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R&D, AI·로봇 기반 '자율실험실' 시대 열렸다

도구에서 '가설·실험·분석' 주도 연구 주체로 성장
"협회 미래관 3층에 글로벌 표준 자율실험실 시공 중"

표준희 AI신약연구원장이 'KPBMA 커뮤니케이션 포럼'에서 AI 신약개발 자율화 시스템에 대해 발표를 하고 있다. 2025. 11. 24/뉴스1 황진중 기자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인공지능(AI)이 인간 연구자를 돕는 강력한 도구였다면, 미래 AI는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수행하며 분석까지 마치는 독립적인 '연구 주체'가 될 것입니다."

표준희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연구원장은 24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제약바이오협회에서 열린 '2025 KPBMA 커뮤니케이션 포럼'에서 차세대 신약개발의 핵심으로 'AI 자율 실험실'(SDL)을 소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발표에서는 시기가 지날수록 낮아지고 있는 제약바이오 분야 R&D 생산성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AI와 로보틱스가 결합된 완전 자율화 시스템이 제안됐다. 또 제약바이오협회가 추진 중인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이 소개됐다.

"10년 신약개발, AI가 13개월로 단축"…R&D 생산성 혁명

발표에 따르면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평균 10~15년의 세월과 약 42억 달러(약 5조 800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실패율은 96%에 육박한다.

투자 대비 수익률(IRR)이 지속해서 하락하면서 기존 블록버스터 모델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AI 자율화 시스템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표준희 원장은 글로벌 AI 신약개발 기업 인실리코 메디슨의 사례를 들었다.

인실리코 메디슨은 2019년 후보물질 발굴과 검증을 46일 만에 완료했다. 최근에는 AI 프로젝트 시작 13개월 만에 신약 후보물질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리커전은 주당 수백만 건의 세포 실험을 통해 확보한 65페타바이트 규모의 데이터를 AI에 재학습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실험실과 AI의 결합을 보여줬다.

표 원장이 강조한 SDL의 핵심 개념은 자동화와 자율화의 구분이다. 기존의 자동화가 기계적으로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라면, SDL이 추구하는 자율화는 AI가 실험 결과를 분석해 능동적으로 다음 실험 조건을 설계하고 변경하는 것을 의미한다.

SDL의 작동 원리는 설계-합성-테스트-분석으로 요약된다. 표 원장은 "AI가 뇌 역할을 하고 로봇이 손과 발이 돼, 인간의 개입 없이 24시간 365일 연구가 돌아가는 시스템이 바로 SDL의 지향점"이라고 설명했다.

KPBMA 승부수…내달 '표준 자율 실험실' 구축

제약바이오협회는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체질 개선을 위한 물리적 인프라 구축에 직접 나섰다.

표 원장은 "현재 협회 미래관 3층에 표준화된 SDL을 시공 중이며, 오는 12월 말 구축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실험실은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와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가 주도하는 글로벌 협의체 '가속화 컨소시엄'과 협력해 설계된 글로벌 표준 모델이다.

로봇이 시료 채취, 저울 측정, 용해, 합성, 분석 등 전 과정을 수행한다. 클라우드를 통해 전 세계 연구진과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분산형 연구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데이터가 곧 자산"…개방형 생태계·인재 양성 중요

표 원장은 하드웨어 구축을 넘어선 생태계 조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SDL의 가장 큰 강점은 실험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데이터가 디지털화돼 축적된다는 점이다.

그는 "사람이 실험할 때 놓칠 수 있는 온도, 교반 속도, 용매량 등의 미세한 데이터가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된다"며 "이렇게 축적된 양질의 데이터는 AI 모델을 고도화하는 핵심 자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약바이오협회는 이 인프라를 기업들이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공동 연구 프로그램'으로 개방해 산업계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부족한 전문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글로벌 신약개발 SDL 실무 집중교육'도 병행한다.

표 원장은 "복잡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쪼개서 정복하는 '분할 정복'의 지혜와 다양한 에이전트들의 협업이 필요하다"면서 "협회가 구축하는 글로벌 네트워크와 자율화 인프라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에 강력한 무기가 돼 글로벌 R&D 경쟁의 파고를 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j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