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받으러 왔다 복지관 단골로…80대 독거노인 눈물 닦은 '그냥드림'
먹거리·생필품 지원에서 상담·사례관리까지…복지 사각지대 발굴
작년 12월부터 4만4712건 상담…생계·주거·정서 지원으로 이어져
- 천선휴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라면이나 생필품 준다고 해서…."
경북 상주의 한 80대 어르신은 그렇게 처음 복지관 문을 두드렸다. 배우자와 사별한 뒤 복지관을 이용해 본 적은 없었다. 어느 날 복지관 앞을 지나가다 '그냥드림' 현수막을 봤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궁금해 들어왔다.
처음 복지관을 찾은 이유는 먹거리와 생필품이었다. 하지만 물품을 받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어려움이 드러났다. 최근 배우자를 떠나보낸 뒤 혼자 지내며 정서적으로 크게 위축돼 있었다.
박범주 상주시종합사회복지관 사례관리팀 사회복지사는 "그냥드림 사업 자체가 단순히 물건을 주는 게 아니라 상담을 통해서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하는 게 주목적"이라고 말했다.
먹거리를 받으러 온 사람이 자신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복지서비스가 찾아진다. 그냥드림이 식료품과 생필품을 건네는 데서 끝나지 않고 상담과 사례관리, 지역사회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상주시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그냥드림 이용자에게 물품만 전달하지 않는다. 물품을 건네는 과정에서 이용자의 생활을 살피고 추가적인 어려움이 확인되면 상담과 사례관리로 연결한다.
이 어르신도 상담 과정에서 최근 배우자와 사별했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눈물을 흘렸다. 혼자 지내며 겪고 있던 어려움이 처음 드러난 순간이었다.
박 사회복지사는 "어르신께서 바로 눈물을 흘리시면서 최근에 사별해서 많이 심적으로 힘든 상황이라고 말씀하셨다"며 "저희 쪽에서는 이분이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고 판단해서 그냥드림 이용이 끝난 뒤 사례팀에서 집으로 상담을 나갔다"고 말했다.
상담 이후 어르신의 일상도 달라졌다. 지금도 하루에 한 번씩 복지관을 찾고 또래 어르신들과 어울리며 복지관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박 사회복지사는 "이분도 저희랑 상담하면서 조금씩 저희한테 마음을 여시는 것"이라며 "혼자 외롭게 지내시다가 복지관을 이용하면서 주변 어르신들과도 친해지고 정서 지원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전체적으로 삶이 조금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광명푸드뱅크마켓센터를 찾은 한 어르신에게도 그냥드림은 식료품 지원으로 끝나지 않았다.
기초연금과 노인일자리 수입으로 생활하던 이 어르신은 노인 일자리가 중단되면서 식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졌고 설 연휴에는 3일 동안 한 끼도 먹지 못했다. 그냥드림을 통해 발굴된 뒤 긴급 식료품 지원과 푸드마켓 이용 연계가 이뤄졌고 긴급복지와 기초 생계·의료·주거급여 신청도 지원받았다. '개성 만점 쿠킹테라피' 대상자로도 선정됐다.
광명에서는 주거지가 없어 화장실과 공원 등을 전전하던 중장년 이용자도 그냥드림을 통해 발굴됐다. 센터는 광명 온 동네 복지관 사업을 연계해 긴급지원금 30만 원을 지원했고 이용자는 고시원에 입소할 수 있었다. 이후 사례관리와 긴급생계비, 기초생활·주거급여 신청, 자활근로 등을 지원하고 LH 전세임대도 신청했다. '개성 만점 쿠킹테라피'에도 연계됐다.
두 사례 모두 출발점은 먹거리였지만 상담을 거치면서 필요한 지원은 달라졌다. 한 사람에게는 생계와 의료·주거 지원이, 다른 사람에게는 당장의 주거 확보와 자활 지원이 이어졌다.
그냥드림은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있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식생활 취약계층을 위한 먹거리 안전망으로 출발했다.
이용자는 개인정보 수집과 자가 체크리스트 작성 후 먹거리와 생필품을 지원받고 이후 기본상담을 진행한다. 추가 지원이 필요하면 읍면동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이나 지역 복지자원으로 연계된다.
전국적으로도 그냥드림을 통한 복지 상담과 서비스 연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전국 그냥드림 사업장에서 이뤄진 복지 상담은 4만 4712건이다. 이 가운데 읍면동 연계 의뢰는 2만 2367건으로 50%였으며 이 중 4437건이 실제 복지서비스로 연계됐다.
본사업 기간인 올해 5월 18일부터 7월 31일까지는 복지 상담 1만 9113건 가운데 1만 479건이 읍면동 연계로 의뢰됐고 2632건이 복지서비스로 연결됐다. 생계가 끊긴 사람에게는 긴급복지가, 주거지가 없는 사람에게는 주거 지원이, 혼자 지내는 사람에게는 복지관 프로그램과 지역사회 관계가 연결되는 식이다.
박 사회복지사는 그냥드림이 물품을 넘어 복지서비스와의 첫 만남을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고 봤다.
그는 "단순히 물품 제공을 떠나서 이분들이 직접 발로 찾아와 복지시설을 이용하는 첫 단추를 채운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먹거리와 생필품은 복지서비스에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을 복지관으로 이끄는 하나의 매개가 된다. 물품을 받으러 온 사람이 자신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발견되면 상담과 사례관리, 각종 복지서비스로 연결된다.
박 사회복지사는 "분명 복지 사각지대에 계신 분들이 발굴되기도 하고 그분들을 떠나서 기초생활수급이나 차상위로 연계되는 분들도 있다"며 "단순히 물품 제공이라고 할 수 없고 물품은 복지에 접근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사람이 정말 힘든 상황에 있는 분인데 이것을 계기로 세상에 나와서 복지시설을 이용하게 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며 "그냥드림 사업이 나름대로 의미 있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조금 최적화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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