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진단까지 96시간"…치료 여정 함께하는 전문기관 네트워크
[희귀질환]④ 수도권 희귀질환 전문기관 '삼성서울병원'
전국 19개 전문기관 촘촘한 네트워크로 끊김 없는 치료 지원
- 조유리 기자
(서울=뉴스1) 조유리 기자
"희귀질환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만큼 진단이 어렵지만, 어떤 희귀질환은 치료 시점에 따라 예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지난 7일 이지훈 삼성서울병원 희귀질환전문기관 단장(소아청소년과 교수)은 한 환자가 병원을 찾은 뒤 단 96시간 만에 척수성근위축증을 진단받고 치료에 들어간 사례를 소개했다. 의료진이 질환을 의심하고 유전자 검사를 신속히 진행한 다음, 결과가 나오자마자 환자에게 연락해 치료를 시작한 것이다.
질병관리청이 지난 2014년부터 지정·관리하는 희귀질환 전문기관은 권역 내에서 진단부터 치료, 사후관리까지 전 주기에 걸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거점 의료기관이다. 전국에 총 19곳으로, 삼성서울병원은 수도권 4곳 중 한 곳이다.
국가관리대상 희귀질환은 1389종에 달하지만 증상이 다양하고 비특이적이어서 진단까지 수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이른바 '진단 방랑'이 흔한 이유다.
그러나 진단 속도를 좌우하는 것은 검사 기술 자체보다 의료진의 경험과 판단이다. 이 교수는 "중요한 것은 환자의 증상, 즉 표현형을 보고 어떤 질환을 의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임상적 식견"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이러한 진단 역량을 기반으로 희귀질환 진료체계를 구축해 왔다. 1994년 개원 이후 국내 최초로 유전상담 클리닉을 운영하며 진단 경험을 축적했고 현재는 연간 1만 건 이상의 유전상담과 유전자 검사 기반 진단 지원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신경과, 재활의학과, 안과, 진단검사의학과 등 다양한 진료과와 연구소가 협력하는 다학제 체계를 통해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을 임상에 적용, 신속한 유전 진단을 가능하게 했다. 의심 환자가 내원하면 즉시 검사를 의뢰하고, 필요시 48시간 이내 결과를 확보해 치료로 이어지는 시스템이다.
이 같은 속도는 '비상연락망' 수준의 의료진 협업에서 나온다. 검사 결과가 늦은 시간에 확인되더라도 즉시 환자에게 연락해 다음 날 추가 검사 및 치료를 시작하는 식이다.
특히 삼성서울병원을 포함한 전국 19개 희귀질환 전문기관은 개별 병원의 진단·치료 공백을 메우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희귀질환센터를 중심으로 지역 의료기관과 긴밀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협력 병원에서 희귀질환이 의심되면 신속히 의뢰해 빠르게 진단받고, 이후에는 다시 협력 병원으로 회송돼 지속적인 치료를 이어간다.
이 교수는 "희귀질환 거점 병원의 의료진들 간 소통이 매우 긴밀해 환자의 진단과 치료 과정이 끊김이 없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즉, 전문기관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를 통해 다학제 기반 상담-진단-치료가 체계적으로 이뤄지며 환자의 치료 여정을 함께하는 구조인 것이다.
이외에도 희귀질환센터는 희귀질환세미나를 열어 전문의료진이 직접 질환 정보를 환자에게 제공하는 기회도 마련하고 있다. 또 매년 2~3건의 질환 설명서를 제작해 다른 전문기관 및 환자와 공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진단 과정에서 전문기관이 제공하는 유전상담의 역할은 두드러진다. 개인의 질환을 가족으로 확대해 환자를 조기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 교수를 찾은 50대 환자는 멜라스 증후군을 진단받았다. 그동안 설명되지 않던 여러 증상이 하나의 질환으로 연결됐고 가족 검사로 이어져 환자를 추가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교수는 "진단받은 환자는 다른 증상이 나타나기 전부터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예방적 치료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희귀질환 진단과 치료는 환자 개인을 넘어 가족 단위의 건강 관리로 확장된다. 다만 비용은 여전히 부담이다. 유전자 검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더라도 본인 부담금이 수십만 원에서 100만 원 이상에 달하는 경우가 많다. 4인 가족이 검사할 경우 약 400만 원이 필요하다.
질병청의 '희귀질환 진단 지원 사업'은 이러한 비용 장벽을 낮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의료진이 필요할 때 즉시 검사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하면서 진단 속도를 높이는 기반이 되고 있다.
전문기관의 역할이 확대되는 가운데 제도적 한계도 지적된다. 현재 희귀질환 전문기관은 '사업'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지속성과 안정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전문기관 지원의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며 "특히, 임상유전 정밀의료 기반 희귀질환 진료체계를 구축해 전문가 양성부터 진단·치료, 치료제 개발까지 체계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조기 진단을 위한 신생아 선별검사 확대 필요성도 제기했다. 치료제가 존재하거나 임상적 효과가 입증된 질환의 경우, 증상이 나타나기 전 발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기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척수성근위축증의 신생아 선별검사는 대만과 일본, 홍콩 등 우리나라를 제외한 인근 국가에서 10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교수는 "신경세포는 시간이 지날수록 손실되기 때문에 치료 시점이 늦어질수록 회복 가능성이 떨어진다"며 "치료할 수 있는 질환부터라도 선별검사에 포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환자 가족에 대한 지원 필요성도 강조했다. "희귀질환 환자의 삶은 가족의 헌신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부족하다"며 "경제적 보조와 돌봄 지원 등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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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국내 인구의 약 0.9%를 차지하는 희귀질환자는 '희귀하다'는 이름과 달리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희귀질환은 종류가 다양하지만 각 질환별 환자 수는 매우 적어, 환자와 의료진 모두 진단과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정부는 희귀질환자의 조기 진단과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뉴스1은 질병관리청과 함께 희귀질환자와 그 가족이 처한 현실과 이들을 둘러싼 제도적 노력과 과제를 집중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