성균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어 말기 환자에게서는 완화의료팀과 감염관리·항생제 적정 사용 관리팀이 함께 환자의 상태와 치료 목표를 평가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생애 말기 항생제 사용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