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료는 그대로, 지원은 확대…재정 지속가능성 논쟁 재점화

내년 보험료율 7.19% 동결…희귀·중증질환 보장성 확대 추진
재정 전망 엇갈려…"지출 줄이면 충분" vs "고갈 앞당겨질 수도"

한 대학병원을 찾은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 뉴스1

(서울=뉴스1) 천선휴 임여익 기자 = 정부가 내년도 건강보험료율을 7.19%로 동결하면서도 희귀·중증 난치질환자와 중증 당뇨병 환자 등에 대한 보장성 확대에 나서기로 하자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둘러싼 논쟁도 다시 불붙고 있다.

정부는 최근 5년 연속 당기수지 흑자와 30조 원 규모의 누적 준비금, 국고지원 확대, 반도체 산업 호황에 따른 보험료 수입 증가 등을 근거로 재정 안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증가 속도를 감안하면 보험료 동결이 재정 악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재정은 안정적…보험료보다 지출 관리가 우선"

보건복지부는 8일 열린 제1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내년도 건강보험료율을 올해와 같은 7.19%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희귀·중증 난치질환자와 중증 당뇨병 환자, 무치악 노인, 소아·청소년 등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방안도 의결했다.

건정심은 최근 5년 연속 건강보험 재정이 당기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데다 지난해 말 기준 약 30조 2000억 원의 누적 준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험료율 동결을 결정했다. 내년도 건강보험 정부 지원이 약 1조 1000억 원 증액된 점도 반영됐다.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에 따라 보험료 수입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이 차관은 "경제지표와 기업 정보를 분석한 결과 전체적으로 약 3조 8000억 원의 추가 보험료 수입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돼 재정 전망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운영하기 위해 국고 지원 증액과 지출 효율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약가 제도 개편과 검사·영상 수가 조정, 거짓·부당 청구 관리 강화 등을 통해 재정 누수를 방지하고 건강보험 보장 혁신 방안의 효과를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보험료 동결이 무리한 결정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학 교수는 "건강보험 재정 상황이 몹시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며 "당기수지 적자·흑자보다 누적 재정을 봐야 하는데 현재는 상당히 안정적인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강보험 지출은 급격하게 늘거나 줄어드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오히려 보험료율을 매년 올리는 것이 문제일 수 있다. 소득세율을 매년 올리지 않는 것처럼 건강보험료율도 매년 인상하는 방식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지금은 보험료 인상보다 낭비성 지출을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며 "과잉 진료와 부당 청구 문제, 원가 대비 높게 책정된 일부 의약품 가격 등 비효율적인 지출 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 뉴스1 양혜림 디자이너
"고령화에 커지는 지출 부담…보험료 동결 우려"

반면 노동계는 건강보험 재정이 겉으로는 흑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건강보험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건강보험 진료비 총액은 125조 원으로 2024년 116조 2375억 원보다 7.6% 증가했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비중 역시 빠르게 커지고 있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의 건강보험 진료비는 전체의 44.8%를 차지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연구에서는 이 비중이 2030년 53.1%, 2040년 63.9%, 2050년 70.2%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국회예산정책처도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경고한 바 있다. '2024~2033년 중기재정 전망'에 따르면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2026년 5000억 원 적자를 시작으로 적자 폭이 확대돼 2031년 적립금이 소진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누적 적자는 2032년 20조 원, 2033년 28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강 부위원장은 "노인 의료비 증가와 간병비 급여화 등 건강보험 재정을 활용한 보장성 확대 정책이 계속 논의되고 있는데 재정 고갈 시점은 오히려 앞당겨지고 있다"며 "보험료까지 동결되면서 재정 악화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행위별 수가제 구조에서는 공급자가 의료행위를 늘리면 지출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지불제도 개편이나 혼합진료 문제, 성분명 처방 확대 등 구조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쇼핑' 규제만으로는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내놨다.

강 부위원장은 "정부에서 일부 고빈도 외래 이용자를 문제로 지적하지만 100조 원이 넘는 건강보험 진료비 가운데 이들이 차지하는 규모는 수백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며 "그런 부분만 관리한다고 해서 건강보험 재정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 국고지원 규모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가 법정 국고지원 비율인 20%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도 건강보험 국고지원 규모를 약 13조 7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올해보다 약 1조 100억 원 증가한 규모로 지원율도 11.9%에서 12.3%로 0.4%포인트 높아졌다.

이에 대해 이 차관은 "2027년도 예산 정부안 편성 과정에서 국고지원을 1조 원 증액해 13조 7000억 원 규모로 편성했다"며 "정부는 앞으로도 국고지원을 지속해서 확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꺼번에 법정 지원 수준까지 확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재정 당국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지원 규모를 늘렸다"고 덧붙였다.

강 부위원장은 "결국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지불제도 개편과 국고 책임 강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보험료 동결 이후 재정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