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11월 1일 '손상 예방의 날'…"손상은 예방가능한 질병"

이성우 중앙손상관리센터 센터장 (현 고려대 안암병원 진료부원장) = 여름휴가가 한창이던 어느 날이었다. 한 가족이 응급실로 뛰어 들어왔다. 수영장에서 다이빙한 초등학생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젖은 머리칼에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아이는 들것에 실려 왔다. 다행히 생명은 구했지만 아이는 척추 손상을 입었다. 아이는 오랜 시간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고, 그 가족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고처럼 찾아오는 손상의 여파는 가족의 일상과 마음에 거대한 영향을 끼친다. 누구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 고통은 개인의 몫을 넘어 사회 전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상처가 된다.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이런 장면을 수없이 목격한 나는 손상이 결코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9년 한 해에만 전 세계에서 약 440만 명이 손상으로 사망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4년 기준 사망원인통계를 보더라도 국내에서 3만여 명이 손상으로 생명을 잃었다.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추산 연간 20조 원 이상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 10~19세 청소년의 주요 사망 원인이 교통사고와 자살 등 손상 관련 원인이라는 점에서 손상 예방은 세대 전체의 보건 과제로 인식되어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손상의 심각성을 되새기고 예방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매년 11월 1일이 ‘손상 예방의 날’로 지정됐다.
올해 처음으로 맞이하는 손상예방의 날은 질병관리청 첫 제정법인 손상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손상예방법) 제4조(손상예방의 날)에 근거해 마련된 법정기념일이다. 교통사고, 낙상, 화재, 중독 등의 손상은 우리의 일상에서 언제든 발생한다. 그렇기에 손상을 사고로 보지 않고, 감염병이나 만성질환처럼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이라고 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원인을 파악하고, 체계적인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면 충분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손상관리센터는 국가 손상예방정책의 핵심 실행기관으로서 지난 1월 손상예방법 시행 이후 손상 예방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수행해 왔다. 손상유형 및 원인통계, 퇴원손상통계 등 데이터 기반 정책홍보 자료를 발간했고, 복잡한 통계를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포그래픽, 카드뉴스로 시각화했다. 이에 따라 국민의 손상 이해도를 높이고, 손상예방 인식 확산에 기여하고자 했다.
아울러 현장 중심의 예방 사업인 생애주기별 손상예방 교육, 노인 낙상예방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학교 안전교실도 추진 중이다. 또 대한심폐소생협회와의 업무협약을 통해 민·관 협력 홍보체계도 공고히 하고 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약물 중독 예방 교육을 진행하며 학생들과 직접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은 자의적으로 약물을 오남용하기도 했지만, 충분한 지식이 없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약물에 중독되기도 했다. 현장교육을 통해 이런 사례가 생각보다 훨씬 더 흔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짧은 강의였지만 학생들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단 한 번의 교육이 청소년들의 인식을 바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응급실과 강단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환자와 학생들을 만났던 과거에도 손상이 예방할 수 있는 질병임을 느꼈지만, 국민의 일상 속 손상을 미리 막는 일에 직접 나서게 된 지금은 예방의 중요성을 더 깊이 체감하는 중이다.
제1회 손상 예방의 날을 맞아 운영되는 국가손상예방주간(11월 3~7일)엔 손상 예방 포럼, 찾아가는 손상 예방 교육, 심폐소생 체험 행사, 낙상 예방 쇼츠 공모전 등 국민 참여형 홍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일회성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전 증진의 하나로 지속해서 이뤄져야 한다. 손상 예방은 결코 개인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앙부처와 지자체는 손상 예방을 위한 정책 및 제도를 마련하고, 의료기관은 교육과 연구를 통해 근거 기반의 예방 전략을 제시해야 하며, 언론은 손상 예방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시민들은 손상 예방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안전 수칙을 생활화해야 한다.
첫 기념일을 맞이하여 진행되는 이번 국가손상예방주간을 계기로 손상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예방은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 사회가 손상 예방을 위한 발걸음을 함께 내디딘다면, 우리 아이들을 비롯해 가족 모두의 삶이 더 안전하고 건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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