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공장 노동자 암 위험 첫 입증…"혈액암 3배·비뇨기암 5배"

발암노출 위험 첫 정량 분석…자동화·밀폐화 수준 따라 위험 달라져
문진영 교수 "국가별 공정 차이 반영한 대규모 연구 기반 마련돼야"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제약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혈액암과 비뇨기암 위험이 일반 인구보다 각각 3배, 5배 높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그동안 자료 부족으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산업군이라는 점에서 제약 제조 노동자의 발암 위험이 처음으로 정량화된 셈이다.

17일 문진영 명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문용석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안과 교수팀이 미국·유럽·인도에서 수행된 제약공장 관련 연구 6편을 종합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에 따르면 제약공장 노동자의 혈액·림프계 암 발생 위험은 일반 인구 대비 약 3배, 비뇨기계 암은 5배 가까이 높았다. 직업역학에서는 상대위험도(RR)가 2를 넘으면 노출과 발병의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혈액·림프계 암은 골수·림프절 등 면역조직에서 발생하며 급성백혈병·림프종 등이 포함된다. 비뇨기계 암은 신장·요관·신우·방광 등 소변 생성·배출 기관에서 발생하는 암으로, 체내로 들어온 화학물질이 혈액을 통해 전신으로 확산하거나 대사산물이 소변으로 배출될 때 장기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연구팀이 지목한 위험 물질은 △벤젠 △디클로로메탄·트리클로로에틸렌(TCE) 등 염화계 용제 △항암제 원료 △니트로사민 △포름알데히드·에틸렌옥사이드 같은 멸균제 △디에틸·디메틸 술페이트 등 알킬화제다. 이들 물질은 원료 용해·정제·세척·멸균 등 제조 과정에서 사용된다.

노출 경로는 증기·미세입자 흡입, 오염된 장비·작업복을 통한 피부 접촉, 손 위생 미흡 시 경구 섭취 등이 있다. 특히 원료 계량·혼합, 장비 세척, 배관 교체 등 '직접 접촉 공정'에서는 자동화 수준과 무관하게 노동자가 직접 공정에 관여한다.

문진영 교수는 "제약 제조 환경에는 여러 발암물질이 동시에 존재해 특정 물질만으로 위험을 설명하기 어렵다"며 "이번 연구는 제약공장 노동자의 암 위험이 과소평가돼 왔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별 자동화·밀폐화 수준이 달라 다양한 공장을 포괄한 대규모 연구가 필요하다"며 "최근 국내에서도 CDMO(위탁개발생산) 공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는 제약·바이오 산업의 성장 속도에 비해 노동자 안전 문제는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또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생산 현장의 위험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연구팀은 다만 연구 수 자체가 적고, 개인별 노출량 자료가 부족하며 조사 대상이 특정 국가·공장에 편중된 점은 해석 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공중보건 학회지'(BMC Public Health) 최신호에 게재됐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