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약값부담' 최대 25% 줄어든다…건보재정도 절감 기대(종합)[약가개편]
복제약 가격 54%→40% 인하…국내사 체질 개선
필수 약 지정 확대·원가 보전 강화…내년 7월 시행
- 문대현 기자, 구교운 기자, 황진중 기자, 김정은 기자
(서울=뉴스1) 문대현 구교운 황진중 김정은 기자 = 정부가 약가제도를 15년 만에 대폭 개편하면서 환자 본인부담금도 함께 줄어들 전망이다. 그동안 과도하게 유지돼 온 제네릭(복제약) 가격 구조를 국제 수준에 맞게 조정하면 건강보험 재정도 지금보다 안정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28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약가제도 개편 방향을 보고했다. 신약 개발 생태계를 조성하는 차원에서 연구개발(R&D) 등 혁신적 가치에 보상을 강화하겠다는 게 골자다.
우선 희귀·중증질환 치료제의 급여 등재 기간을 현행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줄인다. 심사평가원은 급여기준 평가 중심으로 역할을 조정하고 약가는 외국 평균가 참고나 계약 방식을 활용해 심의 절차를 간소화한다. 규정 개정 전이라도 시범사업을 통해 단축 효과를 즉시 적용할 계획이다.
약가유연계약제도도 도입된다.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는 '표시 가격(list price)–실제 거래가격(net price)' 구조를 국내 약가에도 반영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고시가격이 곧 실제 거래가격이어서, 이중가격 제도를 운용하는 국가들과 비교할 때 한국의 약값이 상대적으로 낮게 보인다는 지적이 있었다.
정부는 표시 가격을 국제 비교용 기준으로 제시하되 실제 건강보험 지출은 현재 수준에서 유지하는 방식으로 설계한다.
소비자 측면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제네릭(복제약) 가격 인하다.
정부는 신규 제네릭의 가격을 오리지널 대비 '40%대' 수준에서 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제네릭 산정률은 오리지널 약값의 몇 % 수준에서 제네릭의 최초 가격을 책정할지를 뜻하는데, 현재 국내 산정률은 53.55%로 같은 성분의 약임에도 국제 기준보다 높게 시장에 진입하는 구조라는 지적이 있었다.
정부는 국내 산정률을 일본(40%), 프랑스(45%)와 유사한 40%대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한다. 개편이 확정되면 내년 7월 이후 새로 등재되는 제네릭부터 적용되며 기등재 제네릭은 2012년 일괄 인하 이후 10년 넘게 가격 변동이 없었던 품목부터 3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조정한다.
김연숙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공적 의료보험을 운영하는 일본이나 프랑스 등의 사례를 참고할 때, 한국의 복제약 약가 수준은 OECD 평균 대비 2배 이상 높다"면서 산정률 개편에 대한 정부 입장을 전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절감된 재정을 중증·희귀질환 치료제의 신속 등재와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화에 재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약가개편이 적용되는 복제약은 대부분 전문의약품으로 병원에서 의사가 처방해야 탈 수 있다. 정부 방침에 따라 복제약 가격이 내려가면 자연스레 환자가 병원에서 처방받는 약 가격도 떨어지는 셈이다.
질환 등 상황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환자 본인부담금이 최대 25%까지 낮아진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가 1600원에 사던 약가가 1200원으로 400원가량 줄 수 있다. 고가의 항암제 경우 환자부담금 감소의 체감 폭은 더 커진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급여 약은 공보험으로 지원이 되는 상황이라 환가 체감하는 가격 변화는 크진 않겠지만, 단돈 몇백원이라도 떨어지면 환자의 부담이 낮아진다"며 "약가 인하로 건강보험 재정이 안정되는 효과도 있다"고 전했다.
특히 그동안 제약사의 리베이트와 보험제도를 활용해 의사가 환자에게 불필요한 검사나 투약을 강권하는 과잉 진료가 사라질 것이란 기대도 있다.
반면 제약업계 분위기는 엇갈린다. 상위 제약사의 경우 업계에서 R&D 투자가 늘 경우 혁신성이 커져 산업 성장이 기대될 것으로 보지만, 대다수 중소 제약사는 걱정이 크다.
정부는 연구개발(R&D) 투자와 필수 약 수급 안정에 기여하는 제약사에 대한 우대를 강화하기로 했는데, R&D 투자 여력이 없는 중소업체는 버티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중소 회사 종사자 A 씨는 "단순히 약가를 깎는 문제를 넘어, 제약 산업 전체의 성장 동력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까 우려스럽다"며 "수익성 악화로 도산하는 곳까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제약업계 종사자 B 씨는 "지속해서 낮아지는 영업이익률 속에서도 R&D 비중을 유지하거나 늘리며 기술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약가를 지금보다 인하하면 혁신의 속도를 더 떨어뜨리고 산업 동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 사들이 비교적 많이 속한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전날(27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사옥에서 '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제1차 회의를 열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비대위는 향후 정부에 제도 개편에 대한 합리적 의견을 전달하고, 산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적극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다국적 제약사의 입장은 또 다르다. 오래전부터 외자사들이 주장해 온 이른바 '이중약가제'(약가 유연계약제)가 도입되면서 그간 제기돼 온 '코리아 패싱' 우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이번 개편안에는 등재 신약과 특허만료 오리지널, 위험분담 종료 신약, 바이오시밀러까지 약가 환급제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외자사들은 구체적인 내용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큰 틀에서는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 방향에 공감하는 모습이다.
한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는 "외자사들은 전반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라며 "제네릭 약가 인하와 약가 유연계약제 도입을 통해 건강보험 재정 여력을 확보하고, 이를 혁신 치료제에 더 쓰게 된다면 국내 환자들이 신약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ggod611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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