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여성병원 화재 후유증…연기 흡입 신생아 모유 수유 못해
- (고양=뉴스1) 박대준 기자
산모·신생아 등 170명, 12개 병원 분산
정확한 화재 원인 규명 주초 합동감식
[편집자주]
“우리 아기 좀 찾아 주세요”
지난 14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 8층짜리 여성전문병원 화재 현장을 빠져나온 한 산모가 다급히 병원 관계자들에게 아이의 행방을 물었다.
다행히 이 산모는 곧바로 아이가 인근 병원으로 안전하게 옮겨졌다는 소식을 듣고 몸을 추스린 뒤 가족과 함께 아이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이날 불은 오전 10시 5분께 발생해 25분 만에 진화됐지만 자칫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할뻔한 아찔한 순간들을 연출했다.
1층 주차장 천장에서 시작된 불로 검은 연기가 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서 건물 안에 있던 산모와 의료진 등은 대부분 연기를 피해 옥상으로 대피해야 했다.
한 산모는 “출산 직후여서 입원실에 누워 있는데 복도에 있던 환자분이 ‘빨리 대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해 슬리퍼를 신고 휴대폰을 챙긴 채 나갔다. 이미 복도에 매케한 냄새가 심하게 나 옥상으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화재 초기 소방당국은 건물 안에 있던 환자와 직원들이 다수 건물 옥상으로 피신하자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헬기 4대를 투입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한 산모와 특히 신생아에게 강한 바람이 위험하다고 판단, 때마침 불길이 잡히고 연기가 수그러들자 사다리차를 이용해 구조를 시작했다.
또한 일부 산모들은 의료진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걸어 내려와 대피하기도 했다.
이렇게 병원을 빠져 나온 환자들은 추위를 피해 인근 건물 로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환자들은 옷가지도 챙기지 못한 환자복 차림이었으며 일부 산모는 자신의 아기를 찾으며 엉엉 울기도 했다.
잠시 후 고양시가 지원한 담요 등 구호물품이 도착했지만 일부 산모들은 병원 관계자들로부터 아이가 이송된 병원을 알아낸 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렇게 출산 전후 입원환자와 연기를 마신 환자 등 화재로 인해 다른 병원으로 옮긴 사람들은 총 170명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산모는 69명, 신생아는 52명이다. 이들은 일산과 파주·부천·김포·서울 등 12개 병원에 분산 이송됐다.
그러나 신생아의 경우 급하게 이송되다 보니 일부 병원의 경우 신생아실이 아닌 일반병실에 수용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일산의 다른 여성전문병원들은 하루사이 예약이 꽉 차 버려 출산을 앞둔 산모들이 인근 서울까지 원정출산을 떠나야 할 상황에 처했다.
또한 연기를 마신 것으로 판단된 몇몇 신생아들의 경우 의료진이 약한 기관지를 감안해 모유 등을 먹이지 못하도록 해 산모들을 안타깝게 했다.
한 산모의 경우 마취 후 제왕절개 수술을 시작하기 직전 화재가 발생해 마취된 상태로 인근 건강보험 일산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이 산모는 곧바로 수술을 받아 다행히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불이 난 병원 간호사 등 의료진들도 매캐한 연기를 들이마신 탓에 목의 통증이 있었지만 산모들과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겉으로 내색도 못하고 있다. 일부 의료진들은 이튿날 새벽 이송된 병원들을 돌며 환자들에게 분유와 기저귀를 챙겨주며 위로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화재로 총 94명이 연기를 흡입하는 부상을 당했으며, 건물 1층 주차장 152㎡와 차량 15대가 타고 건물 벽면 2~4층이 그을리는 피해가 났다.
소방당국은 1층 외부에 노출된 주차장 천장의 배관에 동파방지를 위해 설치된 열선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재 이후 병원은 잠정 폐쇄 조치됐다. 정확한 화재원인은 주초 진행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관계기관의 합동감식을 통해 밝혀질 예정이다.
dj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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