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는 타고나는 것일까? [김현정의 준비된 노후]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편집자주 ...필자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뇌신경과학 분야를 연구한 학자이며 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으로 의료계와 학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의학과 치의학의 경계, 장애인 치과, 지역사회 구강돌봄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칼럼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은퇴 후 황금 노후를 준비하는 어르신들에게 건강한 노후, 슬기로운 노후 준비를 위한 길라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인간은 생로병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최근 연구 결과들은 노화가 단순히 피할 수 없는 과정이 아니라 읽고, 측정하고, 조절할 수 있는 '해석 가능한 시스템'임을 보여주고 있다. 유전체, 후성유전체, 전사체, 단백체, 대사체, 마이크로바이옴 등은 우리 몸의 노화와 관련된 변화를 해석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한다. 유전체와 후성유전체는 시간의 흔적과 유전적 설계도를 보여주고, 전사체와 단백체는 세포 기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드러낸다.

대사체와 마이크로바이옴은 신체와 환경, 식이, 면역이 끊임없이 주고받는 '보이지 않는 실시간 대화'를 반영하며, 생활습관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는 영역이다. 특히 마이크로바이옴이 염증, 대사, 면역, 심지어 뇌 기능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우리 몸이 단순히 '유전자만으로 결정되는 존재'가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노화를 하나의 질병으로 보고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는 신약 개발 회사들도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노화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시대'에서 '노화를 측정하고 조절할 수 있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그런데도 폭소3(FOXO3), 시르투인(Sirtuin), 텔로미어, 야마나카 인자, 세포노화 등과 관련된 유전자들은 노화와 장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로 알려져 있다.

노화의 특징. (출처: Kroemer G, López-Otín C, Madeo F, de Cabo R. Cell Metab. 2023;35(12):1931-1933)

그러나 노화의 본질에는 단일 유전자가 아니라 복잡한 병리 현상인 '만성 염증'이 자리 잡고 있다. 염증은 외부 자극에 대한 방어 반응이지만, 이것이 장기간 지속되면 조직 손상과 기능 저하를 초래한다. 그래서 노화 연구에서는 이를 '인플라메이징'(inflammaging·염증 노화)이라 부른다.

일본의 요시노리 오스미(Yoshinori Ohsumi) 교수는 노화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는 '오토파지'로 노벨상을 받았다. 오토파지는 세포가 스스로 손상된 단백질과 노폐물을 제거하는 일종의 세포 청소 시스템이다. 이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면 손상된 세포 구성 요소가 제거되고 염증 물질의 축적이 줄어든다.

그런데 오토파지는 생활습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과식, 불량한 구강위생, 운동 부족, 만성 스트레스는 오토파지를 억제하고 세포 내 노폐물과 염증을 증가시킨다. 반대로 적절한 공복,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은 오토파지를 활성화한다. 어쩌면 장수의 핵심은 유전자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에서 세포가 얼마나 잘 정리되고 회복되며 만성 염증을 최소화하는가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만성 염증은 생활습관, 특히 식이, 운동, 수면, 그리고 구강건강과 깊이 연결돼 있다. 일본이 세계적인 장수 국가가 된 이유 역시 단순히 유전적 특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잘 걷고, 잘 씹고, 잘 삼키며, 입안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사람과 연결되어 있으며,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는 삶이다. 특별한 비법이 아니라 반복되는 건강한 생활습관이 건강수명을 만든다.

대한치주과학회와 동국제약이 '잇몸의 날'을 맞아 3월 19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철저한 잇몸관리, 소화기암 위험을 줄입니다' 캠페인을 하고 있다. ⓒ 뉴스1 권현진 기자

우리 몸에서 염증이 지속해서 일어나는 대표적인 곳이 바로 구강이다. 구강 세균 총량은 단순히 '입안이 깨끗한가'를 판단하는 수준을 넘어 전신 건강을 이해하는 중요한 지표다. 이는 치아 표면의 플라크, 잇몸 경계와 잇몸 속, 설태, 그리고 침 속에 존재하는 미생물까지 모두 포함한 개념으로, 입안 전체에 존재하는 세균의 양, 즉 세균 부하를 의미한다.

건강한 사람의 구강에도 약 700종 이상의 미생물이 존재하며, 그 수는 10¹⁰~10¹¹ 개에 이르는 고밀도 미생물 환경을 이룬다. 문제는 이 세균 총량이 증가할수록 충치와 치주질환 같은 구강 염증이 시작되고, 축적된 플라크는 염증을 지속시키며 만성화된다. 더 나아가 구강 세균과 독소는 혈류를 통해 전신으로 퍼져 혈액 염증 마커인 CRP와 사이토카인 증가를 유도하고, 결국 '인플라메이징'이라 불리는 만성 염증 기반의 노화를 촉진한다.

고령자의 주요 사망 원인인 폐렴은 삼킴장애로 인해 구강 세균이 기도로 흡인되면서 발생한다. 또한 구강 마이크로바이옴은 당뇨, 심혈관질환, 치매와 같은 주요 만성질환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만성 구강염증은 구강노쇠를 넘어 영양 불균형, 근감소증, 노쇠를 유발하고, 결국 낙상과 폐렴 위험까지 증가시킨다. 실제로 구강노쇠는 전신노쇠보다 2~3년 먼저 나타나는 조기 신호로, 지역사회 고령자 예방관리의 주요 타깃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그러나 사람마다 노화 현상은 다르게 나타난다. 건강한 노후는 특별한 유전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바로 지금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우리의 일상과 입안에서부터 시작된다.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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