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에게 치아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 [김현정의 준비된 노후]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치과마취과학교실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 입안의 건강은 단순히 음식물을 씹는 기능을 넘어 사회적 관계, 삶의 질과 자존감, 전신 건강에까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노화로 인한 치아 상실은 많은 고령자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로 인한 고통은 신체·정신·사회적 측면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만 65세 이상 인구의 약 60%가 고령자 주요 건강지표인 20개 이상의 치아를 가지고 있다. 정부는 2012년부터 건강보험을 통해 틀니를, 2014년부터는 임플란트를 급여 항목으로 포함하며 고령자의 저작 기능 회복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같은 정책은 고령자의 영양 상태 개선과 사회 참여 증진에 긍정적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만으로는 고령자의 구강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
임플란트와 틀니는 저작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사후적 처치이며 예방적 개입은 여전히 제도 밖에 머물러 있다. 현재 보험 급여는 치아 상실 이후의 치료에만 집중돼 있다. 치아를 보존하고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정기 구강검진, 치은염‧구강건조증 관리, 구강 운동 등은 제외돼 있다.
결과적으로 예방 기회를 놓친 고령자들은 치료 시점에서 이미 건강과 비용 측면에서 큰 부담을 떠안는다. 더구나 아직 치주염 치료 약과 치료기기가 없는 상황에서 치주 치료 후 필요한 유지 치주 치료는 보험급여가 안 된다. 유지 치주 치료는 단순한 스케일링과 구분되며, 치주 질환의 경과를 고려한 장기적이고 예방적인 관리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치주염 재발을 방지하고 구강 건강과 전신 건강의 악화를 사전에 차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의 경우 유지 치주 치료(supportive periodontitis therapy, CDT Code D4910)가 보험 항목으로 명확히 설정돼 있으며, 치주 치료 이후 정기적 점검과 예방적 처치가 체계적으로 제공된다. 이는 치주염 재발을 방지하고 전신 건강 악화를 차단하는 핵심 치료법이다.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더라도 틀니와 임플란트 치료는 본인 부담률이 약 30%에 달한다. 더구나 임플란트는 최대 2개까지로 제한된다. 치과 치료비가 수백만 원이 소요되는 상황에서 본인 부담금이 5~15%일지라도 저소득 고령층에게는 실질적인 접근이 어렵다.
틀니와 임플란트의 성패는 시술 이후의 관리에 달려 있다. 잘 관리되지 않은 틀니는 구내염, 저작 불능을 유발하고 임플란트는 주위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체계적인 관리 교육과 정기 검진, 구강 청결 유지 서비스 등은 대부분 제공되지 않는다.
고령자의 구강 기능 저하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영양 섭취 저하 → 체중 감소 → 우울감 → 사회적 고립 → 삼킴곤란 → 흡인성 폐렴'으로 이어지는 복합 건강 악화 경로의 시작점이 된다. 구강건강 수준이 낮은 고령자는 우울감과 낙상 위험이 높고, 병원 입원율도 증가한다는 의학적 근거는 차고 넘친다.
일본은 2021년 '구강 기능 저하증'을 질병 코드로 분류하고 노쇠 관리의 핵심 지표로 설정했다. 국민건강보험과 개호보험(장기요양보험)의 통합된 체계 안에서 방문 구강관리 서비스가 제공되며, 예방 중심의 교육과 조기 개입이 체계화되어 있다.
반면 한국은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이 분리 운영되고 있으며 구강질환 예방에 대한 명확한 책임 주체가 없어 정책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이러한 이원화 구조는 고령자의 구강 건강 악화를 방치하고 전신 건강과 돌봄 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적 공백을 초래한다. 돌봄 현장에서 필요한 칫솔질 교육, 구강운동 지도, 구강 기능 평가 등이 없어 맞춤형 구강관리는 요원하다.
고령자의 구강 건강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
첫째, 정기 구강검진, 칫솔질 지도, 구강세정, 구강운동 훈련 등 예방 중심의 구강관리 서비스에 대한 보험 수가를 신설하고 구강건조증, 구취, 설태 등 비치아성 구강질환에 대한 조기 개입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틀니·임플란트 시술 이후 자가 관리 교육과 정기적인 모니터링 서비스를 제공하고 미국처럼 유지 치주 치료를 보험 급여화해 장기적인 구강 건강 유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장기요양보험에 구강 건강 평가와 교육, 예방 훈련 등을 반영한 인력 기준과 수가를 마련하고, 요양시설과 재가 돌봄 체계 안에 구강건강 전담관리사를 배치해 지역사회 통합 돌봄 내에서 구강 건강 서비스가 실질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치아는 단순한 씹는 도구가 아니다. 고령자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며 자립의 시작점이다. 구강 건강은 삶의 질, 전신 건강, 돌봄 비용을 동시에 지키는 가장 실용적이고 필수적인 공공의료 영역이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 이제는 치료 중심 패러다임을 넘어 예방 중심의 구강건강 돌봄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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